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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반신과 짬짜면, 경계의 미학

  • 입력 2016.06.03 10:29
  • 수정 2017.07.03 17:52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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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은 참 훌륭하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중국집의 난제를 한방에 날려버렸으니 이걸 개발한 사람에게 노벨상이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 짬짜면의 기발한 착상 덕분에 복짬면, 탕짜면 같은 파생상품들도 등장했다. 나같이 요리못하는 독거세대에게는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짜장+짬뽕이 결합하여 탄생된 짬짜면이지만 이것의 본질은 '결합'이 아닌 '나뉨'에 있다. 짬짜면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섞임'이다. 이것들이 따로 담겨 있을 땐 각자 훌륭한 음식이지만 섞이는 순간 개밥이 된다. 짜장과 짬뽕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로막고 있는 칸막이야말로 경계의 미학을 보여주는 짬짜면의 정체성이다.

짬짜면처럼 융합의 시대를 거부하는 것들이 더러 있다. 예컨데 인간과 신의 관계가 그렇다. 완전무결한 신의 존재는 불완전한 인간과의 '경계'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이것들이 반씩 섞인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그 이름부터 괴상한 반인반신(半神半人)이다.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과연 행복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남유진 구미시장-

14일 구미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96회 탄신제 숭모제례'라는 행사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행사에는 도지사와 시장, 국회의원, 교육감 등 각계 인사와 3천여명의 인파가 몰려 살아있는 권력을 실감케 했다. 반인반신이란 참신한 표현 덕분에 구미시장의 발언이 부각됐을 뿐 이날 축사를 맡았던 김관용 지사와 김태환, 심학봉 의원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숭배의 언어를 쏟아냈다. 그날의 축사 릴레이는 흡사 누가누가 잘하나를 겨루는 북한의 웅변대회를 방불케 했다. 지난달 서울 모 교회에서는 올해 제1회 박정희 추모예배가 열렸다. 그를 34년간 '남몰래' 흠모해오던 일부 기독교인들이 올해 갑자기 추모를 하겠다며 판을 벌린 거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추대한 탄신제와 그가 죽은지 34년만에 열린 추모예배, 이것들이 정말 죽은 박정희를 위한 것일까?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나라에서 누가 무엇을 섬기든 탓할 수 없다. 세상에는 외계인을 믿는 사람도, 소를 믿는 사람도 있고, 박정희를 믿는 사람도 있나 보다. 문제는 박정희라는 인물이 외계인이나 소와는 달리 한국의 현실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이름이라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제정분리의 원칙'을 생각하게 된다. 박정희를 반인반신의 지위에 올려 놓는 순간 그의 피(정치적 정체성)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 정권은 비이성적인 '신성성'을 부여 받는다. 반인반신의 적자가 범인(凡人)일리는 없지 않은가.

제사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위 사진에서 사람들은 박정희 동상을 향해 절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을지 모른다. 사이비 종교의 공통된 특징은 현세의 기복성(祈福性)이다. 반인반신의 적자가 현직 대통령이다. 죽은 박정희와 산 박근혜, 사람들은 절을 하면서 누구에게 기복을 빌겠는가. 박정희를 목놓아 찬양하는 정치인들의 속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제정분리의 원칙을 심대하게 훼손하고 있는 쪽은 천주교가 아닌 '박통교'이다.

그런데, 후대의 필요에 의해 신격화되는 것이 박정희에게 좋은 일일까? 남유진 시장이 진심으로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생각하는지, 단지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한 아첨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망자를 수렁에 빠뜨린 것만은 분명하다. 대통령 박정희, 독재자 박정희는 매우 논쟁적인 '인간'이며 적어도 한쪽에서는 성공한 정치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조롱과 터부의 대상일 뿐이다. 인간 박정희의 업적(?)을 높이 사는 '일반인들'에게도 반인반신이 된 박정희는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하다 한들 죽은 독재자를 신으로 떠받들 봉건신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는 반인반신으로 미화된 권력자들이 여럿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의 '천왕'이나, 북한의 1세대 독재자 김일성이 대표적이다. 그네들에게 신에 버금가는 권위가 필요했던 이유는 체제(권력)의 안녕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희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박정희 신격화 작업은 현 정권의 정통성 결여에 대한 보수세력의 부담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반인반신’이라 불려지는 인간은 섞여버린 짬짜면 만큼이나 안타깝다. 신과 인간은 경계선이 있을때 각자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이것들이 섞여버린 반인반신은 개밥과도 같은 존재다. 죽은 독재자를 신의 영역으로 밀어올리는 것은 산 자들의 욕망이다. 누군가를 진정 아름답게 기억하려 한다면 그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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