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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인 내가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한 이유

  • 입력 2016.03.25 11:06
  • 수정 2016.03.25 11:07
  • 기자명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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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악계 주변에서 일하는 이들과 이야기하다가 보면 종종 "이 씬도 여혐 정서가 심해요."라는 이야기를 - 장르 불문하고! - 듣게 된다. 그런데 어디 음악만 그러랴. 영화판에 가도 그렇고 TV 업계에서도 그렇다.
이쯤 되면 그냥 종사자 한 두명의 일탈이나 특정 씬, 특정 업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우리 모두가 여혐 정서를 어느 정도 탑재한 채 살고 있다고 의심하는 게 빠를 것이다. 그게 의식적인 선택이었든, 받은 교육 탓에 부지불식 중에 일어난 일이든간에 말이다.
그럴 수밖에. 내 세대만 해도 아들이란 이유 덕에 낙태를 면한 친구나, 아들을 보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여섯째 딸로 태어난 친구가 제법 있으니까. 교육의 부재 문제가 아니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살 만큼 사는 집에서도 고추숭배는 당연한 일이었다.



2-1. 내가 트위터를 하던 시절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바람이 한참 불었다. 나는 그 해시태그를 달기까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를 함부로 자처하기 껄끄러워 하던 시절의 막내란 게 첫번째 이유였다.
이론의 영역에서나 실천의 영역에서나, 내 세대가 기억하는 페미니즘은 정교한 이론과 치열한 실천을 필요로 하는 '이즘'이었다. 그리고 이즘으로 인정받기까지 '노계들의 아우성'이라는니 '무조건 혜택이나 받으려고 하는 여자들의 이기주의'라 손가락질하는 몰이해와 치 떨리는 투쟁을 거쳐야 했던 이즘이었고.
이런 탓에 단순히 양성평등주의가 옳은 것 같다는 막연한 지향만으로 '난 페미니스트인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이 무임승차 혹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의 만용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학번인 나는 그런 시절의 막내뻘이었고.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많은 선배들은 아마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2-2. 둘째는, 내 안에 나조차 인식하지 못한 여혐정서가 또아리 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대중문화 안에서 이뤄지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입장이나,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촉발된 코르셋 논쟁 등에서 난 계속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래 고민해야 했다.
이를테면 외모 컴플렉스가 심한 편인데다가 오랫동안 뿔테 안경을 써왔던 내가 '얼굴 빻은 뿔테안경의 숙주 한남' 같은 단어 앞에서 받았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당했던 놀림과 왕따의 기억이 다시 소환되어 멘탈에 기스가 쫙쫙 가는 걸 체험하고 혼자 화를 씩씩 내다 깨달았다. 내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까지 여성들에게 공감하진 못했다는 사실을.
'김여사'나 '된장녀', '여자치곤 몸무게가 나가는 60kg' 따위의 표현에 늘 불편함을 호소하고 정치적 불공정성을 지적해 왔음에도, 한번도 '남성으로서의 나'가 비하와 혐오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던 탓에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참담함을 마음으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남성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외모 비하나, 남녀공학에서 여자아이들에게 평가의 대상이 되며 느꼈던 참담함은 분명 실존하는 고통이었고 여전히 돌아보기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한번도 '남성'이란 이유로 비하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난 여성 일반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담은 표현에 대해 저항하면서도, 내심 내가 위치한 생물학적 남성이란 지위가 그 자체로 비하의 대상으로 추락할 리 없단 사실에 안도하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남자는 모두 짐승새끼다"라거나 "남자는 다 늑대다" 같은 것이 남성 일반에 대한 비하 발언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표현은 비하나 차별이라 보기엔 적합하지 않다. 차라리 남성에 대한 여성의 증오와 두려움, 그리고 폭력적인 성욕 발산을 생물학적 핑계로 정당화하는 남자들의 은근한 자기 과시가 어우러진 표현이라면 몰라도.)
그러니 처음으로 남성 일반에 대한 비하와 차별 발언들 - 6.9충. 한남충. 머가리만 빻은 게 아니라 면상도 빻았네. 뿔테의 숙주 등등 - 을 접했을 때 전에 없이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한 수준으로 쉴틈없이 벌어지는 여성 비하적 발언에 대해 내 일인양 같이 아파한 적은 없었으므로.



2-3. 그럼에도 내가 결국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에 동참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오랜 세월 조리퐁이 어쩌고 거북이알이 어쩌고 소나타3 헤드라이트 디자인이 어쩌고 테트리스가 어쩌고 군가산점 문제가 어쩌고 하는 거짓 프로파간다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해보려고 한 적 없는 이들 사이에선 페미니즘이란 단어 자체가 욕처럼 쓰이고 금기어가 된 것 같단 위기감이 컸다. 그 단어를 게토화 시키려는 이들에 맞서, 페미니즘은 사교가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괴물이 아니라는 걸 선언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해야 할까
선배들이 겪었던 논쟁은 페미니즘 심화과정에서 입장과 견해에 따라 세부이론으로 나뉘고 상호 비판을 통해 이론의 정교함을 추구하는 논쟁이었다. 나는 감히 내가 그 말석을 차지하기는 과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표현은 할 수 있었어도 내가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 우리가 마주한 전선은 이전의 논의가 하나도 온전히 전승되지 못한 채 "그런 건 난 모르고 여성부 자폭 ㅇㅇ"을 반복하는 이들과의 기초개념 싸움을 반복하는 난장이었다. 더 이상 말석도 과분하네 어쩌네 할 일이 아니라, "나도 네가 치 떨며 싫어하는 페미니스트거든?"이라고 외치며 연대하는 게 급해 보였다.
그렇다면 비록 내가 한계를 지닌 사람일지언정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라는 하나의 지향으로서 선언에 동참할 수도 있겠단 판단이 섰다. 그것이 내가 선언에 동참한 이유다.

3. 그럼에도, 난 여전히 내가 얼마간은 쁘띠 부르주아 꼰대에 학벌주의자고 서울 중심주의자에 보수주의 여혐종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산다. 매 순간 나를 의심하는 삶을 산다고 이야기하자 어떤 분은 그게 관념의 세계에 혼자 틀어박힌 룸펜의 자기연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투로 이야기하며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으로 달려가라고 하시더라.
하지만 내가 틀렸을 리 없다는 생각에 자기 업데이트를 소홀히 했다가 어느 순간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 수구가 된 왕년의 진보인사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분들이 나쁘다거나 틀렸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강건한 투사분들조차 제 생각의 영토에 갇혀 낡은 이름이 되는데, 나 같은 쪼랩이 끊임없이 스스로 책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질문하길 그치는 순간, 인간의 정신은 급속도로 늙는다.

4. 당신에게 여성혐오의 혐의를 지적하는 이들 중에는 분명 혐오를 혐오하다가 혐오 자체와 사랑에 빠진 이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방금 그 발언은 여성혐오적인 요소가 있는 것 같은데요"라는 알림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여성혐오를 지적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적절한 태도는, 일단 내 자신이 정말 여성혐오적 사고방식을 가졌던 건 아닌가 의심해보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당할까 두려워 펄쩍 뛰며 나는 여혐종자가 아니라고, 당신들이 오해한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오늘 내 선언을 업데이트한다. 아직 한계투성이 인간이란 점에서, 나는 여혐종자 꼰대(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러나 그 상태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으며 끊임없이 학습과 경험을 통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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