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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튀어나온 아시아인 비하 발언

  • 입력 2016.03.03 15:02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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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가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윌 스미스 -



지난달
28일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불거진 이른바 '백인 잔치' 논란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에 이해 올해도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전부 백인 배우로 채워진 것을 두고, '백인만의 잔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OscarsSoWhite'(오스카는 백인중심적)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비판 글들이 쏟아졌다. 스파이크 리 감독을 비롯해 윌 스미스 등은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를 맡은 흑인 배우 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어떤 발언을 쏟아낼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는 이미 지난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조롱한 전력이 있었기에 사이다 발언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방송용 발언으로 마무리 될까라는 '우려'가 공존했다.
드디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록은 "흑인들의 불참 사태 때문에 사회를 거절할까 고민했다. 난 실업자이고, 이 자리를 백인인 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그는 "흑인 후보자들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바에야 차라리 남녀 배우상 범주를 나누듯 흑인을 위한 상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연기로만 얘기하면 충분한 것 아닌가"라며 날카롭게 꼬집었다.




"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과 동등한 기회를 원할 뿐. 그것이 전부다."라는 록의 말은 뿌리깊은 인종차별에 맞서 줄기차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외쳤던 흑인들이 거듭 주장해 왔던 내용이다. 지난 2009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미국이지만, 인종차별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문제다. 오히려 더 심화됐다는 주장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 퍼거슨 시에서 18살 흑인 소년이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일화는 미국 내에서 흑인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 최초 대통령인 자신의 존재로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는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노예제 유산'은 여전히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여전히 DNA 일부분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아카데미는 그래도 인종 다양성을 고려한 티를 제법 냈는데, 이병헌이 외국어영어상 시상자로 나선 것은 꽤나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 케빈 하트, 우피 골드버그 등 여러 흑인 배우와 가수들이 시상자로 참석했다. 하지만 흑인들이 보기에 이러한 조치들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록이 날선 비판으로 아카데미를 조롱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흑인 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흑인 인권을 외친 록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 그의 발언에 또 다른 인종 차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록은 수상자 투표를 집계하는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를 소개하겠다면서 아시아계 어린이 3명을 무대 위로 불렀다. 그러면서 그는 "미래에 훌륭한 회계사가 될 3명을 소개한다. (투표 관리 회사는) 헌신적이고 근면한 직원들을 보냈다. 농담이 불쾌했다면 (그렇다고) 트위터에 올려라. 물론 스마트폰은 모두 어린이들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시아계 어린이를 무대 위에 세워두고 '미래에 훌륭한 회계사가 될 3명을 소개한다'는 록의 발언은 아시아인들이 계산에 밝고 수학을 잘한다는 고정관념을 드러낸 것이고, '헌신적이고 근면한 직원들을 보냈다'는 표현 역시 아시아인들은 '소처럼 일한다'는 편견이 만든 허상이다. 게다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런 너저분한 농담을 늘어놓는 것은 참으로 볼썽사나워 보였다.
시상식이 끝난 직후 중국계 여배우 콘스탄스 우는 "어린 아이들에게 대사 한마디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인종주의적 농담의 대상으로 만들다니 역겹다."며 비난했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아카데미상의 흑인 차별에 대한 비판은 제기됐지만 아시아계, 라틴아메리카계 등 소수인종에 대한 관심은 밀려났으며 이들이 오히려 불편한 농담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자신을 둘러싼 차별(흑인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록이 자신이 가하는 차별(또 다른 인종차별)에 저토록 둔감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그를 엎어 메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머무른다면 록의 태도가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들을 죄다 놓쳐버리는 꼴이다. 우리는 불편함과 동시에 뜨끔함을 느껴야만 한다.




우리는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해 할리우드를 넘어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이 처해 있는 입지가 얼마나 열악한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케케묵은 인종차별의 그늘은 여전히 짙고, 어쩌면 각자도생이라고 하는 고리타분한 방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흑인들은 백인 바로 밑이라는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인종들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와 함께 우리 안에도 '록의 태도', 다시 말해서 우리가 무심결에 가하고 있는 인종 차별은 없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우리는 백인에 대해 심각한 저자세를 취하는 반면,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오지 않았던가?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록의 태도가 던져준 숙제는 생각보다 무겁다.
방정맞았던 록보다 2년 연속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수상 소감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


"아직도 피부색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 많다. 피부색이 우리의 머리 길이만큼이나 의미 없는 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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