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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홀대론은 실재하는가?

  • 입력 2016.04.12 18:45
  • 수정 2016.04.12 18:47
  • 기자명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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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광주 광산을 후보 권은희의 지원유세에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민중의소리


호남자민련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제 3당을 노릴 수 있는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호남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안철수 본인과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모든 의석이 호남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바, 호남자민련이란 비하적인 표현이 공공연히 유통될 지경이다.
그 비결은 역시 호남의 친노(親盧) 비토 정서다. 이는 열린우리당 창당과 대북송금 특검을 시작으로 친노세력이 의도적으로 호남을 홀대해왔다는 소위 호남 홀대론에 기인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노 세력이 패권을 휘두르고 있으며, 그들은 무능할 뿐 아니라 호남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것이다.

"盧정부 말기 호남인사 홀대… 문재인 못믿겠다", 동아일보

호남배제론의 반대편에는 소위 영남패권주의 설(設)이 있다. 노무현 정권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시도하면서 영남패권주의를 약화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공고히 했다는 주장이다. 칼럼니스트 고종석이 경향신문에서 이런주장을 한 바 있다.

[고종석의 편지] 홍세화 선생님께, 경향신문

그러나 이런 고종석의 주장은 섬세하지 못한 데가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의 목표는 (그것이 실패로 끝났다 한들)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함에 있었으며, 낙동강 벨트로 이어지는 영남 공략 또한 그 연속선상의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는 고종석이 주장하는 친노 영남 패권주의 설이 논리적으로 부당함을 간단한 비유로 보여주고 있다.

본격 시사인 만화 – 아주 쉬운 상식, 시사인

국민의당은 박지원 등 흔히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구(舊) 민주당 주류 계파와 호남 현역 의원 등 기성 정치 세력이 주축이 되어 원내교섭단체를 형성하고 있다. 구식 토호 정치의 폐해에 시달려온 호남인들이 높은 현역의원 교체 여론에서 볼 수 있듯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총선에서의 선택은 과거로의 회귀에 가깝다는 점은 일견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호남홀대론의 실체

그러나 호남홀대론의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의 이 시평은 호남홀대론의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중앙시평] 안철수 정치의 기로, 중앙일보

친노세력은 3당합당으로 괴멸된 비호남야당을 부활시키고, 호남과 연대하여 대통령을 배출한 뒤 가장 친호남적인 지역균형·인사·예산정책을 실시한 정부였다. 객관적 조사를 하면 ‘친노의 호남홀대론’은 허구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수장이 동시에 호남 출신인 정부는 건국 이래 노무현 정부가 유일하였다. 총리 2인, 여당대표 2인,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한 고위직에 호남출신이 가장 많은 정부도 노무현 정부였다.
국가기관 이전, 투자와 예산배정도 같았다. 지역총생산은 김대중 정부는 호남이 평균 28.82%를 성장, 전국보다 9.37%가 낮았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호남이 평균 39.86%를 성장, 전국보다 5.84% 더 성장하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하 전남의 성장은 충남과 함께 전국 최고 수준이었다.

주간동아의 이 기사는 데이터에 근거하여 호남 홀대론의 반대 축인 영남패권주의의 실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 내각이나 박근혜 정권의 영남 편중 인사 등 정치 엘리트 집단 내부에서는 영남패권주의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고종석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남패권주의’의 세 가지 차원, 주간동아

필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검증을 시도했지만 인종주의적 영남패권주의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2010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25~54세 성인의 직업 분포를 살펴보자. 영남에서 태어난 노동자가 호남 출생자보다 더 높은 직업·지위를 차지한다는 증거가 없다. 광주 출생자의 21%가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므로 대구(21%)나 부산(20%) 출생자와 다르지 않다. 특별시가 아닌 광역시나 도 간 차이도 1~2%p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층에서 영남 출생자가 더 이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대졸자 직업 이동경로 조사 자료를 이용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자의 졸업 직후 노동시장 성과를 보면 영남 출생 남성은 73%, 호남 출생 남성은 69%가 취업했다. 언뜻 영남 출생자가 앞서는 듯 보이지만 월급을 따져보면 호남 출생자는 269만 원이고 영남 출생자는 264만 원으로 뒤집힌다. 대졸 여성 노동자 중에서는 호남(71%)의 취업률이 영남(68%)보다 높다. 노동패널 자료를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도 영호남 출생자 사이 의미 있는 임금 격차는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울 강남3구 거주민의 출생지역을 살펴봐도 영남과 호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한국경제의 기사는 호남 정권 하에서 오히려 영남이, 영남 정권 하에서 오히려 호남이 오히려 성장률이 높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무현 정부 시절이 오히려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호남의 성장률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나므로, 친노 영남패권주의의 근거라 하기엔 빈약하다.


영남기반 정당 집권 때는 호남이… 호남정권 땐 영남이 성장률 높아, 한국경제

호남의 박탈감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호남의 박탈감 자체가 전혀 근거없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기 국가 개발 전략은 수도권 – 영남을 잇는 경부선 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때 이미 자리잡힌 불균형은 지역 성장률이나 취업률 등의 지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주간동아의 기사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호남지역의 저발전은 이 지역 출신의 경제적 기회를 저해한다. 2010년도 인구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해보면 25~29세 청년층 가운데 출생 시도와 현재의 거주 시도가 일치하는 비율은 52%다. 대도시 간 차이는 미미하다. 대구 출생자 가운데 현재 대구에 거주하는 비율은 51%, 부산은 51%, 광주는 54%이다. 전북(46%)과 경북(46%)도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전남은 다른 지역보다 젊은 층의 이주율이 높고 출생지와 현 거주지의 일치율(32%)이 유독 낮다. 전남지역의 소외감에는 분명히 물질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호남 지역의 박탈감이 친노 세력에 대한 적의로 발전하게 된 맹아는 역시 열린우리당 창당일 것이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소위 호남 신주류는 본격적으로 재창당 작업을 주도했다. 호남 구주류, 소위 동교동계의 부정하고 부패한 이미지를 청산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더불어 당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구주류와 신주류의 다툼이기도 했다. 이들 신주류와 소위 친노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끝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었다.


03년 열린우리당 창당대회

누구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한겨레21

당초 미니 여당으로 출발한 열린우리당은 탄핵 열풍을 타고 17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나,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불거진 역량 부족 문제와 계파 갈등, 4대 개혁 입법 좌초 등으로 표류하다가 쪼개진다. 지역주의 완화라는 의도는 좋았으나 분당 과정에서 호남 신주류와 구주류가 대립하며 정치적 역량을 깎아먹었고, 지나친 계파 갈등으로 정작 정책을 추진할 역량을 죄다 소진해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 또한 오늘날 호남 유권자들이 친노를 적대하게 된 까닭 중 하나였다 하겠다. 친노와 호남 구주류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된 이 합의는 지금까지도 친노와 동교동계가 불화하는 까닭 중 하나다.


민생 싸움인가, 계파간의 주도권 싸움인가

친노가 의도적으로 호남을 홀대했으며 심지어 영남패권주의를 밀어붙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데이터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다른 정권에 비해 호남 친화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의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호남(만)을 집중적으로 지원했어야 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옳은 정책적 방향인지는 다소 의문스럽다.
물론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이 김대중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하던 호남의 민심에 악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친노와 호남 신주류가 보여준 지리멸렬한 모습이 역시 민심을 실망시켰을 가능성도 높다.
허나 호남의 민심이 돌아선 이유로 평가되는 두 사건은, 지역주의 완화나 구주류 쇄신 등의 명분을 일단 접어놓고 보자면, 사실 신주류와 구주류의 주도권 싸움에 가까웠다.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호남 소외나 호남 홀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열린우리당 분당 당시 호남 신주류라 불리며 동교동계 구주류의 쇄신을 주문했던 것이 바른정치실천모임의 재선의원 그룹이었다는 것이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천정배와 정동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들은 (신기남 의원을 포함하여) 천신정으로 불리며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이후로도 당 의장 등으로 주류에서 활동하며 개혁입법도 주도했다(그리고 실패했다). 그들은 지금 국민의당의 대표 인물로서 친노 책임론을 말하고 있다.
이 기이한 뒤엉킴은 결국 이것이 호남에서의 주도권 싸움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신주류와 구주류의 주도권 싸움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더불어민주당(친노)과 국민의당(동교동계)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죽여야 세상이 바뀐다!, 프레시안

이 대결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친노가 호남을 홀대한다는 근거로 노무현과 문재인의 발언이 맥락 없이 거세되어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레시안의 기사는 노무현의 “호남이 날 좋아서 찍었느냐, 이회창이 싫어서 찍었지”란 발언을 인용한다. 노무현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호남을 조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리에 있었던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이 발언은 오히려 호남의 전략적 지지에 감사하고 존중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왜곡은, 정쟁의 잔영이다.
호남의 선택이 근래 가장 주목받고 있지만, 뭔가 속이 시끄러운 까닭이다. 안철수는 호남의 박탈감을 유례없이 퇴행적인 구도 속에 가두고 있다. 과거 주도권을 놓고 싸우던 구주류와 신주류의 연합이 친노라는 적을 설정하여 호남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다. 이 싸움이 호남의 박탈감을 채워줄 수 있을까? 3당 구도로 수도권과 충청까지 새누리당의 텃밭이 되려 하는 이 즈음, 나는 그조차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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