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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태권도 챔피언, 문대성

  • 입력 2016.02.11 11:50
  • 수정 2016.02.11 11:51
  • 기자명 유니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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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 태권도’ 이 글씨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휘호에 나온 대로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적어준 것인데, 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의 책 <세계를 향한 도전>,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등에 따르면 그가 박 대통령에게 요청해 이 휘호를 받으면서 국기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한다. 사실 ‘국기태권도’는 태권도라는 명칭을 처음 만든 최홍희 ITF창설총재가 1965년 처음 사용했다(최홍희의 <태권도와 나>).
# 사실 연원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내용인 태권도가 국기(國技) 즉, 국가지정 스포츠(혹은 무도)라는 것이 문제다. 태권도는 야구와 축구 등에 비해 인기가 높지 않다. 중국에서는 우슈를 생활체육으로 즐기는 이들이 많지만 태권도를 즐기는 한국성인은 보기 드물다. 어렸을 때 배우거나, 남자들은 군대에서 익힌다. 한국 고유의 무술이라는 주장도 온당치 않다. 김운용, 최홍희 모두 일본의 당수도가 태권도의 롤모델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정확히 따지자면 택견이 국기가 돼야 한다(이는 도기현이 쓴 <택견 그리고 나의 스승 송덕기>에 잘 나온다. 택견과 태권도는 완전히 다르다).
# 논리적으로도 그렇다. 정통성도 없고, 대중성도 약한 태권도가 왜 국기인가? 최고 존엄이 국기라고 하면 그냥 국기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발상 자체가 ‘군주국가'스럽다. 그래서일까? 태권도의 본산인 국기원이 발행하는 교본은 예전 ‘국기태권도교본’에서 2005년부터 ‘태권도교본’으로 단출해졌다. 대신 조정원 WTF(세계태권도연맹)이 미는 ‘태권도는 한국이 세계에 준 선물’이라는 문구가 추천사에 들어갔다. 참고로 이런 논쟁은 1999년 도올 김용옥이 “태권도는 일본 가라테의 아류”라고 지적하면서 새삼 화제가 된 바 있다.
# 이처럼 ‘국기 태권도’는 그 태생에 약점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태권도를 폄훼할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태권도는 1994년 IOC파리총회에서 김운용의 ‘개인기’ 덕에 기적같이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승인됐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4회 연속 올림픽정식종목으로 치러졌다. 올해 리우 올림픽은 물론, 당분간도 인류 최대의 축전인 올림픽의 무대에 설 것이다. 전 세계에 8,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한국어 구령에 따라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 출생의 비화가 좀 석연치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성공을 깎아내려서야 되겠는가? 태권도는 국기가 아니어도 태권도다.
# 태권도가 세계 최고의 무예스포츠가 된 것은 올림픽정식종목 채택, 그리고 앞서 태권도사범들의 눈물겨운 해외개척 등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태권도가 표방하는 가치가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태권도 5대정신이라는 게 있다. 예의(서로 공경하고 의리를 지키며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 염치(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행동에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안다), 인내(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며 스스로 이겨낸다), 극기(자기의 요구와 욕망을 참고 이겨서 굳건한 의지를 기른다), 백절불굴(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바르게 이겨낸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이것 참 마음에 든다.

# 한 달 만에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고향인 인천 남동갑에서 출마를 선언한 국회의원 문대성이 많은 욕을 먹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그는 태권도 5대정신을 바탕으로 참 많은 것을 이룬 훌륭한 청년이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선수는 많지만 문대성만큼 이름을 떨친 이는 없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보여준 그의 뒤후려차기는 ‘태권도를 살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발군이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에 겸손함과 성실함, 그리도 도전정신도 가졌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실시된 IOC선수위원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1위로 아시아 첫 선수위원이 되는 데는 이런 그의 캐릭터가 크게 작용했다.
# 정치는 참 대단하다. 이렇게 이미지 좋았던 청년이 만인의 욕을 먹는 정치인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2년 총선 때 그의 논문표절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는 곧 사실로 드러났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당시 많은 스포츠스타와 연예인이 엉터리로 학위를 받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 중 하나가 문대성이었는데 정치, 그것도 선거판에서 불거지니 그 위력이 엄청났다. 어찌어찌 당선은 됐지만 그는 '식물국회의원'으로 4년을 보내야 했다. 정치권에서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유명인은 그 가치가 쉽게 떨어지니까.
# 사람 문대성의 바닥도 드러났다. 그는 정치입문 이후 태권도 5대 정신과는 상반대 행보를 보였다. 아예 배우 김혜수처럼 깨끗이 인정하고 학위를 반납해버렸다면 어땠을까? 소송으로 시간끌기(국민대가 그의 박사학위를 공식 취소하자, 그는 무효소송을 냈고, 2014년 1심에서 패소했다. 그리고 항소한 상태다)에 나서는 등 그렇게 버텼지만 얻은 것은 존재감 없이 버틴 국회의원 4년 임기와 간신히 지킨 IOC 선수위원 명함뿐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와 자기 욕망을 누르는 극기는 없었다. 오히려 현역 국회의원으로 2004년 11월 인천시장 특보를 맡고, 얼마전 친박인 홍문종 국기원이사장을 상대로 1인시위를 하는 등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선수 시절의 문대성

# "정정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서기 위해 스포츠라는 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지난해 12월 문대성의 불출마 선언의 한 내용이다. 이를 떠올리면서 한 가지 비현실적인 상상을 해 본다. 지금이라도 문대성이 “곡절은 많으나 내 표절은 사실이고, 크게 잘못했다. 그리고 표절사태에 대응하는 제 태도에도 문제가 많았다. 과오가 크지만 앞으로 체육인으로, 태권도인으로 열심히 살겠다”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리고 자숙 및 내실을 다지는 시기를 거쳐 IOC선수위원의 경험을 살려 체육행정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쉽게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진정성이 통한다면 국가대표감독, WTF총재, 국기원 이사장 등 그가 할 일은 참 많아 보인다. 문대성은 올해로 고작 만 40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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