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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그거 왜 하는 거예요?

  • 입력 2016.02.05 11:24
  • 수정 2016.02.0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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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료는 의사에게 채식은 채식주의자들에게
못 먹는 게 없는 허 모 에디터(23). 나물 반찬 풀 반찬 고기 반찬 생선 반찬 뭐든 가리지 않고 웬만한 건 다 잘 먹는다.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던 어느 날,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게 된다. 거기서 보게 된, 원래는 동물이었던, 스툴에 갇혀 괴로워하던고기들을 보고 허 에디터는 채식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이거 돼지 나오는 영화 맞지요…?
시네마달

근데 내가 고기를 끊을 수 있을까? 하루라도 고기 없으면 못 사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식탁에 풀밭만 있으면 어쩐지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식사 중에서라도 고기를 덜 먹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응 우리 오늘 점심? 내가
, 돼지고기 김치찜 먹고 싶다고? ,
…”

차마 채식을 한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괜히 유난 떤다는 눈빛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왜 채식을 하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게. 고기들이 불쌍해서? 생각 이상으로 아직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일단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채식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전화번호부를 넘겨 가며 확인해도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마침 지나가던 동료 황 모 에디터(23)가 말을 걸었다. “내 동기 중에 채식 엄청 열심히 하는 애 있는데, 연락해 볼래?” 바로 번호를 받아 연락해 보았다. 다양한 채식주의자들과의 만남, ‘Meet the Veggies’ 시리즈의 첫 인터뷰이는 그렇게 섭외되었다. 가족들과 다함께 십 년 넘게 채식을 해 왔다는 최가은 씨 (가명, 23)


그녀는 락토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



일단 저희 집이 채식을 해서요


자인
간단하게 자기소개랑, 채식하시는 이유를 여쭤보고 싶어요.
가은정치외교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채식은, 아버지께서 시작하셔서 온 가족이 다 따라하게 된 케이스예요. 열 살 때부터?
자인오래되셨네요. 아버지께서는 어떤 이유로 채식을 하신 건가요?
가은저희 집이 명상 같은 걸 해요. 보통 명상이랑 채식이 같이 가더라고요.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자인가족 중 한 명 정도는난 고기 먹을 건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어요.
가은딱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만, 오빠 같은 경우는 군대를 가야 해서. 거기서는 아무래도 그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갔다 와서 시작했어요.


군대에서 채식이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게 맛있어지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foodnjoy


자인가은씨는요?
가은그때는 좀 어린 나이여서, 자연스럽게 따라한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 몰래 한두 번 고기를 먹기도 했어요. (웃음) 그러다가 습관이 든 다음부터는 급식 대신 도시락 싸서 다닐 정도로 지켜왔어요.
자인아휴 피곤하셨겠다.
가은그래서 대학 와서는 좀 편했어요. 어머니가 해 주신 반찬을 먹거나…? 주변에러빙헛같은 채식 식당으로 가거나.
자인러빙헛은 어떤 곳이에요?
가은

비건이고, 오신채 사용을 지양해요. 메뉴도 많아서 좋아요. 거기서 주는 뚝배기 특히 좋아하고요.
자인사실 채식 메뉴라고 하면 그렇게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는 않거든요.


흥미 있으시면 가 보세요
러빙헛


가은친구들도 그렇게 말해요. 그래서 가면 다들 놀라죠. 짬뽕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냐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해물도 고기도 안 들어가거든요. 콩스테이크나 콩까스 같은 것도 반응이 좋았어요. ‘종종 자기 혼자서도 간다라는 사람도 생기고.
자인다니시는 학교에 채식 메뉴를 파는 식당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거긴 어때요?
가은, 이용해 봤어요. 근데 거기 두부스테이크에는 계란이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우유만 먹거든요.
자인채식도 구분이 굉장히 세세하네요. 혹시 우유만 드시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가은우유를 짤 때도 원래는 자연스럽게 짜야 하는데, 요즘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피고름까지 짠다고 해요. 그래서 안 먹지만,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인아무래도 그렇죠.
가은그래도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하는 편이고. 비슷한 맥락에서 동물성 제품, 가죽 같은 것도 안 쓰고 있어요. 정리하면, 지향은 비건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있는 편.


비건 = 고기는 물론 해산물이나 달걀, 우유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 유형.


근데 저는 계속 이렇게 살았어요

자인‘치킨 안 먹고 싶어?’ 같은 말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
가은그냥 별로 안 먹고 싶다고 말하고 끝내는 편이에요. 너무 많이 들어서중학교 때부터 들어 왔던 말이니까.
자인진짜로 안 드시고 싶으세요? (집요)
가은(웃음) 처음엔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가 역해진다고 해야 하나? 냄새가 비리게 느껴져요. 그래서 저절로 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인식성이 달라지셨구나.
가은

그런 편이죠. 그리고 다른 대체 식품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빵을 좋아하는 편인데, 굳이 계란이 들어간 빵을 먹지 않더라도 비건 베이커리 같은 게 서울에 몇 군데 있으니까 그런 곳을 이용한다든지 해서요.


달걀도 우유도 버터도 없이 괜찮은 빵을 만들어내는 마법의 베이커리. 신촌에 있다


자인영화잡식 가족의 딜레마를 보면, 주인공인 감독과 남편, 그 아들이 나와요. 아이가 어린 편인데, 처음엔 채식을 꺼려하던 남편이얘는 성장기인데 고기 안 먹이고 어떡할 거냐라는 이야기를 해요.
가은흔히 채식을 한다 하면야채를 먹는구나하고 생각을 하세요. 그런 게 아닌데. 근데 (채식을 해도) 밸런스를 맞춰서 하는 게 필요해요. ‘샐러드만먹는 건 좀 아닌 거죠. 뭐든 그렇겠지만,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어린이는 밸런스 있는 채식으로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시네마달


자인집에서 드시는 식단이 궁금해요.
가은백미는 잘 안 먹어요. 주로 잡곡 등 많이 섞어서 먹고, 두부나 콩이나 버섯은 꼭 하나 있었고.
자인국물은 어떻게 우리나요?
가은버섯을 넣거나, 다시마 같은 걸로 육수를 내요. 아니면 야채 육수를 내요. 파를 넣거나 해서.
자인혹시 김치도 채식에 맞춰서…?
가은, 따로 담가요. 멸치 대신에 과일을 넣거나육수 낼 때 표고 버섯이랑 양파, , 사과, 배 등을 함께 넣어서 끓여요. 호박도 삶아 넣고. 마늘이랑 생강 넣고. 그래서 밖에서는 김치를 먹고 싶어도 힘들어요.
자인확실히 힘드네요. 채식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어떤 게 있으세요?



가은회식이 정말 힘들어요. 고깃집을 가면, 냄새도 싫거니와, 다른 사람들이 너무 미안해하니까 오히려 불편한 거예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딱히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서로 불편하고.
자인아이고…
가은무엇보다, 가게에 가서 뭐 빼달라고 하면 좀 싫게 생각하시기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거 다 빼면 뭐 먹냐고 하시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채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자인맞아요. 진짜 고기를 빼면 선택지가 너무 없어져요.
가은

, 불편한 거 하나 더. 친구 중에서는 고기 안 먹는다고 하면불쌍하다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어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따박따박 따지기에도 좀 애매하고


채식을 계속 할 거냐고요
? 네 그럼요
자인아는 분 중에 알레르기 때문에 고기를 아예 못 드시는 분이 계세요. 그런데 회식 때 그런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넌 술도 고기도 못 먹으면 사회 생활 못 하겠다라고. 왜 이런 (고기나 술 같은) 걸로 내 사회 생활을 평가 받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곤 해요.
가은그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나중에 회사 가서 회식 어떻게 할 거냐걱정해주는 말이긴 한데, 사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배려가 부족한 거잖아요? 고기를 안 먹는다고 못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자인아예 채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이 없는 느낌.


인도 채식인들을 위한 표식.
각각 채식불가(빨강), 채식가능(초록), 계란함유(갈색)를 의미.


가은. 그리고 물어봐도… ‘내가 채식하니까 다른 데 가자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요. 저 하나 때문에 장소를 바꾼다는 것이 참
자인한국이 아니라면 채식이 더 쉬울까요?
가은제가 대만에 여행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놀랐던 점은 먹거리에 불편함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길거리 지나가다가 라는 글자가 보이면, 채식음식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채식 만두도 사먹어 보고! 그런 점이 좋았어요.
자인우와
가은프렌차이즈도 그랬어요. 모스버거에 그냥 탄산음료나 마실 요량으로 들어갔는데, 채식 버거가 있는 거예요! 패티 대신에 버섯을 넣고, 밥을 빵으로 해서 만든 건데 맛있었어요. 그렇게 채식 메뉴가 하나라도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어요.


직접 보여준 모스버거 채식 버거 사진그때 먹은 버거.
최가은


자인아까 말한잡식 가족의 딜레마에 나오는 아이처럼 괜찮은 선례들이 나오고 있는데, 아직은그래도 좀…’ 같은 분위기가 있긴 한 것 같아요.
가은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많지 않잖아요, 특히 한국엔. 그래도 결혼은 하고 싶고(웃음) 그런 고민이 많긴 해요, 나이 들어가면서.
자인채식도 결혼 조건에 포함되겠죠?
가은. 저는 가정을 꾸릴 때도 남편이 그런 걸 할 건지 여부를 따질 거고, 아이도 채식을 시킬 생각이에요.
자인굳은 의지!
가은

아이 의사도 물어봐야겠지만,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채식을 시킬 생각이에요. 저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인터뷰 전에는 고민이었다
.'한국에서 채식하는 삶이 가능할까?' 였다. 전세계 맥도날드 수보다 치킨집이 더 많은 나라에서 과연 채식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
인터뷰를 마치고 나왔다. 채식, 의외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문제는, 내가 시작할 마음을 먹는 것. 그리고일단은시작하는 것.




-2-

최근에 채식을 막 시작한 사람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채식 이야기를 듣고 온 지 1주일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명쾌해졌고, 어쩐지 교양 수준이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모든 채식주의자가 부모님 따라서 채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고기 맛을 아는 채식주의자는 무슨 계기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근래에 채식을 시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수소문을 해 보니, 의외로 어렵지 않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마침 궁금했던 유형이었다. 20년 넘게 유지해 온 식습관을 확 바꾸어 1년쯤 전부터 채식을 시작했다는, 이수영 씨 (가명, 24)


그녀는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에 해당한다



저에게 치킨은 남친 정도가 아니라 남편 같았어요
자인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수영
졸업을 앞둔 여학생이에요. 치킨을 참 좋아했구요.
자인역시 치킨이죠!
수영
웹툰역전 야매요리보시면, 거기서 치킨이구남칡으로 나오잖아요? 가소롭죠. 다른 사람들에게 치킨은 전남친이었다면, 저에겐전남편과 같은 존재였달까.


가끔 네 생각이 나느냐고? 아니 전혀.
정다정다


자인사별하셨군요. (진지)
수영
(웃음) 그 정도로 치킨과 고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결별을 했죠.
자인원래 채소를 좋아하셨다거나?
수영
고등학교 때는 급식 메뉴가 세 개였어요, , 양식, 한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저는 무조건 고기반찬 있는 걸 먹었어요. 그런 사람이 채식을 하게 되었죠.
자인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수영
지난 학기에 본 동영상 하나가 저를 확 바꿨어요. 기억하기도 좋게, 빼빼로데이였네요.
자인어떤 동영상이었기에!
수영
지난 학기에환경윤리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그 때 교수님이 동영상 하나를 틀어 주셨어요. 구제역 동영상이었는데, 구제역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의심되는 지역의 돼지들을 다 도살하는 거였어요.


자인맞아요. 그때 한참 그랬죠.
수영
엄청 큰 트럭으로 그 애들을 욱여넣고 실어다가 엄청 큰 구덩이에 집어넣어 다 죽이는 거예요. 그 영상을 봤는데, 사람들 표정 다들 안 좋죠. 그런 불편한 것 보면 불편한 마음 생기잖아요. 불쌍하다,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나.
자인저는 뉴스에 그런 거 나오면 그냥 딴 거 틀었어요. 너무 끔찍해서.
수영
맞아요. 끔찍했죠.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구제역이 아니었더라도, 결국 걔들은 우리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잖아요? 근데 (생매장 당하는) 쟤네만 불쌍하다 생각하는 것도 위선적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거에요.
자인음…
수영
그래서 이참에 채식을 할까 생각했었던 거고요. , 제가 제가 멍멍이를 두 마리 키워요.
자인멍멍이요?
수영
치와와인데 다리가 엄청 퉁퉁아니, 통통하구요.
자인(‘퉁퉁이라고 쓴 메모를 지우며) “통통”…
수영
치킨 먹으면 맨날 줘서 그래요(웃음) 근데 어느 날은, 뭔가 닭한테 미안한 거예요. 얘는 불쌍하게 태어나서 치킨이 될 운명에 있고, 멍멍이들은 팔자 좋게 태어나서 닭다리 얻어먹고. 같은 동물인데. 그런 기억들이 구제역 동영상 위로 막 포개져요.
그래서 채식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막상 시작을 하니까, 친구들이 받아 주질 않더라고요.


“친구들은 진지하게 받아 주질 않더라고요


자인치킨이 구남편인 애가 무슨 소리냐, 뭐 이런?
수영
. 근데 이해는 해요. 사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고그래서 일단 서점에 갔어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책이라도 보면 어떨까 해서. ‘맛있게 채식하는 법뭐 이런 제목으로 시작하다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말을 생각해 보니 이상한 거에요.



자인그러게요?
수영
저랑 딱 맞잖아요. 개는 사랑하면서 돼지랑 닭은 맛있게 먹는 그런 상황. 왠지 이걸 사면 바로 채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었는데, 역시.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딱 다잡히는 거예요. 덕분에 도축의 불편한 진실 같은 것도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채식을 굳게 결심할 수 있었어요.
자인그럼 그 때부터 일 년 정도 되어 가네요.
수영
, 거의 1년 했어요.
자인지금 채식의 단계가?
수영
락토 오보요. 계란이랑 우유는 먹는.
자인채식 하는 그 범주를 딱 정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하면 확실하게 확 모두 비건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수영
(웃음) 채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자인무조건 안 먹는 게 더 좋은 거 아니구요?
수영
. 제가 고기도 고기지만 빵이든 아이스크림이든 정말 좋아하거든요. 고기를 끊으니까 그런 쪽으로 돌리게 되더라고요. 근데 우유를 끊는다면아휴 힘들어요. 못해.
자인할 수 있는 만큼.
수영
처음부터 비건으로 시작했으면 못 했을 거에요. 물론 욕심은 있어요. 내년에는 우유랑 계란까지 끊고 완전 비건으로 가서, 김치도 직접 담가 먹으려고 해요.
자인아 맞다. 일반적인 김치는 채식에 안 맞다고 하더라구요.


채식
, 당신도 시작할 수 있는 일.

자인다른 분들께도 드렸던 질문인데, 몸의 변화가 있었나요?
수영
이를테면요?
자인, 채식 이후에 체력이 달린다거나,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거나.
수영
. 채식하고 일, 이주 정도는 거의 비건처럼 먹었어요. 밥에 김 싸먹고, 풀 반찬 같은 것만 먹었거든요. 우유도 안 먹고, 계란이나 빵 같은 것도 안 먹고. 그래서 그때는 일어나면 어지럽고 그런 게 있었어요.
자인그래서 아까할 수 있는 만큼이라고…?
수영
. 그 이후에는 계란이 들어갔지만 계란 형태가 안 보이는 것 정도는 먹었고, 한 달 정도는 두유를 먹었어요. 그것까지 안 먹으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딱히 어지럽단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자인더 좋은 점은 없나요. 다이어트라던가 다이어트라던지
수영
아 다이어트요? 완전 좋죠! (웃음) 채식하고 한 삼사일 지나고서부터는, 제가 정말 변비가 심했는데, 쾌변 진짜 짱짱. 화장실 가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고, 뱃살도 많이 빠졌고!


웹툰 '열혈초등학교'


자인아까 책 이름이 뭐였죠. 이따 가는길에 사 봐야
수영
(웃음) 완전 비건으로 되면 더 날씬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자인신념을 지키니 이런 부수적인 효과도 따라오네요.
수영
. 근데요,
자인?
수영
애초에 이런 걸 바라고 채식을 하면 금방 그만두게 될 거예요. “에이, 별거 없네하면서 금방 맘에 드는 황제 다이어트로 전향하게 될지도 몰라요.
자인혹시 심적인 변화는 있었나요?
수영
어… 사람이 좀 착해진다는 거요?
자인?
수영
그러니까, 제가 채식하기 전에 언니랑 크게 싸운 적이 있었거든요. 좀 오래된 싸움이었는데, 채식을 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채식까지 하는 마당에 누굴 미워해서 뭐하겠어,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것은 깨달음의 경지….


수영
그래서 제가 먼저 화해하자고 했거든요. 그냥 좀 착해진 것 같아요. 채식까지 하는데, 이런 동물들까지 생각을 하는데 저 사람한테 화를 내서 뭐 하겠어 하는. 전보다는 확실히 성격이 좋아진 것 같긴 해요.
자인(존경) 그렇군요가족들 반응은 어때요?
수영
채식 전에는 엄마가 우리 많이 먹으라고 고기를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고, 엄마가 정말로 고기를 안 좋아하시는 거더라고요.
자인뜻밖의 발견…!
수영
그래서 이제는 저랑 둘이 먹을 땐 청국장 하나 해 놓고, 밑반찬 풀반찬으로 한두 개 해 놓고 엄마랑 둘이 밥을 먹어요. 그럼 되게 기분이 좋아요. 또 집 밖에서는 채식을 하기 힘드니까, 가급적 밖에서 안 먹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랑 먹게 되고, 더 친해진 기분도 들고.
자인혹시 채식하시고 나서, 미각이 살아나거나 한 변화도 있으셨나요?
수영
맛있게 먹으려면 맛을 내야 하잖아요. 근데 고기 없이 맛 내기가 되게 힘들어요.
자인그렇죠. 육수라는 말도 고기 육()자 쓰잖아요.
수영
그래서 저희 엄마 같은 경우는, 다시마랑 표고버섯을 주로 넣으시더라고요. 그거 말고도 야채 듬뿍, 두부 듬뿍 넣고. 그 전에는 단맛, 짠맛, 감칠맛 같은 것만 좋아했었거든요. 아니, 좋아했다기 보다는 몰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런데 이렇게 먹다 보니 재료 하나마다 맛이 다 느껴져요. 그때 알았죠. , 세상에 맛이 이렇게나 풍부했구나.


이를테면 화장품 같은 것에도 신경을 쓰게 돼요

자인이건 또 물어보게 되네요. 뒷풀이나 밥 약속은 어떻게 하세요?
수영
두 명까지는 괜찮아요. 상대는 고기 먹고 나는 다른 걸 시키는 가게를 고를 수 있어요. 근데 세 명이거나, 네 명 이상이면 그게 좀 복잡해져요. 나 때문에 그런 데 가기도 그렇고 안 가기도 그렇고
자인(1화 인터뷰를 떠올리며) 그렇다고들 하시더라고요.
수영
근데 저번에는 좀 특별한뒷풀이를 했어요. 다섯 명이 듣는 교직 수업이 있어요. 종강 후에 교수님이 밥을 사주셨는데, 저 채식하는 거 들으시더니 인도커리 가게를 가서 시금치 커리를 골라주시는 거예요. 진짜너무 좋았어요. 저 채식한다고 지나간다는 말로 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자인항상 여쭙기가 어려워요. 술이든 고기든, 그런 걸 다 먹어야만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수영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어 그래, 하고 말아서 그렇게 생각보다 나쁘거나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아직까진.
자인조금은 바뀌고 있네요.
수영
가끔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 그럼 식물도 생명이니까 이슬이나 먹고 살라는 식으로. (웃음)


?


자인그런 사람들한텐 어떻게 답하세요?
수영
그냥… 포기를 하죠. 처음에는내 주변 사람들도 채식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들 고기 먹는 것도 신경 안 써요. 넌 먹을 거 먹고 난 나 먹을 거 한다는 식.
자인.
수영
근데 진짜로
, 채식을 할 때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 살리겠다 하지 말고, 나 혼자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 하는 것. 이를테면 전 화장품까지도 신경을 쓰고 싶어요. 동물실험 한 것들은 쓰지 않고 싶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비싸요. 그래서 일단은 마음에 담아두는 거에요. 다만 지금 할 수 있는 거. 고기 안 먹겠다 정도만.
자인신념이 단단하시구나.
수영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고요
.
자인포기요?
수영

이렇게 한 1년 지나다 보니까, 사람에 대한 기대가 떨어져요. 문명, 사람 같은 것에 대한 비관? 오는 길에도 지하철 타고 오고, 차 타고 오고, 화장하고 차려 입고 오고, 편하게 앉아서 공부하고. 다 어쨌든 문명이잖아요. 그걸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문명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걸 느낄 때는, , 그냥 시골 내려가서 살고 싶다…? 막 이래요.


또 깨달음이 이렇게


자인마지막 질문입니다. 채식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수영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다만 저는 반대로 채식을 결심하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1회 고기 안 먹겠다, 일주일에 한 끼 안 먹겠다, 해산물까지만 먹겠다이 정도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한다는 것이 일단은 중요한 거니까.


'주
1회 고기 안 먹기부터라도 해 보세요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고기 없는 월요일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월요일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다. 관련 소식과 홍보물들을 보며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내 자신을 문득 보았다. 채식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원래 고기를 좋아하다가 안 먹기 시작한 사람과 인터뷰를 갖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도 Meat Free Monday 캠페인을 보며뭐 어디서 이상한 사람들이 유난 떤다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하지만 수영 씨가 잘 경험하고 설명해 주었듯이,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정하는 삶도 충분히 장점이 있고 시도해볼 만한 삶인 것 같다. 게다가, 처음부터 모든 살생을 다 금기시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도입할 수 있다고 하니까! 마침 내 월요일 시간표도 오후 수업뿐이고. 월요일에는 집에서 밥 먹고 나갔다 들어와서 저녁 먹고, 밥 약속을 잡아도 고기 없는 걸로 먹자고 해 볼까? 음 뭐 그래,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지도.

-3-


채식을 결심할 분명한 이유가 하나만 더 있다면
육식을 하지 않는 삶은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전투적이었다. 그것은 단지 채소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식당 한 곳, 반찬 하나를 고를 때도 이유를 따져서 자기 양심에 따라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생활 방식이었다.
알면 알 수록 점점찔리는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고기만 안 먹는 것만으로 괜찮을까, 그럼 계란, 우유, 생선이나 다른 것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딱 한 분만 더 만나뵙기로 했다. 내가 왜 채식을 해야 하는지 더 굳건한 이유를 제시해 줄 수 있는 분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만났다. 서울 모 대학 재학생이고, 녹색당 활동도 하고 있으며, 도시에서의 지속 가능한 전환을 고민하는전환도시 신촌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했다는, 장현희(가명). 그녀는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그녀는 세미 베지터리안이고, 정확히는 페스코에 해당한다



, 채식이 무조건 안 먹는 게 아니구나

현희이번 여름방학 때 책 읽기 모임을 했었어요. 에너지, 동물권, 기본소득, 녹색전환그리다가 동물권 운동가이자 생태철학자인 사람인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었거든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자인기분이 어떠셨어요?
현희세미나 끝나고 다들 배가 고파서 뒷풀이를 갔어요. 근데 도저히 고기를 먹으러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걸 보고 또 고기 먹기 좀 그렇잖아요. 그러다 이틀 동안 채식했는데, 한 김에 조금 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인의외로 간단하다...
현희
사실 이전에도 한 번 채식을 시도했었거든요.
자인처음이 아니셨군요.
현희그때는 실패했어요. 되게 나이브하게 시작한 거라서.
자인그때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신 거에요?
현희인도랑 네팔 여행을 합쳐서 두 달 반 정도 했어요. 거긴 먹거리 포장에 항상 초록색, 빨간색 동그라미가 있어요. 초록색은 비건 용이고, 빨간색은 뭔가 고기가 들어 있다 하는 표시였던 걸로 기억해요. 거긴 워낙 다양한 방식의 식문화를 가진 종교가 있으니까, 힌두교는 소를 안 먹고, 이슬람교는 돼지를 안 먹고, 불교는 아예 비건일 수도 있고. 이런 종교들이 다 있는 나라니까.
자인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네요.
현희. 그런 문화에 몇 달 있다 보니까 그냥고기를 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여행 중 우연히 만났던 분은 닭고기만 먹는 채식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 채식이 무조건 안 먹는 게 아니구나. 그럼 나도 해볼까? 그런 생각.


요런 나라다 보니


자인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계속해서 채식을 유지하시는 중이시네요.
현희자극의 정도가 달랐어요. 피터 싱어는 좀, 뭐랄까요, 굉장히 논리적으로모든 생명은 동등한데 인간만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 지를 다시 생각하게해요. 논리적으로는 인간이 더 특별할 이유가 없는 거죠. 우리가 인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지육식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 같은 것도 나와 있었고.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영상으로 보면 굉장히 직관적이잖아요? 돼지들이 좁은 스톨 안에서 평생 제대로 몸도 못 돌리다가 새끼돼지를 생산하거나, 고기로 팔려 나가거나. 그런 자극들이 연달아 있으면서 시작됐죠.


이쯤에서 교양도서 한 권 추천


자인채식에도 단계가 있잖아요. 어느 정도까지 하세요?
현희, 중간중간 고기를 먹을 일도 있었는데, 그래도 꾸준히 계속하고 있어요. ‘페스코채식이라고 해서, 우유, 달걀, 해산물까지 먹고 붉은 살코기나 닭고기, 그러니까 육고기는 안 먹는.
자인이 정도 단계를 잡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현희육고기를 안 먹는 건 방금 말씀드린 대로고요. 나머지는 음식 선택에서 우유나 달걀, 해산물을 빼고 나면 음식 선택지가 너무 적어지고, 단백질 섭취가 어렵다는 정도예요.


선택할 수 있는 채식의 삶

자인다른 분들께 단백질 섭취는 어떻게 하냐고 여쭸더니, 콩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현희우유, 달걀, 해산물 먹긴 먹는데 지양하고는 있어요. 우유 대신 두유를 먹고. 원래 씨리얼이나 그래놀라를 많이 먹는데, 두유에 먹어요. 달걀도 굳이 사먹진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데 재료로 조금 들어가 있으면 그냥 먹고. 단백질이 부족할 것 같을 때 계란 흰자, 두유, 해산물 좀 먹고요. 그래도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대두분리단백을 샀거든요.
자인대두분리단백?
현희이게 뭐냐면, 콩에서 분리한 단백질을 파우더로 만든 거예요. 생긴 건 미숫가루 같이 생겼는데 좀 더 고와요. ‘잡식 가족의 딜레마에서 고기로 단백질 섭취하지 않아도 튼튼한 몸을 가꾸는 보디빌더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찾아봤어요. 찾아보니 단백질 보충제, 그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대두분리단백이 나와 있더라고요.
자인우와.
현희근데 잘 안 먹게 돼요. 맛이 없어서요. (웃음)
자인(슬픔)


맛이 없다니...


자인다른 분들은 비건으로 돌리고 싶다고 하신 경우도 있었는데, 변경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현희아직은 없어요. 우유, 달걀, 해산물도 굳이 찾아서 먹지는 말아야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회 생활 하다 보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 되게 중요한 문화잖아요, 서로 공유하는. 그런 때에 너무 걸리는 게 많은 게, 제약이 많은 게지금 사실 전 그렇게 불편하지 않거든요? 너무 의무적이고 옭아매는 느낌이 들면 저는 싫어서, 더 이상 안 먹고 싶진 않아요.
자인다른 분들께도 물어본 질문입니다. 채식을 하고 나서 몸에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현희전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자인, 건강하거나 그런 점도 없으시고요?
현희. 저는 햄버거가 먹고 싶잖아요? 그럼 그냥 쉬림프 버거를 먹어요. 제가 인도나 태국 요리를 좋아하는데, 그럼 가서 해산물 커리 먹고.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데, 어딜 가든 채식 메뉴 하나나 해산물 메뉴 하나는 있거든요. 어딜 가나 그 정도는 있기 때문에, 딱히 살면서 그렇게 달라진 느낌은 평소엔 별로 없어요.
자인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이 결국채식인 거네요.
현희근데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맛있으면 먹잖아요? 그럼 이젠 뭐가 먹고 싶으면, 맛집이라더라, 유명하다더라, 가봤는데 맛있다더라, 할 때, 이제 뭐가 들어가는지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무슨 재료로 만들어지고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하고 먹으니까. 좀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느낌이.


이전에는 고기는 그냥
고기였거든요
자인혹시 채식을 시작하시고 난 후, 마음에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잡식 가족의 딜레마보고 나서부터 고기를 먹으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현희전 죄책감은 아닌데, 꺼림칙함이 들어요. 느낌이 조금 다른데, 설명하기 애매한데사실 제가 어제 고기를 먹었거든요. 어제 대학원 면접이었는데, 아는 분이 면접장 앞까지 직접 찾아와 주셨어요, 응원해 주신다고. 정신이 없어서 밥을 안 먹고 갔는데, 꼭 따뜻한 걸 먹고 가야 된다고 하셔서
자인(불길)
현희그 때 따뜻한 게, 카페에서 파는 크로크 무슈나, 그릴드 샌드위치 같은 햄 들어가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크로크 무슈 사진에는 고기가 안 보여서 시켜 주셨거든요. 근데 나오고 보니 고기가 있더라고요. 근데 응원해주려고 오셔서 사 주신 건데오랜만이니까 먹어볼까? 하고 먹어봤는데, 뭔가 꺼림칙해요. 이전에는 고기는 그냥고기였거든요, 먹는 거.
자인그렇죠. 먹는 거.
현희햄을 보면 그냥 햄이지 거기서 살아있는 돼지가 생각나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제육볶음이면 그냥 제육볶음이지, 돼지라는 생명? 살아있는 돼지라는 게 안 떠올랐거든요. 근데 어제는 그 햄을 먹는데, 살아있는 돼지가 떠오르고 생명으로 느껴져서, 입에 들어가는 게 꺼림칙한 느낌? 그랬어요.



생각해보면 섬뜩한 사진이다


자인채식하시면 꼭 들으시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현희이를테면?
자인‘너 채식하면 고기 안 먹고 싶어?’ 같은.
현희있죠, 고기 먹고 싶을 때 있죠. 근데 항상 먹고 싶은 건 아니고, 또 제가고기를 먹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고기 자체가 아니라 고기가 들어간 특정 음식, 이를테면 쌀국수가 끌린다거나. 그런 식.
자인다른 문제네요.
현희 , 예를 들면, 저는 양념치킨 되게 좋아했었어요. 근데 후라이드치킨은 별로 안 좋아해요, 양념을 좋아하는 거지. 그럼 양념을 좋아하니까떡꼬치를 먹어요. ‘내가 뭘 좋아하지?’를 궁극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양념치킨에서 치킨이 아니라 양념을 좋아하는 거니까 떡꼬치를 먹으면 되겠구나.
자인정교하다!
현희그렇게 바뀌는 거죠. 사실 채식메뉴를 다양하게 팔면 이런 고민도 크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식생활은 조금씩 다양해지고 있다

자인혹시 재학 중인 학교 안에는 채식 메뉴 파는 곳이 있던가요?
현희없어요.
자인하나도요?
현희. 그래서 좀 아쉬워요. 저희 학교가 글로벌캠퍼스를 지향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외국 국적 학생이나 교환학생을 많이 신경 써요. 많으면 많을수록 글로벌 관련 점수가 올라가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의 학생들이 방문을 할 텐데.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특히 음식에 민감한 문화가 많잖아요. 이를테면 이슬람교도도 있을 수 있고, 힌두교도도 있을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밥 먹을 만한 곳이 아직은 별로 없어요.
자인우리 나라에서 할랄 푸드를 구할 길이 없다고 하면 꼭 그런 게 덧글로 달리잖아요, 인터넷에서. 우리 나라에 왔으면 우리 나라 식으로 맞춰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현희그건 아니죠. 한국에서 지내면서 비빔밥을 먹을 수는 있는데, 적응을 한답시고 강제로 할랄되지 않은 삼겹살을 먹을 필요는 없잖아요.
(갑자기) , 달걀 얘기.
자인달걀요?
현희. 달걀 같은 경우는, 일단 먹기로는 했는데 고민이 돼요. 동물복지, 유기농 이런 게 있고요. 저는 이왕이면 동물복지 인증 있는 걸 사거든요. 근데 이것도 진짜 동물복지인가 싶기도 하거든요. 근데 다른 안 써있는 건 더 못할 확률이 높으니 그냥 사고. 아니면야마기시 공동체달걀 사요.
자인그곳에서는 풀어서 키우나요?
현희닭장은 있는데, 계속 고민을 하면서 양계 방식을 수정해 온대요. 일본에서 시작돼서 몇십 년 된 건데. 야마기시라는 사람이 만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사람이 닭이 행복한 환경에서의 양계업을 고민하다가, 이것을 사람들의 삶, 공동체에도 옮겨오자고 해서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소유 공동생산을 실현해보는 마을로 알고 있어요.
자인한국에서도 시도들이 많네요.
현희, 야마기시즘을 한국에서 실현하는 곳이 경기도 화성엔가 있거든요. 여기서 생산하는 달걀은 가끔 신촌의 체화당에서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사먹은 적도 있고요.
자인가격대 얼마 정도예요?
현희20알에 6천원 정도.
자인그렇게 막 비싸지는 않은 느낌.
현희. 그냥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죠.


누군가에게 채식은 실천 되고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자인마지막 질문입니다. 채식을 할 때, 그 이외에 좋았던 일이 궁금해요.
현희제 자신이 가치 지향과 일상에서의 실천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되게뿌듯하달까요.
자인괴리되지 않은 삶?
현희
!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그런 것까진 아닌데, 그 전에는 그렇지 않으면 찔리는 게 있었거든요. 동물권 책과 영화를 보고, ‘공장식 축산이 잘못되었구나라는 걸 인식을 했는데, 그 인식은잘못되었구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실천을 할 수 있는, 합일이 되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게 저는 좋아요.
자인찔릴 게 없는, 건강한 삶이네요.
현희. (웃음)


이젠… 이젠 결심만 하면 돼
!
여러 채식주의자들을 만나 보았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것 같다.

1) 무조건 채소만 먹는 것이 채식이 아니다
2) 굳이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부터 실천하자.
3) 극단적으로 흐르지 말고, 신경쓸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열심히
.

그래서 일단은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 가면서 두부도 한 모 사 가야지. 오늘 저녁은 연두부 새싹 비빔밥으로 먹어야지. 벌써부터 건강한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기름진 음식이 가득한 설날이 눈 앞에 있긴 하지만, 버텨내고 말리라.

원문 : 20time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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