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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선명한 진보'가 될 수 없다

  • 입력 2016.04.26 12:27
  • 수정 2016.04.26 12:28
  • 기자명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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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났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뜻밖에 제1당이 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여러가지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일단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문제점이 하나 있다. 그걸 설명해 보기로 하자. 문재인, 김종인 뭐 이런 사람들 얘기는 일단 다 머리에서 지우고, 바닥부터 곰곰히 생각을 해 보자는 얘기다.
더민주를 지지하는 SNS 사용자들 다수는 더민주가 좀더 활발하게 진보개혁적 가치를 주장해 주길 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사회안전망이든 복지든 뭔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들을 전진배치하는 것. 그리고 대기업, 재벌들의 입장을 옹호하기보다 과감하게 그들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심한 경우 재벌들이 쌓아둔 이익잉여금이라도 좀 풀어주고 최저임금도 팍팍 올리고 노동자 권익을 확실하게 보장하고 법인세 증세하는 것.
세월호 문제를 확실하게 조치해 책임자 가려내고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도 세우고, 국정원 등의 정치개입 문제도 명확히 밝혀내어 처벌하고, 테러방지법 같은 거 집어 치우고 국가보안법도 없애 버리는 것. 거기에 소수자를 보호하고 성차별을 없앨 수 있는 정책들을 도입하자는 주장.
이런 주장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선거에서 이겼으니 이래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언뜻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에게 무려 123석이라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안겨준 유권자들 중에 저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 유권자 중 다수 대중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만약 더민주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 대부분이 저런 것을 원하고 있다면 더민주는 당장 그걸 하는게 맞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내 자신이 저런 주장에 동의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물론 나는 저런 주장들, 아니 저 주장들보다 더 강경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기본소득 같은 것.. 대규모의 증세. 그리고 재벌 해체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체에 준하는, 상호 출자 연결고리를 끊는다거나, 업종을 제한한다거나 하는 수준. 노동3권의 실질적인 보호와 노조 설립을 권장할 수 있는 정책. 이런 것들이 구현되길 원한다.



'나라와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한 3당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서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하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경향신문 영상 캡쳐

하지만 내 소망과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주장들을 '과격한' 혹은 '위험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며 그걸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최소한 그 주장의 의미에 동의하더라도, 당장 채택하면 혼란과 부작용이 클 거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천천히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더민주에 표를 준 유권자들 중에도 당연히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해하기 힘든 불합리한 행동에 질리고, 박근혜 정권의 황당함에 어이를 상실하고 나아가 분노하면서 더민주를 택한 유권자들 중에도 저런 주장들은 좌파적, 혹은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다. 더민주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민주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아무리 잘 표현해봐야 합리적 보수의 스탠스를 가진 사람들이다.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싫고, 그저 좀 덜 부패하고 경기나 좀 살려줘서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 먹고 살게 해주고, 세금 좀 덜 걷고 아파트 값 좀 올랐으면 좋을 거 같고, 자녀 대학등록금 좀 어떻게 싸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유권자들이다.
좀더 강경하게 표현하면 테러방지법이나 인권문제, 그 밖에 다양한 정치적인 주장들의 충돌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최소한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더민주는 그런 사람들의 표를 받아 국회에 가서는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셈이다.
19대 국회에서 논란이 된 문제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자. 그 중에 과연 서민들의 생활을 당장 어떻게 나아지게 하는 것에 관한 논쟁과 충돌이 있었던가? 포퓰리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경제정책에 관한 토론이 있었냐고 묻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가치에 관한 주장도 장기적으로는 민생과 연관이 된다. 그러나 그건 빙빙 돌아 멀리 가야 하는 얘기고.
이런 이중성, 합리적 보수 유권자의 표를 받아 급진적인 언행을 하는 걸로 보이는 더민주의 이중성,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정동영은 한 때 담대한 진보를 얘기했었다. 과연 담대한 진보라는 말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몇 %나 될까?
더민주 내부에서는 언제나 선명성 논쟁이 있다. 하지만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선명한 야당'을 원하는 유권자는 몇 %나 될까? SNS에는 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 비율이 얼마나 될 지를 생각해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리나라의 유권자는 4천만이 넘고, SNS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사용자는 많아봐야 수십 만도 안된다. 40만명으로 가정해도 겨우 1%의 유권자들이다. SNS는 결코 사회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더민주의 당내에는 선명한 목소리가 흘러 넘친다. 그러나, 그렇게 선명한 야당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결과는 뭐가 있을까? 그 주장이 옳지 않아서 구현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당내에서조차 그 선명한 진보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조용한 보수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들은 그런 지역정서를 잘 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거다.
우리 사회에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진 사람은 3%다. 많아야 5% 미만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실질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도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에 불과하다. 추측이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 진보는 극소수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되질 않는다.
더민주는 이번에 무려 육백만 명 이상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받았다. (정당투표의 경우) 이 중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진 유권자의 비율은 얼마일까? 결코 다수가 아니다. 그런데 왜 더민주 지지자들 중에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많아 보이는 것일까? 그건 단지 진보적인 지지자들이 목청이 더 크고, 보수적인 지지자들은 조용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정당의 지지자들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 하의 정당은 자신들에게 표를 준 유권자의 의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점.
보수의 지지를 얻어 진보의 언행을 하는 정당은 위험하다. 더민주의 지지자 중 스스로를 진보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라면, 더민주의 득표율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더민주에서 나오고 있는 주장들, 운동권의 색채를 빼야 한다거나 우클릭 해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들. 그건 배신도 아니고 바보짓도 아니고 음모도 아니다. 중도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주장도 이제는 아니다. 그건 사실, 실제로 더민주를 지지해 준 유권자들 중 다수의 뜻을 따르겠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중성을 제거하고 더 명확해지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더민주가 '합리적 중도 보수'의 스탠스를 가진 정당이 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게 더민주를 지지한 유권자들 다수의 뜻이고, 그 뜻에 따르는 것이 제대로 된 정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그게 내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중간쪽으로 자리를 옮긴 더민주가 새누리당을 더 오른쪽 끝으로 밀어버려 부패한 정당, 권력 다툼만 하는 무능한 정당,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없는 극우 지역 정당으로 자리매김, 아니 그 수구적 정체성을 확실히 대비해 가면서 밝혀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걸 못하니까 새누리당이 맨날 멀쩡한 보수 정당인 척 거짓 행세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진보 세력들은..
그렇게 자리잡은 보수정당 더민주를 카운터 파트로 삼아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키워야 하는 시점이다. 아직 3%, 5% 에 불과한 진보적 유권자들을 10% 20% 아니 50%까지 늘려 나갈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진보의 길이다.
최소한 나는 그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진보적 유권자라 생각하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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