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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착한 박근혜다

  • 입력 2016.04.14 09:56
  • 기자명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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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당선 확정 소식을 접한 후 환호하고 있다.



* 이 글은 4월 13일 작성되었습니다.
1. 안철수가 말하는 '국민'은 어떤 사람일까?
2012년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와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며 정치 전면에 등장한 뒤로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철수가 무슨 정책 어떤 법안을 내놓았고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안철수는 시종일관 ‘새 정치’를 내세웠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새누리당의 ‘나쁜 정치’와 더불어민주당의 ‘낡은 정치’를 뛰어넘어 ‘새 정치’를 하겠다는 취지로 국민의당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새 정치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밝혀놓은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나온 ‘책자형 선거공보 제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를 보아도 해답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해답을 내놓고 지지를 구하는 대신 (총선 끝나고 나서) “땀 흘려 일하는 국민 편에서 답을 찾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국민의당 제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공보물



안철수는 새누리당에 가까운지 어떤지 더불어민주당에 가까운지 어떤지 또는 더 나아가 정의당·노동당·녹색당에 가까운지 어떤지를 아직 밝히지 않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동안 미디어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적어도 제 눈에는 상당히 위험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15남북공동선언인가를 당헌에 명시하지 말자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학사를 비롯해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이쪽도 저쪽도 다 잘못이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 머리에 남아 있는 기억은 이런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보편적이든 선별적이든 복지(진보 또는 개혁진영에 고유한 영역도 아닙니다.) 분야에서도 선명하게 차별되는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최저임금 인상 여부나 해고 제한 요건 강화·완화 여부, 비정규직 고용 기간 연장 여부 등등 노동 문제에 대한 태도 또한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안철수는 정의당·노동당·녹색당과는 아예 거리가 멀고 그보다는 더불어민주당과 가깝습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따져 보면 아무래도 새누리당과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기자회견 모습



안철수가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부에 대한 안철수의 태도가 어쩌면 가늠자가 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안철수는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을 인정하고 20대 국회가 열리면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줄로 저는 압니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에 여야합의로 통과되었는데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 등 소수당의 저항을 합법화하고 쟁점 법안은 단순 과반이 아닌 5분의3(300명이면 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입니다.
지금 국면에서 이러한 내용을 개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합니다. 단순 과반으로 모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바꾼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모든 의안을 새누리당이 바라는 대로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새누리당은 지금 의석이 단순 과반은 되지만 절대 과반(3분의2)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런 새누리당이 누구를 위하는 정당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노동자, 영세자영업자, 소농, 도시민은 힘들어지고 청년·청소년·학생들도 고단해지기 십상입니다.




2. 안철수,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건데?
10년 전인지 5년 전인지, 아니면 그 두 숫자 사이 어디 즈음인지 모르겠지만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서 안철수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때 안철수 발언 요지는 이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집중해서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 붙들고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었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가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열심히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많은 사람들 주목을 받고 있더라.”


안철수는 실제로 그렇게 여기고 말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보아왔던 ‘공부 잘하는 아이’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관심을 끄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중심에서 누리는 그런 관심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런 아이는 자기가 누구 덕분에 배를 곯지 않을 수 있고 헐벗지 않을 수 있고 또 따뜻하게 잘 수 있으며 편안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세상살이 모두가 서로를 서로에게 기대어 있음이 분명한데도, 그런 아이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 덕분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자기 덕분에 다른 여러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엘리트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잘못이 여기서 발견이 됩니다. 그것은 엘리트주의-선민(選民)의식입니다. 선민의식은 다른 방식으로도 나타납니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 장삼이사들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습니다.(겉으로는 인정하는 척해도 내심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 말과 생각과 행동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 장삼이사들에게 힘을 키워주는 방향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입에 밥을 떠먹는 것조차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다.
안철수는 소득주도성장론을 부정하고 공정성장론을 주창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철수는 소득을 키워 성장 동력으로 삼자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대·중소기업에 분배를 강제할 수단이 많지 않고 특히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어렵고 맞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면 본인이 내세우는 공정성장론(대·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까지 공정하게 성장하도록 하자는 얘기)은 얼마나 가능한지요? 똑같은 이유로, 대·중소기업에 공정성장을 강제할 수단이 많지 않고 자영업자가 많은 특성 또한 공정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요?
그래도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 주체들이 스스로를 조직하든 어떻게 하든 힘을 키울 필요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적어도 그만큼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당 선거공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휴대폰, 자동차로 먹고 사는 시대가 끝나갑니다. 앞으로 20년, 30년을 뭘 먹고 살지 정치가 답해야 합니다.” “미래의 먹거리, 미래의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




국민들 먹을거리를 자기네가 찾아내어 던져주겠다는 얘기인데 제가 보기에는 이보다 더한 ‘오버’가 없습니다. 국민들 먹을거리는 국민들이 찾으면 됩니다. 국민들이 이리저리 조합하여 만드는 갖가지 영리·비영리 법인들과 개개인 등등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그런 먹을거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먹을거리 찾아내기는 정치가 할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먹을거리는 이른바 경제 주체들이 알아서 찾아내도록 해 두고, 대신 사람들 경제·사회·문화생활에서 보장해야 마땅한 하한선과 넘지 말아야 할 상한선을 정하고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의 구실이다 저는 생각합니다.



3.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안철수 지지가 높은 까닭
안철수는 잘 웃는 사람입니다. 박근혜는 대체로 근엄한 표정이지만 안철수는 그래도 웃는 상입니다. 국민의당이 그동안 시건방을 떨지는 않았습니다. 새누리당은 대체로 언제나 국민들 위에 군림해 왔지만 국민의당(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은 유권자를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과 박근혜 새누리당의 가장 크면서도 유일한 차이점입니다.
안철수는 윽박지르지 않는 박근혜입니다. 국민의당은 비폭력적인 새누리당이고 야비하지 않은 새누리당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박근혜는 나쁜 안철수입니다. 새누리당은 폭력적인 국민의당이고 야비한 국민의당입니다.
지향하는 정책 방향이랄까 기반하는 계급·계층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방법이나 태도가 다를 뿐일 텐데요 객관적으로는 이 차이가 결코 작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저는 봅니다.
새누리당은 독재적·파쇼적으로 비치는 반면 국민의당은 온건하거나 합리적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라도에서 국민의당이 지지를 많이 받는 까닭이 보입니다. 여태까지 지체되어 왔던 호남 표심의 분열 또는 분화가 이제 국민의당 창당과 안철수 등장을 맞아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4월 13일, 자신의 지역구 투표소를 찾은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 내외



여태껏 호남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前身)들 말고는 찍을 정당이 없었습니다. 새누리당→한나라당→신한국당→민주자유당→민주정의당은 적어도 호남 사람들한테는 정당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을 마구 죽인 학살자들의 집단일 뿐이었습니다. 탁월한 민주주의자이면서 호남 대표 정치인 김대중을 (박정희 민주공화당에 뒤이어) 박해한 독재자들의 집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호남에서는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이 내세우는 정강·정책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도 투표는 그이들한테 할 수 없었습니다. 호남의 비(非)반(反)새누리당 몰표 90대 10은 이래서 생겨났다고 저는 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실제 활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리고 더 나아가 실은 새누리당과 그 전신들이 실행하는 ‘부자 편들기’가 더 마음에 들어도, 어쩔 수 없이 투표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들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호남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말하자면 호남에도 규모 있는 자본가와 지주 그리고 그 대리인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학살과 관계없는 보수정당이 나타났습니다. 착한 새누리당=국민의 당이고 표독하지 않은 박근혜=안철수입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독재나 탄압과도 무관합니다. 이로써 호남 유권자들이 선택 여지가 넓어졌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호남 유권자들은 확실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안철수에 대한 지지가 높은 까닭은, 제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세대가 계급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곧바로 가르지는 않겠습니다만, 호남 유권자들의 연령대별 지지 정당 차이도 이런 해석을 조금은 뒷받침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호남 유권자들 가운데 20~40대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50대 이상은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많다고 저는 들었거든요.




4. 20대 국회 구성은 어떻게 될까?
어쨌거나 국민의당은 이번 20대 총선에서 엄청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민의당 때문에 새누리당은 안정 과반(160석 안팎)을 확보하게 생겼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야당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새누리당 후보 당선 지역구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국민의당 후보가 얻은 표를 합하면 새누리당 후보보다 많은 데가 적어도 50곳 안팎은 될 것입니다. 단순 계산이라 정확하게 맞아들어가지는 않겠지만,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후보 단일화를 했다면 새누리당이 당선되지 않을 선거구가 이런 정도라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유승민을 비롯해 사실은 새누리당이지만 공천 갈등 때문에 무소속으로 나와 당선되는 후보들까지 더하면 새누리당의 안정 과반은 더욱 튼튼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국회 다수 독재는 안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야당이면서도 사실상 보수정당인 국민의당이 아무리 못해도 20석은 넘게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번 총선으로 열리는 20대 국회는 200석 안팎이 보수(극우 또는 수구까지 포함해서)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 대목에서 안철수가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사실을 다시 떠올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국회선진화법의 핵심은 쟁점 법안을 의결하려면 180명 이상 국회의원이 동의해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합의해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면 쟁점 법안도 국회의원 151명 이상이면 의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여태까지 쟁점 법안으로 되어 있어 의결이 미루어졌던 ‘쉬운 해고법’이나 ‘비정규직 유지존속법’ 등등도 바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득을 보는 사람이나 집단이 분명 있겠지만 대다수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나 도시민 또는 청년들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이들은 가진 바도 적고 누리는 바도 조금뿐인 사회 약자들입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낡은 정치와 싸우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미래가 노동자나 도시민 또는 청년들에게는 밝고 가볍고 따뜻하지 않을 개연성이 너무 높습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말하는 그 미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돌이켜 묻지 않을 수 없는 국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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