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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부터 앤디워홀까지, 위인들이 피하지 못한 그 병

  • 입력 2016.01.11 10:30
  • 기자명 여강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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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이상하다. 당신은 어깨에 갑작스러운 통증을 느꼈을 수도, 오장육부를 옥죄는 통증에 온몸이 굳었을 수도, 몸의 일부를 뒤덮은 느닷없는 발진을 발견했을 수도, 혹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생긴 혹을 목격했을 수도 있다. 불안이 엄습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동료의 건강검진 결과를 듣다가, 희귀병을 앓는 어떤 환자의 인터뷰를 듣다가, 상사의 호된 질책을 떠올리다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번 정신에 스며든 의심은 점점 강렬해진다. 모든 징후가 하나의 질병을 가리키는 듯하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병은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이것이 바로 심기증이다.
심기증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 두려움과 개인의 선·후천적 기질에서 기인한다. 19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심기증 증상을 경험했다. 특히 감각이 예민한 작가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새뮤얼 존슨, 조지 엘리엇, 토머스 칼라일과 제인 칼라일,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디킨스, 표트르 도스토옙스키, 에밀리 디킨슨, 하워드 휴즈,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 등 불세출의 인물 대다수가 심기증을 앓은 것으로 보인다.
<상상병 환자들>은 그 중 대표적인 아홉 사람-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은이는 9인의 삶을 심기증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심기증이라는 질병이 초래되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심기증이 이들의 유년 시절·가족 및 친구 관계·성격·행복과 불행·사회생활·예술 활동,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상상병 환자들/브라이언 딜런 지음/이문희 옮김/작가정신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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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존슨의 전기>로 유명한 영국의 전기 작가 제임스 보즈웰은 계획을 세우고 고치는 데 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나태를 두려워하는 우울증 환자로 살았다.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자신을 병사들의 어머니라 믿으며 세상을 장악하고 싶어한 지독한 일중독자였다. 헨리 제임스의 누이동생인 미국의 작가 앨리스 제임스는 감각과민증 환자였다. 그녀는 질병마저 예술 작업의 일부라 믿었고 죽음 앞에서도 의기양양했다.
프로이트가 논문 자료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의 저자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는 자신의 성기와 털이 사라지는 망상에 빠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약초 연기가 자욱하고 빛이 들지 않는 집필실에 스스로를 가둔 천식 환자였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았다. 그는 손가락이 다칠까봐 악수까지 거부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여드름투성이에 딸기코인 자신의 얼굴과 왜소한 몸을 부끄러워했고,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미용 시술에 의존했다.


ⓒ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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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 환자들>은 심기증이라는 상상 혹은 실재의 질병이 우리 몸을 상대로 어떤 정치를 펴나가는지, 정신과 일상,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세계에 대해 무엇을 폭로하는지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홉 사람이 속한 시대·사회·문화는 물론 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그간 위인의 고통과 불안, 질병은 그들이 달성한 위업을 돋보이게 하는 부속물로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불세출의 인물과 맞먹는, 때로는 그를 압도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찰스 다윈은 심기증으로 인해 과학 연구에 더욱 몰두했으며, 살럿 브론테는 심기증의 경험을 <빌레트>의 여주인공에 오롯이 투영했으며,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철저한 망상과 심기증의 고통 속에서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집필했다. 질병의 위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투명한 정신을 건져 올린 그들의 재능이 여전히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위대한 성취가 오히려 그들의 고통과 질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관점의 역전, 관계의 역전 때문에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불합리한 순간을 마주하며, 실제적 고통과 불안을 맞닥뜨린다. 꺼림칙한 증상이 나타나면 어느 누구도 묘한 의심과 충격에서 도망가기 힘들며, 미덥지 않기로는 미신이나 매한가지인 전문가에게 수동적으로(또는 공격적으로) 몸을 내맡기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병을 고치거나 세상이 마음의 질병 혹은 상상병을 받아들이도록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결국 삶이, 아니 죽음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므로 우리는 심기증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증상이 과연 진짜인지 상상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병원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9인의 이야기는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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