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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빨간 모자>, 내가 기억하는 독고탁

  • 입력 2016.01.04 12:10
  • 수정 2016.01.04 12:18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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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반쯤이었던가, <아홉개의 빨간 모자>라는 만화를 봤었다.
'형제원'이라는 시설에 살며 야구를 하는 소년들의 이야기였다. 제목에 쓰인 '아홉 개의 빨간 모자'는 그들의 유니폼이었다. 기억에 의존해 내용을 돌이켜보면 이 형제원이 고아원인지 소년원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주인공 독고탁이 “쓰레기들이 모인 곳”이라고 일갈하긴 했지만 독고탁을 제외하고는 큰 사고뭉치가 없었던 것을 보면 소년원은 아니었던 것 같고, 아마 운영자의 비리가 심했던 보육원 정도인 듯 하다.


애니메이션 <다시 찾은 마운드>의 독고탁.
<아홉 개의 빨간 모자>에 등장하는 독고탁과는 많이 다르다.


어쨌든, 형제원에 근무하게 된 옥기호 선생이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게 되고 패배의식과 자기비하에 빠져 살던 독고탁과 아이들은 이 스포츠에 몰입하게 되었다. 여기에 형제원장의 아들 준과 딸인 숙, 그리고 또 하나의 캐릭터 봉구가 배치된다.
형제원장은 시설에 들어오는 지원금을 횡령하기 일쑤였고, 그 탓에 시설 아이들은 헐벗고 굶주리지만 원장의 가족은 호사를 누린다. 원장의 아들인 준은 고교 야구 최고의 강타자로, 독고탁의 라이벌이다. 부잣집 도련님인 준은 '쓰레기’들의 야구 연습에 경멸을 숨기지 않고, 늘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는다. 형제원 아이들 중 준이 가장 싫어하는 아이는 사고뭉치 독고탁이다.

그런데 이 독고탁은 준의 동생 숙이를 몰래 좋아한다. 그의 꿈은 야구선수로 성공하여 숙이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뒤늦게 시설에 들어온 소년 봉구에게 털어놓는다. 그를 자신의 동료로, 그리고 비밀까지 터놓는 친구로 믿은 것이다.
그러나 봉구는 독고탁과 같은 처지의 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본디 재벌가의 자제로, 가출을 한 뒤 가족이 있음을 숨기고 시설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독고탁이 짝사랑했던 숙이는 봉구에게 관심을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봉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숙이와 사귀게 된다.

친구에게 속았다는 분노, 놀림감이 된 것 같은 절망감, 사랑을 빼앗은 철벽의 암담함과 같은 수많은 감정 속에서
독고탁은 망가졌다. 그 분노를 간직한 채 마운드에 오른 그는 상대 타자인 봉구에게 불같은 강속구를 퍼부어 무안타로 돌려세운다.
그리고 그는 그 야구공으로 숙이의 방 유리창을 깨뜨린 뒤 홀로 뇌까린다.

그 녀석을 잡은 공이야.

이 말을 하던 독고탁의 표정과 피 뚝뚝 떨어지던 손은 만화를 본 지 40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선연하다. 그다지 정교하지 않은 선 몇 개로 그려진 만화였으되 어린 마음에도 광기가 무엇인지를 처절하게 깨우쳐 준 컷이었다. 이후 독고탁은 다시 시설을 탈출했고, 경기 도중 야구공에 맞아 정신이 나가버린 시설 아이 한 명은 계속 야구를 하며 놀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아홉 개의 빨간 모자는 주인을 잃어버렸다.
당시 소년만화의 흐름으로 보기에는 가히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상무 선생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 장군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기억 상실에 걸린 후 갑자기 독립군으로 변신하는 (대체 조선말을 언제 배웠는지 알 수 없는) <흙바람>이나 말도 안되는 드라이브볼을 던지는 <달려라 꼴찌>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리고 약간은 억지스런 해피엔딩이었던 <비둘기 합창>과는 레벨이 다른 작품으로 기억된다는 뜻이다.


<응답하라 1988> 이전의 시대에는 한 동네에 으리으리한 정원과 풀장까지 있는 (정규 풀장은 아니고 시멘트로 막아 만든) 집과 판잣집이 공생하고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 또한 마찬가지여서, 나는 골목에서 그 아이들 모두와 함께 '다망구' 하며 놀곤 했다. 하지만 사실 그 때도 우리는 모두 엄연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여름에 풀장에서 노는 아이들과 완전히 동화될 수 없었고, 생활고에 지친 나머지 연탄을 피워 놓고 집단자살을 기도한 아버지 때문에 죽다 살아난 동네 친구의 아픔을 온전히 공유하지도 못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불행과 가난의 위력, 빈부와 신분의 경계와 사람이 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모멸과 차별 그리고 배신과 동정의 질감을 처음 느끼게 해 준 것이 바로 <아홉개의 빨간 모자>였다. 내가 배웠던 국정 사회 교과서, 장밋빛 미래와 모범적인 사람들로 그득했던 그 책들 나부랭이보다는 백 배 더 영양가 있었던 만화였다.


어제 나에게 아홉 개의 빨간 모자를 안겨 주었던 이상무 선생이 돌아갔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도 돌아간다. 체 위에 물을 부으면 당연히 아래로 쏟아지듯이. 하지만 무엇인가는 체에 걸리고 남을 것은 남는다. 그 물방울과 티끌들이 모이면 역사가 되는 거겠지. 이상무 선생은 가셨지만 독고탁은 남는다. 그 까까머리 또는 까치 머리와 함께. 그가 내게 남겨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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