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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리더가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는 이유

  • 입력 2016.01.29 14:37
  • 기자명 조우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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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이야기
개발자 출신인데 우여곡절 끝에 스타트업 회사를 설립했고, 현재 직원 20명 남짓 규모입니다. 원래 초창기 멤버는 7명이었는데 작년에 큰 투자를 받아 단기간에 새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코딩하는 일은 원래부터 제가 하던 일이라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제일 어려운 일은 사람관리입니다. 천성이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스타일입니다. 직원들과 얼굴 붉히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별도의 전문가를 영입해서 직원관리를 통째로 맡기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는 직원관리에 대해 CEO가 전면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더라도 관리, 통제권은 계속 갖고 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저는 제 특기인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직원관리는 전문가에게 전권을 주는 것이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당신이 대신 쓴소리 좀 해 주세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사람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것은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데 어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을까. 싫은 소리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싫은 소리를 해야 하고, 통제도 해가면서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한다. 문제는 그 일을 누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가다.




현대 조직관리 트랜드는 분업화에 있다. CEO가 아무리 뛰어나도 전 분야를 관리할 수는 없다. 해당 분야 전문가를 고용해서 그 전문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직관리의 분업화, 분권화가 가져올 수 있는 묘한 문제점을 실무에서 자주 보게 된다.
S테크의 김 대표. 공학박사 출신으로 온화한 성격의 CEO다. 그는 직원들과 접촉하는 것보다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김 대표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CEO로서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다. 특히 지난번에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밟으면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을 직접 하는 것은 김 대표에게 고통이었다.
김 대표는 본인이 이런 식으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조직관리를 대신해 줄 전문가를 찾았다. 다행히 헤드헌팅 회사 추천으로 예비역 중령 출신을 영입할 수 있었으니 그가 바로 차 상무다.
차 상무는 고위 장교 출신답게 조직을 장악하고 지휘, 통솔하는 점에서 김 대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대표님은 연구에만 매진하십시오. 악역은 모두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욕이란 욕은 제가 다 듣겠습니다. 조직에서 그런 인간도 필요합니다."


김 대표는 차 상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차 상무가 입사하자 다소 느슨하던 회사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어 갔다.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부분은 ‘근태’. 김 대표는 예전부터 드러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직원들의 근태에 불만이 있었다. IT 회사라 야근이 많아 직원들의 아침 출근시간이 들쭉날쭉했는데, 한두 명이 그렇게 출근시간을 어기기 시작하다 보니 조금만 야근을 해도 늦게 출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김 대표는 몇 번이고 이 문제를 거론하려 했지만 차마 공론화하지는 못했다. 김 대표가 따로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차 상무는 바로 근태 문제부터 바로잡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가의 눈에는 문제점이 바로 포착되는 모양이었다.
차 상무는 아침 7시 반이면 출근한 다음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챙겼다. 전날 야근을 한 경우에도 정도를 고려하여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을 초과한 늦은 출근에 대해서는 차 상무의 따끔한 질책이 가해졌다.




대표와 직원들의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아 직원들이 업무상 잘못을 저질러도 김 대표는 제대로 지적을 못했는데 차 상무는 잘못을 저지른 직원들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호통을 쳤고, 거의 사문화되어 있던 징계제도를 동원해서 나태한 직원들에게 시말서를 쓰게 하거나 감봉조치를 했다. 차 상무가 입사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회사에는 군기(?)가 바짝 들었다.
차 상무는 직원들을 몰아붙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김 대표는 본인이 회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회식자리를 거의 갖지 않았는데, 차 상무는 김 대표에게 건의해서 팀별로 자율적인 회식이나 문화활동 등을 진행케 했다. 김 대표는 그 행사들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다. 긴장됐던 분위기가 그런 행사를 통해 다소 풀어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는 말을 직원들의 후일담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가히 차 상무는 ‘밀당’의 달인이었던 것.
김 대표는 당초 본인이 바라던 대로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신제품 출시 일정도 몇 달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이게 아닌데...

차 상무가 입사한 지 10개월쯤 지났을 무렵, 사내에서는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다. 김 대표 본인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자신은 형식상 대표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는 마치 한 명의 연구원에 불과한 거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김 대표가 어떤 일을 직원들에게 지시하면, 직원들은 먼저 차 상무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상무의 허락이 떨어지면 그제서야 직원들이 실행에 옮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차 상무도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에는 김 대표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 상무는 김 대표에게 '대표님, 그게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이죠...'라는 투로 이의인지 가르침인지 모를 말을 자주 했다.
김 대표는 화가 났다. 자기가 개발한 서비스가 회사를 먹여 살리고 있는데도 정작 임직원들은 차 상무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더 따지고 있고, 차 상무는 '직원들이 대표님에게 상당히 불만이 많더군요. 심지어 다소간의 동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막고 있습니다.'면서 아직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대우 수준을 올려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입니다. 변호사님. 제가 차 상무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김 대표가 나를 찾아와서 차 상무에 대한 조치방안을 문의했다. 차 상무는 말이 상무지 등기 임원은 아니었기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다. 해고를 하려면 정리해고나 징계해고 방법뿐인데,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지는 않아서 정리해고는 불가하고, 그렇다고 차 상무가 딱히 징계를 받을 정도의 나쁜 짓을 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결국 방법은 차 상무를 잘 설득하여 권고사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담판을 지어 2년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챙겨주는 것을 조건으로 차 상무를 회사에서 떠나 보낼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인력관리에 취약한 대표가 전문가를 영입해서 인력관리를 맡긴 것이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조직장악을 강조하는 한비자의 생각을 참고해 볼 만 하다.
한비자는 ‘형벌권(징계권)’과 ‘포상권’은 모두 군주 한 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모든 권력이 군주 한 사람에게 귀속된 절대군주시대에는 걸맞을지 모르나 위임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분권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강조되는 현대 경영 현장에서는 이미 용도폐기되어야 할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고려가 포함되어 있다.


군주로부터 형벌권과 포상권이 떨어져 나갈 경우 그 권한을 물려받아 휘두르는 권신(權臣)들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남용될 위험이 크며, 궁극적으로는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보다는 형벌권과 포상권을 행사하는 권신들의 뜻을 더 따르려고 할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결국 군주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자리까지 위험해 질 수 있음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언급한다.


전상(田常)은 군주에게 작위와 봉록을 요청하여 벼슬아치들에게 주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곡물을 꿔 줄 때는 큰 말로 퍼주고, 거두어 들일 때는 작은 말로 받아 은혜를 베풀었다. 이렇게 되자 제나라의 군주 간공(簡公)은 덕을 잃고 전상이 그 권한을 잡게 되었으며, 결국 간공은 시해당했다.
자한(子罕)이 송나라의 군주에게 말했다. "포상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므로 왕께서 직접 하시고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자 송나라 왕은 형벌의 권한을 잃게 됐고, 자한은 이를 사용해 결국 왕을 협박했다.
전상은 단지 덕을 베푸는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간공을 시해할 수 있었고, 자한은 단지 형벌의 권한만을 사용하고도 송나라 왕을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신하들 중에는 형과 덕의 권한을 모두 사용하는 자들이 있으니, 지금의 군주는 간공이나 송나라 왕보다 더욱 위태롭다.
이병편 중


전상은 백성들에게 은덕을 베풀어서 인심을 얻었고, 간공은 백성들에게 무서운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두려움과 복종을 이끌어 냈다. 원래 그 은덕과 형벌권의 원천은 군주였지만 단지 그 행사의 주체가 달라지자 백성들은 이를 행사하는 사람을 더 따르거나 겁을 내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군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신하가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깊어,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면서 스스로 몸을 낮추어 그 위엄과 공을 군주에게 돌린다면 군주의 권위는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부하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권위의 원천이 '자기 자신'인 양 착각하게 된다면 이는 실제 권한이 있는 자의 권한을 빌려와서 그 권한을 마음껏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한비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소해휼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강조한다.


전국 시대 중국의 남쪽 초나라에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宰相)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은 소해휼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초나라의 실권을 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나라 선왕(宣王)은 북방의 나라들이 왜 소해휼을 두려워하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어느 날 선왕은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강을이 대답했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이번에 나는 천제로부터 백수의 왕에 임명되었네. 만일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령(命令)을 어긴 것이 되어 천벌을 받을 것이야. 내 말이 거짓말이라 생각하거든 나를 따라와 봐. 나를 보면 어떤 놈이라도 두려워서 달아날 테니.’ 여우의 말을 듣고 호랑이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만나는 짐승마다 모두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지만, 호랑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의 제국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을 빌어 위세를 부리는 것을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한다.
위 사례에서 차 상무는 호가호위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한비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가 능히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까닭은 발톱과 어금니를 가졌기 때문이다. 가령 호랑이가 발톱과 어금니를 버리고 개로 하여금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가 도리어 개에게 굴복할 것이다. 군주란 형(형벌)과 덕을 가지고 신하를 제어하는 자이다. 만일 군주가 형과 덕의 권한을 놓아두고 신하로 하여금 그것을 쓰도록 한다면 군주는 도리어 신하에게 제어당할 것이다.“





'악역 맡기'는 리더의 운명이다

독재를 일삼는 군주의 해악 못지않게 권신들에 의해 휘둘려서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군주의 해악 역시 큰 법이다. 우선 칼을 쥐었다면 자의건 타의건 목적추구의 방식과 싸움의 양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정신의 균형을 잃은 사람에게 그 칼을 맡겨서는 안 되지만, 한편 칼을 잡고 쓸 줄 모른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며, 안전을 그에게 의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죄악이 된다 할 것이다.




조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나 징계를 가하는 것은 리더의 본질적인 권한에 속하는 것이다. 이 권한이 위임될 경우 권력의 지형도(地形圖)는 바뀌게 되고, 리더의 지휘권은 표류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악역 맡기를 두려워하는 리더들은 그 악역을 누군가가 대신 맡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충분히 예상해야 한다.
리더는 ‘악역 맡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악역을 맡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리더의 운명이다. 그렇기에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너무 야속하게 들릴까.
원문 : 조우성 변호사의 Br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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