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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반 사람 반…통 큰 중국의 인구변화사

  • 입력 2016.01.14 14:30
  • 수정 2016.01.14 14:35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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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의 <정글만리>에 나오듯, 중국은 “크다, 넓다, 많다”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국에 걸맞는 형용사는 ‘많다’가 아닐까 하는데, 중국보다 스케일이 큰 나라도, 땅덩이가 넓은 나라도 있지만 중국만큼 많은 사람, 다양한 사람을을 품고 있는 나라는 없는 까닭이다.

중국 대륙의 인구는 역사를 한참 거슬러올라가 7웅이 엎치락뒤치락하던 전국 시대에 이미 2천만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수나라와 당나라 시절에는 오늘날의 한국 인구를 능가했던 듯하며 북송 시대쯤 1억이라는 숫자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니 ‘많다’는 형용사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지위를 굳히기에 충분했을 터다.

사람이 많은 만큼 인구의 부침도 컸다. 전란이나 기근이 한 번 휩쓸 때마다 웬만한 나라의 전국민 수와 맞먹는 사람이 우습게 죽어 나갔지만, 그만큼의 머릿수는 금방 채워졌다. 북송·남송 시대 1억까지 셈했던 대륙의 인구는 몽골의 학살과 기근 등으로 수천명이 줄어들었다가 명 대에서 다시 1억을 회복한 다음
청나라가 들어서며 안정기를 맞았고, 아편전쟁 쯤에 이르면 4억으로 점프했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 시기에는 약 3천만 명 정도가 또 황천길로 떠났다.


중국 혁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됐을 즈음 중국 인구는 공식적으로 6억 정도였다. 그런데 새 중국의 지도자 모택동은 혁명의 지도자로서는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기괴한 실수를 많이 저지른 사람이었다. 그 실수 중 하나가 인구 정책이었다.

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훌륭히 더욱 빨리, 더욱 크고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의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모택동의 이 교시하에 중국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아이를 많이 낳는 사람이 사회주의 혁명의 공로자가 된다니 전국적으로 심야 생산 체제(?)가 가동될 수밖에.
돈이 돈을 낳듯 인구도 인구를 낳는다. 6억에서 8억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년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사회주의보다 재앙이 먼저 왔다. “7년만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며 벌인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이 대실패로 돌아가면서 불어난 인구를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물론 식량 생산이 어느 정도 증가하긴 했지만 5년간 불어난 2억을 먹여살리기에는 새발의 피였던 것.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 시기 최소 대한민국 인구 정도는 아사한 것이 아닌가 추정되지만, 정확히 얼마나 죽었는지는 중국 정부도 파악하지 못했다. <중국의 붉은 별>의 작가 에드가 스노가 1965년 모택동에게 “진짜 중국 인구가 얼마냐?”고 물었을 때 모택동이 “글쎄 나도 모르겠네. 식량 배급을 더 받으려고 죽어도 사망신고들을 안해서.....”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1978년쯤에 이르면 인구 10억의 문턱에 도달한 중국 당국은 이후 필사적인 ‘인구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등소평(덩샤오핑)은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을 선언했다. 혁명을 위해 인구를 늘리라던 모택동의 말은 완전히 뒤집혔다. 10억의 중국 인민들에게 주어진 새 구호는 '혁명을 위해 늦게 결혼하고 계획생육을 합시다.'였다.

물론 우리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같은 구호가 난무할 때가 있었고 그것으로도 안 되니 '밤에 잠만 자자'는 슬로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농담이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지만 중국의 ’계획생육‘은 그런 우스갯소리 수준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한 가정 한 자녀’는 기본이었을 뿐, 중국의 국가위생 생육계획위원회가 한 일을 늘어놓으면 입이 떡 벌어질 것이다.

공공 게시판에 그 지역 여성들의 생리 날짜를 공개했고 가임 여성들은 생리가 늦어지면 즉시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 확인되면 곧장 낙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반대로 부부가 자녀를 가져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도 석 달의 유예 기간 동안 임신을 하지 못하면 그들 부부의 차례는 넘어가고 2,3년을 기다린 후에야 다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카를린 퓌엘 저, <중국을 읽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국은 인구와의 전쟁을 지속해왔다. 비교적 최근까지, 여전히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산아제한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중국의 공무원들이 임신 7개월된 임산부를 강제 낙태시켜 세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게 겨우 2012년의 일이었다. 이 때 거센 비난을 받았던 중국 공무원들의 변명은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우리는 설득을 해서 불법인 걸 확인받고 낙태시켰다니까요!

하지만 역사란 항상 작용과 반작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중국 정부 내에서는 2025년을 기점으로 중국 인구가 줄어든다는 보고 등과 함께 이제 인구 정책의 궤도를 바꿀 때가 되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헤이하이즈(黑孩子), 즉 호적 출생 신고가 안 된 유령인구 문제와 극심한 남녀성비 불균형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중국 정부는 마침내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을 폐기했다.
중국은 그 인구만으로 많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중국인들에게 양말 하나씩만 팔아도 그게 얼마냐.”는 생각을 하는 건 19세기 유럽 상인이나 21세기 한국인이나 똑같다. 하지만 중국은 많을 뿐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닿지 않을 만큼 크기도 하고 예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넓다.
그만큼 그 매력에 홀린 이들이 평균 이하의 어리석은 행동을 벌이는 일도 잦다. 이를테면 19세기 아편전쟁이 끝나고 중국의 문이 열리자 야심찬 유럽 상인들은 피아노를 대거 중국에 가지고 들어갔다. “중국인 300명 중에 하나만 피아노를 쳐도 백만 개를 팔 수 있다.”는 거였다. 아마 거의 다 엿 바꿔먹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인류 최대의 인구실험'이라 할 중국의 생육계획 정책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갔다. 이제 새롭게 열릴지도 모를 거대한 ‘베이비 시장’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소리가 들린다. 앞으로 중국은 어디까지 커질까, 또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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