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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 입력 2016.01.18 15:50
  • 기자명 성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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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구도 한국 영화 시장이 더 이상 작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2015 <암살> <베테랑>이 이룬쌍천만흥행 기록은 한국 영화 시장의 크기를,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같은 작품들은 한국 영화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군데에 개선점이 산적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문제를 느끼는 부분은 인프라의 부족이다.
물론 멀티플렉스의 확산은 전체 스크린 수를 늘리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고, 수도권과 지방의 극장 시설 차이를 좁혔다. 그런 점에만 집중하면 한국 극장의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극장만 있으면 뭐하나. 정작 세계 최고 수준의 극장 안에는 대형 배급사에서 배급하는 영화들이 똑같이 들어간다. CGV나 롯데시네마에서아량을 베풀어 선택받은 20여 곳의 지역에만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이 배치될 따름이다. 그나마도 멀티플렉스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은 수도권과 부산 지역에 쏠려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자사에서 관여하는 영화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극장에 고전영화나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이렇게 시장의 크기와 상관없이 극장의 다양성이 여전히 처참한 가운데, 시네마테크는 대중성은 낮아도 독특한 영화를 원하는 팬들에게 있어 소중한 안식처가 되었다. 현재도 존속하는 이화여대 동아리이화시네마테크같이 학교 안에서, 아니면 프랑스문화원과 같이 반쯤은 치외법권인 공간에서, 그리고문화의 집 서울등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모인 씨네필끼리의 모임으로 사람들은 모였다. 그리고 1996년 사전 심의가 위헌 판정을 받으며 영화 상영에 자유를 얻게 되자, 그러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좀 더 밝은 공간에서 영화들을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1990년대 이후부터 이러한 영화모임은 본격적으로 극장 설립을 모색한다.


사진전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을 통해 전시된 사진.

서울아트시네마가 종로3가 서울극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렇게 생겨난 극장들 중에서 가장 씨네필들에게 대표적으로 인식되는 극장이자 중요한 위치를 지니는 극장이라 볼 수 있다
. 물론 대전시네마테크(대전아트시네마)나 청주 씨네오딧세이 같이 지금도 여전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네마테크 조직이 있지만, 수도권으로써의 이점 등을 발판으로 정기적으로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기획한 기획전 등의 프로그래밍을 펼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극장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 역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최근 들어 문화 관련 공공기관의 경직성이 강해지는 가운데 시네마테크 KOFA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상태이다. 자주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서울아트시네마의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2002년 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 강당에서 처음 개관한 이후 2005 2월 허리우드극장이 있던 낙원상가로 자리를 옮긴 서울아트시네마는 낙원상가라는 오래된 공간과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특성이 조화를 이루며 많은 이들에게 자신들을 알리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재정은 항상 부족했고, 머무는 공간 역시 안정적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2015 3 25, 서울시가영화 문화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서울아트시네마의 앞날도 순조롭게 되었다.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8년까지 충무로 일대에 고전/독립영화상영관, 영화박물관, 영화 아카이브 시설, 영상미디어센터 등이 입주하는 복합영상문화 공간을 완공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계획이 발표될 그 즈음, 서울아트시네마는 약 10년간 함께했던 낙원동을 떠나 광화문 미로스페이스를 임대해 사용하던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종로3가의 서울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낙원동 시절에 대한 그리움
, 전시로 모이다
분명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서울아트시네마의 현 종로3가 시절은 낙원동 시절보다 많은 것이 나아졌다. 접근도 더 편해진 것은 물론 시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었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이 모금에 참여한 덕에 6월 이전 개관 전 입주하게 될 서울극장 3층의 영화관의 스크린과 좌석을 대대적으로 공사했고, 1층에는 관객라운지도 만들었다. 이전부터 서울아트시네마를 다녔던 이라면 너무나도 환상적일 시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낙원동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분명 시설은 낡고 많은 것이 어려웠어도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애정과 낭만을 가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지난해인 2015 12 22일부터 27, 홍대 근방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는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왔던 사람들의 사진들을 전시하는 행사가 열렸다. 전문적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 아니었기에 일반적인 사진전과 비교하긴 어려워도, 낙원동 시절에 애착을 가진 이들이 보낸 사진들이기에 의미는 컸다.


사진전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지난 2015 12 22일부터 27일까지 홍대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전시공간에서 열렸다.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 전시공간에 게시된 총
32장의 사진은 이전까지는 큰 의미 없이 봐왔던 허리우드극장의 서울아트시네마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특히 가장 흥미로운 사진은 위에서 서울아트시네마를 내려다 본 사진이었다. 이는 단순히 로우 앵글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낙원상가의 구조상 낮은 옥상 층에 위치해 있었고, 이 건물을 위에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낙원상가의 주상복합 아파트인 낙원아파트에서 찍어야만하기 때문이다. 이 로우 앵글의 사진은 지금은 비록 살지 않지만 한때 낙원아파트에 살며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했던 이가 보내온 사진이었던 것이다. 전시 기획자 역시 이 사진을 가장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대체 이렇게 작지만 귀한 전시는 어떻게 열리게 되었을까. 전시 기획자는 자신이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원봉사 활동을 1년 동안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이전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진집을 만들려고 했는데, 내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것보다 많은 관객 분들이 사진을 보내준다면 더 풍성하게 기억할 것 같았죠.” 기획자의 말대로 이 사진들은 전시가 열리기 약 두어 달 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모은 사진이었다. 22명의 관객이 50장 이상의 사진을 보냈고, 이 중 32장의 사진을 전시했다.


전시 기획자가 인상적이라 이야기했던 사진.

낙원상가에 살았던 주민만이 찍을 수 있는 구도이기에 이 사진은 특별하다.


비록 일주일가량의 짧은 전시 기간이었지만 그 짧은 기간이라도 많은 사람들과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경험이다
. 또한 서교예술실험센터 역시 서울아트시네마가 그랬듯 몇 번이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떤 점에서는 전시 목적과 잘 어울리는 장소였던 셈이다.
이후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전시는 26일 서울아트시네마의 낙원동 마지막 기획전으로 열린아듀, 파라다이스의 모습을 담은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이강옥 감독의 <아듀, 파라다이스>와 낙원동을 배경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인 김상훈 감독의 <Calmical Change>를 특별 상영했고, 그 다음날 전시는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다. 전시 기획자는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전시를 통해 소개된 사진들을 책으로 올해 중 발간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시간이 되지 않아서, 아니면 정보를 알지 못해서 전시를 가지 못했던 이들이라면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있는 관객이었다면 사진집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일종의 애정표현이 되지 않을까.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 기획자의 친구가 만들어준 기념 그림. 비록 많은 이들이 전시를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전시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마음들은 어느 프로 작가의 전시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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