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필리버스터 중단, 그 다음은 무엇인가?

  • 입력 2016.03.02 11:45
  • 기자명 비더슈탄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오보 이야기가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오보는 아니었다. 이번 필리버스터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주장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그는 필리버스터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이었다. 제대로 된 합의 없는 중단은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야간 의원총회는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중단 여부 결정권을 위임했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중단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결정해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다른 비대위원들은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구했고, 결국 오늘 오전 9시로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운 릴레이 필리버스터는 중단된다.


김광진의 5시간 34. DJ의 기록을 깼다며 환호했다. 은수미의 10시간 18. 한국 최장 기록 경신과 그녀의 눈물. 박원석의 9시간 29. 강단 있는 그의 목소리에 다시 열광했다. 오늘까지 필리버스터는 7일차를 맞는다. 그 동안 28명의 의원이 단상을 거쳐갔다. 김용익 의원의애니프사한 마디에 다 같이 웃기도 했고, 신경민 의원의 발언에 새누리당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열광의 시간이었다. 야권의 모든 지지자들에게 그랬으리라 믿는다. 국민들은 여과 없이 의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의원들은 여과 없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절대로 흔한 기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좁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필리버스터로 인한 지지율 상승세는 없었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하락했으며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반년 만에 최고 수치를 달성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새누리당과의 합의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합의안조차 새누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잠시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선거구 획정안을 처리하자는 합의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스스로 굴복했다. 필리버스터는 중단될 것이고, 표결에 들어갈 것이며, 새누리당은 찬성표를 던질 것이고, 테러방지법은 통과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것이다
. 물론 정당은 집권하기 위해 존재한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존재한다. 김종인은 그것을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었다. 고로 그에게는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필리버스터가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는 이 모든 일을 중단시킬 책임이 있다. 동의한다.
우리의 예상처럼 판은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TV에서 방영되지 않는 드라마를 굳이 찾아서 보는 유권자는 많지 않았다. 세계 기록을 경신하며 이어지고 있는 필리버스터를 제대로 보도해 주는 지상파 언론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무릎을 꿇어야 한다. 저들의 앞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부담과 고민에 동감한다. 선거구는 어쨌든 처리가 되어야 한다. 그걸 11일까지 미루자니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이 없으면 불리한 것은 야당이다.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반등하고 있다. 전략을 수정할 때라고 느낄 것이다. 출구전략을 논의할 때라고 느낄 것이다.
이 시점이 오리라고 예상했다. ‘정상적인중단까지는 아직 열흘이 남았고, 너무 긴 시간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아직 절반도 채 오지 못했다. 비상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거다. 초반의 관심과 열정은 식어갈 거고, 생각보다 흔들림의 규모가 작다고 느껴질 것이다. 어차피 패배의 결말은 정해져 있다고 느낄 것이다.
시작의 뜨거움과 계속의 차가움이 맞닿는 지점이 있다. 그 섬뜩함, 그 서늘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싸움은 그렇다. 스멀스멀 올라온 냉기가 문득 뼛속을 파고들 때가 있다. 그 때가 위기다. 그 때가 지금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싸움은 바로 지금과 같은 위기에 종료된다. 승자는 승자로 남고 패자는 패자로 남는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선거에 이기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이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수많은 의문이 지도부를 감쌌을 것이고, 지도부는 그 질문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래서 필리버스터는 여기까지다. 어쩌면 나는 조금은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직도 나에게는 의문이 남는다
. 민주당에게는 어떤 전략이 남은 것일까. 지지자들에게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정당에게, 어떤 정치력이 남아 있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돼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아무런 합의와 협상과 절충 없이 테러방지법 통과를 방관하기로 결정했는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선가. 그렇다면 그 정당이 선거에 이겼을 때 어떤 정치력을 보여줄 지도 눈에 선하지 않은가.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너머를 생각해 보자. 이긴 다음에는 무얼 할 것인가. 국회의장의 불법적인 직권상정을 향한 저항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이겨서 무얼 하겠는가. 또 다음 선거 핑계를 대며 도망갈 것인가.
더불어민주당의 확실한 철학을 원한다. 그것은 선거에서의 승패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면서 수정할 수 있는 것은전략이지철학이 아니다. 전략은 철학을 담는 그릇이지 본질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가. 만약 필리버스터라는 전략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에 대한 확실한 분석이 있었나. 실패했다면 다음 전략은 무엇인가. 그 전략이라면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가.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철학이 무엇인지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필리버스터에 열광하는 이들은 필리버스터를 끝내도 야당에 투표할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싫어하는 이들은 필리버스터를 끝내면 야당에 투표할지도 모른다. 이런 계산이었으리라. 그렇게 시민들은 민주당에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것이다. 지더라도 좀 멋있게 지자. 소수 야당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표를 달라고 하시겠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7일 동안 해온 것은 무엇인가. 소수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에 표를 달라고 했으면 한다. 최소한의 염치는 좀 차리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시작, 그 열광적 온기가 냉기로 교차되는 시점에서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스스로에 대한 의문, 존재에 대한 회의, 의무감과 구속감,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절망감. 그 지점을 버틸 수 있어야 진짜 싸울 수 있는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에게는 그 정도의 결기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필리버스터는 끝났다. 그간 수고해주신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의원들에게 감사드린다. 모처럼 살아있는 정치를 열광하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열흘의 시간을 벌었다. 이 열흘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시간에 억지로라도 기대를 걸어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