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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에서 트럼프의 입국 여부를 놓고 회의를 벌인 이유

  • 입력 2016.02.11 14:58
  • 수정 2016.02.11 14:59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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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입국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영국 의원들

2016
1 18일 오후 4 30. 영국 의회 회의가 시작되었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날드 트럼프의 영국 입국을 거부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였다. 의원들은 다양한 발언을 이어갔다. 대다수 의원들은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관심병 환자(attention-seeker), 선동정치가(demagogue), 바보(fool)

이날 의회에서 트럼프를 지칭해 쓰인 말들이다.
노동당 잭 드로미 의원은도날드 트럼프는 바보다. 그가 바보인 것은 자유지만, 우리 영토 안에서 위험한 바보가 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발언했다.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는트럼프의 주장은 분열적이고 멍청하며 잘못된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의에는 반전이 있었다. 사실 영국 의회는 도날드 트럼프의 입국을 금지시킬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의 입국을 금지하는 권한은 의회가 아니라 내무부가 가지고 있다. 결국 의원들은 의회에 모여서 트럼프 욕을 신명나게 펼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간 거다.


그래도 의원들은 반드시 모였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의회는 도날드 트럼프의 입국 금지에 대한 토론을 벌였을까
. 이것은 영국 의회의 청원 제도와 관련이 있다. 영국 의회 홈페이지에는청원 사이트 (petition.parliament.uk)’가 마련되어 있다. 모든 영국 국민이나 영국 내 거주자들은 청원 사이트에 자기가 원하는 청원을 올릴 수 있다. 이름과 우편번호, 이메일 주소만 기입하면 청원을 올릴 수 있다. 이외에 추가로 다섯 명의 이메일 주소를 모아오면 이 청원이 의회로 전달된다.


▲ 도널드 트럼프 청원지도.
나름 잘 만들어 놨다. 어디서 얼마나 서명했는지 지도로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의회에 공식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청원 위원회가 이 청원에 대해 심사를 한다. 몇 가지 기준이 있기는 한데, 영국 의회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대부분 통과가 된다. 청원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면 이제 정식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된다.
이 서명 운동은 청원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영국 국민이 이메일 주소, 우편번호, 이름을 기입하면 서명이 가능하다. 만약 1만 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하면 정부는 이 청원에 대해 공식적으로 응답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10만 명 이상이 청원에 서명하면, 의회는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토론에 부쳐야만 한다.


▲ 원기옥 모으듯이 서명을 모으면 정부에 직접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청원 위원회는 상당한 권력을 행사한다. 청원에 대해 정부나 다른 의원들에게 압박을 넣기도 하고, 청원의 법적 근거를 더하기 위해 청원 입안자에게 추가 정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의회 토론 일정을 잡는 것도 청원 위원회고, 이 토론에 청원 입안자를 불러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청원 위원회는 11명의 여야 의원들로 꾸려지는데, 이들은 모두 내각에 참여하지 않은 인사들로 만들어 공정성을 더한다.
이번 도날드 트럼프 입국 거부 건도 마찬가지였다. 도날드 트럼프가런던과 같이 급진적인 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한 시민이 청원을 올렸다. 절차에 맞게 청원이 등록되었고, 시민들은 서명을 시작했다. 이 청원이 받은 서명은 모두 578,653. 역대 청원 중에서 가장 많은 서명을 받은 사례였다. “IS가 패망할 때까지 모든 이민을 금지하자 2위 청원과도 10만 명 이상이 차이 나는 숫자다.
영국 내무부는 1만 건이 넘었으므로 공식적으로 답변을 내놓았다. 내무부는 도날드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내무부의 입국 금지 권한은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지 않고, 사회에 직접적으로 해악을 끼치려는 이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무거운 권리다. 따라서 이번 건에 대해, 내무부는 개인의 입국과 입국 거부에 대한 입장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위에서 언급한 토론은 이번 청원이 1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으면서 진행된 토론이었다. 영국 의회는 개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 토론함으로써 의원들 각각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청원권,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제도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 모든 국민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볼 수 없기 때문에, 나랏일을 대신 해 주는 대표자 혹은 대리인을 투표로 선출해 대신 의견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 왜 힘없는 사람들은 법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언제나
차선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전부 들을 수 없으니 차선으로 선택한 제도다. 그렇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들은 국민들 개개인의 말을 들어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하고, 대리인이 주권자로 군림하려고 하는 시도를 막아 세워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입법을 하게 둘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개개인이 낼 목소리가 너무도 많고, 효율적으로 국무가 진행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목소리를 막아버릴 수는 없다. 주권자가 국무에 목소리를 낼 수 없다면 그건 주권자가 아니다. 고로 국가에서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있다. 아주 기초적인 제도는선거. 이 의원이 잘 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4년마다 한 번씩 재임용을 하거나 해고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 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기초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는 문제가 있다. 선거 때문에 의원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상당하다. 국민들이 선거일에만 주권자가 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피지배자로 돌아가는 현실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선거 외에도 다양한 제도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에는청원 위원회가 인터넷 서명운동 제도가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대한민국의 청원권

그렇다면 우리네 제도는 어떨까
. 우리에게도청원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 26 1항은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2항은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여기서의국가기관은 입법ㆍ사법ㆍ행정기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기관도 포함된다.
입법부에 내는 입법청원에 대해서는 청원법과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123조에는국회에 청원을 하려고 하는 자는 의원의 소개를 얻어 청원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입법청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어느 한 의원의 중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헌법소원도 있었지만 만장일치로 합헌 판결이 났다. 영국과 달리 우리는 최소 국회의원 한 명과는 안면을 터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영국의 청원은 서명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서, 어느 안건에 대해 국민들의 성원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하지만 우리 청원은 서명을 받아서 제출할 수는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거기에 영국에서는 청원 서명자가 1만 명이 넘으면 정부는 의무적으로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하고, 10만이 넘으면 국회 토론에 부쳐야 한다. 반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무사항도 없다. 청원의 채택율도 상당히 낮다. 19대 국회에서 접수된 입법청원은 모두 224건이지만, 이중 본회의까지 올라간 것은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채택율 0.9%. 이중 177건은 상임위에 계류되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에는 여러 가지 서명운동이 진행된다. 영국에서 토론에 부치는 선으로 둔 10만 명, 이슈가 되는 서명은 우습게 넘어간다.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 촉구 서명운동은 20만을 넘었고, 세월호 특별법 입법 촉구 서명은 100만을 넘었다. 민주당에서 진행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은 의견수렴 당일까지 40만을 넘었다. 하지만 누구도 공식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내자
.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청원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912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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