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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 타결에 위안부는 없었다

  • 입력 2015.12.30 12:24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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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일보인가? 졸속인가?
지난 28일 한 · 일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최종 합의했다. 1991 8 14일 김학순 할머니(1997년 작고)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4년 만이다. 지난한 싸움이 계속됐고, 결국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김학순 할머니의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증언을 우리는 잘 지켜낸 것일까?
양국의 정부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평가할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연내 타결이라는 목표가 뚜렷했던 탓에 허겁지겁 단추를 채웠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논란은 점차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협상이 타결된 직후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진전된 합의를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번 협상의 결과는 과거에 비해 분명히 진전된 측면이 있다. 우선,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문화('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한 것은 성과로 꼽힌다. , 위안부 문제의 성격을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군의 관여하에'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도 눈여겨 봐야 할 포인트다.


조정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 "국제법적으로 국가기관의 행위는 그 기관의 지위나 성격을 불문하고 동 국가의 행위로 귀속"되기 때문에 "'일본군의 관여하에'라는 표현도 일본 국가의 책임으로 귀속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을 통해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부분도 의미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해 취했던 태도에 비하면 엄청난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위안부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정부의 책임을 피하려던 그간의 입장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부분이 없진 않지만, 아쉬운 부분도 제법 많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에는 그동안 일본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즐겨 썼던 '도의적'이라는 표현이 빠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적 책임을 명시하는 '법적인'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해석하기에 따라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인 셈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일본 기자들과의 비공식 간담회에서 "도의적 책임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으며 법적 책임은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점도 변함이 없다. 다만 이번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로 책임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벌써부터 양국 간의 해석이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평화의 소녀상) 이전 문제를 너무 쉽게 동의해준 것은 (최대한 차분함을 유지하려 해도) 정말이지 속불터지는 일이다. 2011 12월 건립된 소녀상은 일본이 전쟁 당시에 힘없는 젊은 여성의 인권을 유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상징과는 같은 존재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체면을 깎아 내리는 소녀상이 눈엣가시였고, 지속적으로 철거를 요구해왔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소녀상 이전(혹은 철거)에 대해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윤병세 외교부 장관)"는 정도의 입장을 취했지만, 기시다 외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적절한 이전이 이뤄질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내비쳤다.

▶ 일본의 한 기자 : 이번에 일본이 잃은 것은 없는가?

▷ 기시다 외상 : 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 엔일 게다. 일본 예산으로 내는 것이니

이를 두고, '일본이 10억 엔으로 소녀상을 샀다'는 씁쓸한 뒷말이 나온다. '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 엔일 것'이라는 기시다 외상의 말에 '당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게다가 이번 합의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인 해결'로 못박고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도록 한 것은 뼈아픈 실책으로 보인다. 물론 위안부 문제를 떨쳐내고 싶었던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속 시원한 대목이겠지만.


협상 과정에서 사라진 피해자
, 협상 결과를 강요 받는 피해자

▶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상임대표 : 이렇게 되니까 일부 여론에서, 인터넷이나 이런 데서는 이 정도 하면 되지 않았느냐라는 여론 조성까지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결국은 이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너희들 70년 동안 입을 닫고 살았었는데 피해자들의 어떤 권리, 당신들이 잘못되었다라고 여론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사실은 참 답답하죠. 광복 70년이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 정관용 : 두 번, 세 번 더 마음 아프게 하는 군요, 그 피해 할머니들을.

-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무엇보다 이번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이 아쉬웠던 까닭은 협상의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정부 관계자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나 나눔의 집과 그 어떤 상의도 하지 않았다며 "외교부가 피해자 개인의 권한까지도 넘어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해야 한다. 도의적으로 미안하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 이건 일방적이다. 소녀상이 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겠느냐. 너희는 죄가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건방지게 저희들이 치워라, 마라 하는 것은 말도 . 안 된다. 너무 속상하다. 나는 밤에 끌려가 대만 신주부대로 갔다. 나는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고 일본이 끌고 가 위안부로 만들었다. 어디다가 또 손을 대냐. 이는 두 번 세 번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

협상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바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정부는 애초부터 피해자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피해자를 위한 사과도 피해자에 의한 용서도 없는 이 기묘한 대리인들의 화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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