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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일곱 시간의 기록을 감추는 이유

  • 입력 2016.01.26 13:07
  • 수정 2016.01.29 16:57
  • 기자명 정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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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7시간. 이 말만 하면 청와대는 경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애초에 대중들은 대통령의 사생활 따위에 관심이 없다. 대부분은 먹고 사는 걱정만으로도 하루가 바빠 신경 쓸 틈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터다.
대통령의 일곱 시간에 대한 의혹은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전 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와중에, 도대체 이 잘난 정부는 그 동안 도대체 뭘 했나? 하는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다. 텅 비어있는 일곱 시간 동안, 대통령은 도대체 뭘 했길래 구조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맥없이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
이에 대한 근거가 있으면 제시하고, 입증할 것이 있으면 밝히면 된다. 청와대가 떳떳하다면 두려울 것도, 다툴 것도 없는 일이다.

1.
2014년 12월. 한겨레 신문사는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일어났던, 청와대와 관계된 정보를 공개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유별나거나 특별한 일도 아니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다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벽에 부딪치면 자주 쓰는 방법의 하나이다. 국가권력, 즉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은 21차례에 걸쳐 서면 또는 유, 무선 보고를 받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밝혀왔다. 그렇다면 그 서면 보고했던 자료들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대처를 알 권리가 있고, 언론은 국민들이 알고자 하는 것을 보도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2.
정부는 국가기밀을 가급적 공개하지 않으려 하기에, 언론사는 필요할 때 정보공개청구를 한다. 이럴 경우 재판부는 우선 정부측에게 비공개로 자신들에게만 자료를 제공하라고 명령한다. 법원이 우선 열람한 후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편법이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관행은 그랬다.
한겨레 신문의 소송에 따라 재판부는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7시간과 관련된 청와대 행정 자료를 비공개로 재판부에 제출하라고 명령했단다. 그러면 정부 관계자들이 자료를 가져와 판사 앞에서 비공개의 당위를 역설하고 이후 재판부가 ‘공개, 부분공개, 비공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청와대는, 재판부가 요청한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 안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3.
이럴 때, 재판부가 취할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정부는 정보공개청구 대상인 4월 16일의 7시간 동안 ‘대통령이 21차례의 보고를 받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항변했고, 그 기록을 우선 재판부에게 제출해 달라고 했는데 응하지 않았다. 반론의 기회를 주었지만 스스로 거부한 셈이다.
2) 결국 재판부도 자료를 못 봤으니, 판단의 근거가 없다.
3) 두 차례의 기회를 주었고 응하지 않았다. 그러니 정부는 그 자료를 공개하라.
지난 1월 21일은 이런 판단을 내렸어야 할 선고 기일이었다. 다들 기대도 했다. 그 지긋지긋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자료가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상식이 그러하고, 재판부의 관행이 그러하고, 원칙이 그러하니까.
그런데 선고를 불과 이틀 앞둔 1월 19일, 재판부는 예상을 뒤엎는 판단을 했다.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하면서 선고를 연기해 버린 것이다. 아마 청와대에 조금 더 시간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국민의 알 권리는?


4.
한편에서는 이 문제로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 운동가 박래군 씨. 보수 언론의 표현에 따르면 ‘종북 인사’인 그가, 작년 6월 대통령의 일곱 시간에 관한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1)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시중에 온갖 소문이 돈다.
2) 마약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고,
3) 성형 시술을 받았다는 소문도 돈다.
그러니 7시간의 행적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보수 언론들은 감히 대통령에게 마약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인 박래군 씨의 괘씸함을 앞다퉈 성토했고, 모 보수단체는 박래군씨를 고발했다. 박 씨는 곧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할 일은 간단했다. 청와대의 자료를 검토해 박래군씨의 의혹 제기가 허위라는 것을 입증하고, 이를 근거로 그를 엄벌에 처하라고 요구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검찰은 증거자료로 여당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일곱 시간’에 대해 해명한 브리핑 관련 신문기사 4개를 제출했을 뿐이다. 박래군의 의혹이 허위라고 입증할 자료를 검찰도 보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5.
그렇다면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1) 7시간 동안 무엇인가 했다는 자료는 애당초 없었다.

그런데 청와대 스스로 ‘일곱 시간’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 놓은 지금, 자료를 다시 만들거나 조작하기에는 너무 늦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7시간 동안 배가 가라앉고 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제3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2) 무엇인가 했다는 자료가 실제로 있다. 하지만…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국가 차원의 대응이라 보기에는 말도 안 될 정도의 허술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자료만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공개를 안 하든지 못하든지 하는 것 아닌가?

6.
의혹이 이쯤 이르렀다면, 청와대는 이렇게 답하면 된다. 링거를 맞았다든지, 누구와 밥을 먹었다든지, 몸이 좋지 않아 쉬었다든지.. 이런다고 국민들이 항의를 하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현재까지는 청와대가 당시 무슨 보고를 받았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밝혀진 물증이 하나도 없다. 법정에서는 스스로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이들의 말을 거짓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 일에서, 안타깝게도 재판부는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고 그저 판결을 미뤘다. 판결을 해야 할 책임을 미뤄 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민에 대한 도리도, 원고나 피고에 대한 올바른 태도도, 후임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7.
그런데, 약간의 실마리가 보인다. 서초동을 지나다 보면 “서초의 딸”이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다는 조윤선 씨다. 그녀는 얼마 전 한 월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 ‘대통령의 일곱 시간’이 하도 큰 이슈로 떠올라 확인해 봤더니 당시 대통령은 실제로 수십 차례 보고를 받고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이제 7시간의 의문을 풀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나왔다. 재판부가 조윤선씨를 증인으로 부른 다음 본인이 봤다고 하는 자료를 제출하거나 명확히 증언하라고 하면 된다.
국가 기밀이라고? 월간지에 인터뷰도 했는데?

8.
‘대통령의 일곱 시간’을 묻는 이들은 대통령의 불편한 사생활을 캐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곱 시간 동안 사람 삼백 명이 죽었는데 청와대가 관련 자료를 필사적으로 가리고 덮으니,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그런가 알고자 하는 것뿐이다.
이는 희생자들과 같은 나라에 살던 사람으로서, 참사 후 남겨진 사람들로서 챙겨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하다. 그들은 왜 죽었는지, 그들이 죽어갈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알아내야 한다. 국가가 정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권을 만들어낸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탓이다.
새삼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가리운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그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날 때. 우리는 어깨 걸고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릎 꿇고 침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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