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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사과와 윤창중의 '엉덩이'

  • 입력 2016.02.10 15:36
  • 수정 2016.11.10 11:01
  • 기자명 정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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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비 새누리당 예비후보

필자 주: 총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요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는 젊은 예비후보가 있습니다. '얼짱 후보'란 별명으로 회자되고 있는 새누리당 조은비 예비후보인데요, 각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조 씨의 외모에 포커스를 맞추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얼짱 후보'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인기 커뮤니티와 SNS상에서는 조 씨가 '진짜 얼짱이 맞는가'를 두고 외모 품평회가 한창입니다.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얼짱 정치인' 관련 기사들. 이래도 되는 걸까요? 예쁜 여성 정치인에게 '얼짱'이란 칭찬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요? 3년 전 필자의 블로그에 작성된 글입니다.



오바마는 왜 사과를 해야 했을까
?

지난 달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한 기금모임행사에 함께 참석한 캘리포니아 주 카말라 해리스 법무장관에게
"그녀는 똑똑하고 헌신적이면서 강인하고 모두가 원하는 그런 법무장관이다. 그녀는 전국에서 가장 외모가 훌륭한 법무장관(the best-looking attorney general in the country)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발언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고, 미국사회는 대통령에게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결국 오바마는 다음날 장관에게 사과전화를 걸었고, 대변인을 통해 국민들 앞에 사과메시지를 전해야 했습니다. 오바마는 왜 사과를 한 것일까요?


오바마의 칭찬 중 문제가 된 부분은 '최고 미인 법관'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오바마의 '칭찬' 뒤 미국 각 매체의 여성언론인들은 즉각 "여성은 능력보다 외모로 판단되어야 하는가?"라는 논조의 비판기사들을 쏟아냈고,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미국사회에 만연한 외모의 장벽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난이 들끓었습니다. '얼짱장관', '얼짱국회의원' 같은 헤드라인이 난무하는 한국사회에서 오바마의 사과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엉덩이 '툭툭'이 중요한가


지난 주말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는 윤창중이라는 남자에게 완전히 흡수되었습니다. 지난 8일 워싱턴 경찰에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바와 자신의 호텔방에서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곧 한국에는 대통령의 방미일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대변인이 밤새 술을 마신 뒤 처음 만난 21세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고, 알몸 상태로 모텔방에 불렀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날 새벽 전격 경질된 뒤 홀로 귀국한 이남자는 11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성추행 의도는 없었다'며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결백을 주장하자 사건의 양상은 진실게임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언론과 청와대, 윤창중이 벌이고 있는 이 진실게임의 양상은 정말 괴상합니다.

그는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는가? 아니면톡톡친 것인가?


그는 호텔방에서 팬티를 입고 있었나? 벗고 있었나
?


이 저열하기 짝이 없는 진실게임은 우리 언론의 젠더의식 수준을 잘 보여줍니다. 엉덩이를 톡톡 치든, 툭툭 치든, 퍽퍽 치든 그런 의성어의 종류는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성추행 여부를 소리로 판단하는 국가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팬티를 입었든, 벗었든, 반쯤 입고 있었든 그 차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성추행 여부는 가해자에게 의도를 물어 판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사건의 공방이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변명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다면 많은 부분이 뒤집힐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진술을 토대로 진위를 가리려 하는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사건의 진위를 밝히는 핵심은 윤창중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가 여부입니다.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이 무엇이든간에 윤창중이 '누가 나의 몸을 만질 것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성적인 행위를 할 것인가'라는 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터치의 소리나 팬티착용 여부와 같은 자극적인 '쟁점'들은 사건의 본질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가십에 불과한 것이죠.


문제의 '나쁜 손'

'얼짱장관'이 뭐 어때서?


윤창중 사건이 보도되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사건의 파장이 커지는 원인으로종북 페미니스트를 지목했고,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사건의 원인이한국과 미국 간의 문화 격차 때문이라 주장했습니다. “젖가슴도 아닌 겨우 엉덩이라는 칼럼을 쓴 정재학이라는 사람이 초딩이 아닌, 시인이자 현직 중학교 교사라는 사실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낍니다. 사회의 찌꺼기들이 모여드는 하수구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지상에까지 진동한다면 하수구를 청소할 때가 온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중세를 살아가는 마초들보다는 건강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중세의 인식들이 통용되는 세계가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의 크기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극우마초들의 치명적인 언어 성폭력이 게재될 지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가부장적 마초논리가 다수 대중들 사이에서 널리 소비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사건이 불거지면 "여자가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같은 '행실론'에서부터, "그 여자 뭔가 수상한데?"같은 '꽃뱀론', "별일도 아닌데 남자만 인생 조졌네"같은 '역 동정론' 등 다양한 마초식 대응 매뉴얼이 등장합니다. 몇몇 이름을 알만한 극우논객들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중세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성장관에 대한 외모칭찬을 성차별로 받아들여 오바마의 사과를 이끌어냈던 미국사회의 젠더감수성과, 윤창중이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어떻게' 만졌는가에 집중하는 한국사회의 젠더감수성, 이것들의 차이는 무얼 의미할까요.


윤창중 같은 치한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것을 바라보는 사회일반의 시선입니다. '얼짱장관'과 윤창중의 '엉덩이'는 둔감한 젠더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얼짱장관이란 말에서 천박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윤창중의 '엉덩이'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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