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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아이를 만났다

  • 입력 2016.02.07 15:40
  • 수정 2016.02.07 15:41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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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저는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 담당이었습니다.
이건 까마득하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일종의 실패담이에요. 즉 방송을 타지 못한 일입니다. 인천 어느께에 4남매가 살았어요. 맏이는 스무 살, 막내는 열 살, 그 사이에 중고생 둘이 박힌 그런 4남매였어요. 그들의 소식을 알려 온 건 동네 교회 목사 사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애초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사람이었고, 엄마는 빚쟁이에 몰려 집에 들르지도 않는다 했죠. 사모님이 가장 가슴 아파 한 건 막내였어요.

큰 아이는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낮에는 내내 자는 것 같고 둘째와 셋째는 학교도 제대로 안 가고 자기들 놀기 바빠요. 막내가 제일 안됐어요. 밥도 제대로 먹고 다니질 못해요. 학교 급식 말고는 제대로 먹는 끼니가 없는 거 같아요. 게다가 툭하면 형이나 누나한테 맞는 거 같고.

그 방 (집이 아니라 단칸방이었어요)은 언제나 둘째와 셋째의 친구들로 들끓었고 담배 연기로 너구리 몇 마리는 잡을 거 같았어요. 술병도 심심찮게 보이구요. 그런데 보아하니 컵라면도 끓여먹는 거 같고, 과자 봉지도 나오는 거 봐서 막내가 그렇게 굶지는 않는 거 같다고 얘기했다가 사모님한테 혼이 났죠.

지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컵라면 끓여 먹으면 막내한테 한 젓가락이라도 가는 줄 알아요? 아시다시피 그 집은 애들 놀이터예요. 중고등학생 애들 열댓 명이 그 골방 안에서 놀고 있다구요. 근데 어떻게 막내가 그 라면 먹지 않냐고 나한테 따질 수가 있어요 PD란 사람이. 걔 오래 걷지도 못해요. 학교 갔다 돌아오다가 지쳐서 우두커니 길거리에 앉아서 쌕쌕거리는 거 보면 눈물이 나는구만.

그 싸늘함이라니.... 사모님의 그 낮고 조곤조곤한 서릿발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가 식어 올 정도입니다. 정황을 보아하니 정말 그렇더군요. 일하고 돌아온 맏이는 오전 내내 잠들어 있었고, 학교에서 소위 '날라리'로 소문난 둘째와 셋째는 친구들과 놀러다니기 바빴죠. 그 사이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가 없는 막내는 비썩 곯아가고 있었어요. 애가 코피를 흘리는데 아무도 그걸 닦아 주지 않아서 이 서툰 손으로 애 코를 틀어막았다니까요.


내가 가장 분격했을 때는 '빚쟁이에 쫓겨 집에 못 들어온다는' 안타까운 사연 속 엄마라는 사람이 그 집에서 불과 300미터 거리에 다른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을 때였어요. 무려 2년 동안 그 300미터 거리에 살면서 아이들끼리 사는 집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빚쟁이는 핑계일 뿐이었구요. 한 쪽은 식구들을 내버려둔 채 사라져버렸고, 또 다른 쪽은 지척에서 살면서도 자식들을 외면했습니다. 그 무책임한 부모에게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억지로 누르고 아이들의 엄마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 떠나서 당신 (원래 취재 대상자에게 이런 말 쓰지 않죠. 하지만 그때는 썼어요) 막내는 챙겨야 할 거 아닙니까. 큰 애들이야 제 먹을 것은 제가 챙긴다 치고 막내는 어떻게 합니까?

그 엄마라는 사람, 변명은 청산유수였어요.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큰 딸이 벌어온 돈을 달래서 가져간 이야기까지 뻔히 듣고 왔는데 딸이 무슨 고생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며 땅을 치더니 둘째 셋째도 공부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며 한탄하질 않나, 막내 얘기를 할 때는 그저 눈물 바람만 해댔습니다. 이 집 사정은 이미 온 동네에 화제였고, 엄마를 만나 아이들 사는 얘기를 전해 줬다는 동네 사람만 수십 명을 만나고 온 뒤였는데요.
막내는 또래 아이들보다 10센티미터 이상 작았어요. 아무래도 영양 부족 탓인 거 같았죠. 아이가 안심하고 먹는 끼니라곤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 그리고 방학 때는 급식 대신 나오는 쿠폰으로 사 먹는 밥이라고 했습니다.(종종 쿠폰을 형이나 누나가 빼앗아 간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이럴 때 우리가 상투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죠.

우리 지훈이(가명)는 커서 뭐 되고 싶어?

언젠가 이정희 의원이 만난 난곡의 아이는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급자'라는 답을 해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팠다지요? 그렇듯 이 질문에는 참 다양한 그리고 예상외의 대답이 나와요. 대통령부터 연예인까지 골고루 나오고, 어떤 후배는 “나도 누나 같은 PD가 되어서 나 같은 아이들 도와 줄래요.” 하는 기막힌 멘트를 따 와서는 수십 번씩 자랑을 해 대곤 했지요. 지훈이의 답도 예상 밖이었어요. 푹 소리가 나도록 내 허를 찔렀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하하 크면 다 어른 되는 거잖아.

아저씨 저는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에요.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 것 같거든요.

순간 재갈이라도 문 것 같았어요. 꼬질꼬질한 이마와 콧물이 말라붙은 코 사이로 촛불처럼 가물거리는 아이의 눈동자 앞에서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했죠.
한 방 단단히 맞은 복서가 허우적거리며 팔을 휘두르듯 “네가 죽기는 왜 죽어? 보니까 백 살까지 살겠다, 임마.” 하면서 과장되이 눙칠 수 밖에요. 그때 헤 하면서 입 벌려 웃는 아이의 표정 참 오랫 동안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고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는 부모, 동생을 챙기기는커녕 자기 친구 돈가스 대접하려고 동생에게 새우깡 한 봉지 사 주고 쿠폰 뺏아 가는 형, 누나를(물론 이 아이들도 피해자인 것은 마찬가지지만요.) 향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밀었습니다. 옛날 김황식 총리의 발언의 말마따나 “복지 문제는 가정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국격” 이라면, 국격 하나 장히 망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그 분노가 향한 곳은 이 나라였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고 있는 아이의 밥 먹을 권리를 챙겨야 하는 건 아무리 부인해도 나라일 겁니다. 하물며 이러다가 5백 년 뒤면 한국인이 없어진다고 설레발 치면서 낙태 규제 강화를 대책으로 삼을 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나라라면, 교수 씩이나 되는 사람이 “건강이나 경제상의 불가피한 이유 없이 출산을 기피하는 행위에 대해 부담금을 물리자“고 기염을 토하는 나라라면 최소한 굶주리는 아이들의 배만큼은 채워주겠다고 국가 차원에서 나서는 게 국격 아니겠어요.

아니, 이건 굳이 저출산이며 국격을 따지고 나올 문제가 아니에요. 염치의 문제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염치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이 때의 이야기가 자주 떠올라 괜히 울컥합니다.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책임지기는커녕 딸이 번 돈마저 빼앗아가던 부모와 이 나라는 얼마나 다른 걸까요.
한 며칠 정말 추웠죠. 이 눈과 추위가 지옥인 분들, 내가 만났던 참 많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제 옆자리에 왔다가 뒷자리에 누웠다가 사라집니다. 그 중 지훈이도 있네요. 어른이 되는 게 소원이었던 아이. 지훈이도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정작으로 어른이 되어야 할 사람은 이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묵은 해 잘 정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나라 국민으로서 '형편껏' 받아야 할 복일지도 모르겠지만.



※ P.S. 이 아이들 어떻게 됐냐구요? 도무지 솔루션을 제시할 길이 없어서 방송은 접게 되었는데, 대신 주민센터 가서 좀 '갑질'을 했지요. 단순히 후원이나 지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는데, 미안하게도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우리를 무섭게 싫어했으니까.

이거 우리가 방송하려다가 일단 유예는 하는데, 좀 도와 주십시오. 일단 막내부터 어떻게 하시든지. 비슷한 아이템을 누가 해 버려서 잠시 유예된 거니까, 한 달 뒤에 와서 상황 똑같으면 바로 방송 겁니다.

다음 다음 날 전화가 왔더군요. 목사 사모님으로부터.

고맙습니다. 뭣이 안된다, 규정에 없다 하더니 어제 구청에서까지 나오고 하여간 시끌벅적한 뒤에 정리가 됐네요.

그런데, 그 이후로 몇 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나아지는 게 없습니다. 아빠에게 맞아 죽어 백골이 된 아이, 부모의 손에 훼손되어 냉장고에 들어가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욕을 좀 더 먹더라도 긴급출동 SOS PD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오늘 서울역에 나와보니 사고로 발톱이 빠졌다는 이유로 해고된 골프장 캐디 한 분이 이 추위에 유인물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도 사람들이 받아가질 않기에, 돌아가서 받아 들고 왔습니다. 눈을 감으면 지옥은 커지고 뜨면 줄어듭니다. 보기 싫더라도 보아야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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