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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 정말 천국이 있을까?

  • 입력 2016.03.10 12:19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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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작품 줄거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현실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랑 달라. 노래를 부른다고 꿈이 이뤄지지는 않아

현실과 이상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또, 이상과 이상은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
디즈니가 야심차게 내놓은 55번째 극장판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적인 문명 사회인 '주토피아(zoo+utopia의 합성어)'를 배경으로 한다.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육식 동물들은 자신들의 본능을 제어하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초식 동물과의 공존이 가능하다.


그렇다. 주토피아는 공존의 사회다. 이 곳에서는 작은 동물과 큰 동물이 어울려 살아간다. 각각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작은 단위의 사회가 따로 존재하지만, 모든 동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특별한 통역이 필요 없으므로)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가령, 기차에는 크기가 다른 문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작은 쥐부터 큰 기린까지, 모두 동물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처럼 주토피아에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구호는 평등성에 대한 지향을 보여준다. 가슴 벅차지 않은가?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니! 그야말로 혁명적인 발상 아닌가? 말 그대로 유토피아에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건 유토피아에서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주토피아>는 그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토피아의 동물들은 얼핏 보기에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신의 위치'다. 토끼들은 홍당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비버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수달은 원예사다. 반면 사자는 도시의 시장이고, 육식 동물을 비롯해 덩치가 큰 동물들은 경찰 등의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인 토끼 주디 홉스는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지만, 그의 부모는 '작은 동물은 경찰이 될 수 없다'며 다른 형제들처럼 홍당무 농사나 지으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며 끝내 경찰의 꿈을 이룬 주디는 그 이후에도 다른 동물들로부터 온갖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이 지점에서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주토피아의 구호가 갖는 허구성과 위선이 드러난다. 물론 그 비릿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 부모가 곧 신분이 되는 전근대의 계급 사회와 달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꿈의 한계가 곧 신분을 의미하지 않던가? 물론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하진 않다. 금수저 · 흙수저 논란은 계층 사회로 위장된 계급 사회의 본질을 명확히 꿰뚫고 있다.
결국 주토피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현실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랑 달라. 노래를 부른다고 꿈이 이뤄지지는 않아'라는 허망한 메시지다. 다만, 주디는 여성으로서 유리천장에 도전하고, 작은 초식동물로서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동시에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주토피아>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통쾌하게 무너뜨린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비롯해 최근 제작되는 애니메이션들은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성격을 띤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들도 가볍지 않다. 실제로 <주토피아>의 경우 10대 이하의 관람 비율은 3.7%에 불과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이처럼 무거운 이야기를 어른과 아이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보며 진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실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만, 결론은 늘 이상적인 까닭이다. 당장 <주토피아>를 봐도 그렇다. 주디가 일으킨 변화가 영속적인 것일지는 미지수다. 주디는 초월적인 의지를 지닌 특출난 캐릭터라지만 그러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다른 토끼들은 여전히 주토피아의 차별 속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토끼 경찰관 주디와 함께 힘을 합쳐 주토피아에서 벌어진 연쇄 실종 사건을 해결한 여우 닉 와일드는 '여우는 교활한 사기꾼'이라는 편견을 뚫고 주토피아의 첫 여우 경찰관이 되지만, 그것이 예외적인 케이스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변화의 첫 걸음이라 자평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견고한 시스템에 실금이라도 가게 만든 것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설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특출난 예외가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다시 기득권을 보호하는 양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디즈니를 비롯한 할리우드와 미국 사회, 혹은 우리나라 사회가 취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박수 끝에는 또 씁쓸함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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