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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vs 흙수저, 보드게임 등장

  • 입력 2015.12.21 15:14
  • 수정 2015.12.21 15:22
  • 기자명 성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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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자주 쓰이는 용어 두 개가 있다. 하나는헬조선이요, 다른 하나는수저계급론이다. 전자의 단어가 한국의 현실을 지옥에 비유한 단어라면 후자의 단어는 이전부터 상류층을 지칭하던 단어인금수저가 확장한 형태의 단어이다. 두 용어 모두 살아가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전반적인 한국의 어려움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그런헬조선일지라도 어떤수저를 지녔는지에 따라 삶의 여건이 달라지는 계급 구도를 상징한다.
처음엔 단순히 상류층인금수저와 하류층인흙수저로 나뉘었던 수저들은 점차 많은 누리꾼이 참여하면서 금, , 동과 같은 전통적인 구별법을 비롯해 다이아몬드, 플라스틱, 쇠 등등으로 세세하게 분류되고 있다. 물론 각자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저를 구별하는 법은 다르니 재미삼아 넘길 필요가 있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하나다. 단순히 이를드립으로써 받아들이듯, 진심으로 받아들이듯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은 서서히 한국 사회에 계급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많은 논란에 휩싸인 것과는 달리 이러한수저 계급론은 예전부터금수저가 널리 사용되었던 관계로 별다른 거부감 없이 많은 이들에게 정착되었다. 틈만 나면 언론 매체의 기사나 칼럼에서 수저 계급을 언급하고, 만화나 음악 같은 대중 매체에서도 수저 계급을 활용한 작품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를 게임으로 활용한 경우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수저 계급론을 가지고 보드 게임 <수저 게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개발을 선언한 이들은 딱히 전문적인 게임 개발자도 아니고, 이전부터 보드게임에 빠져 들었던 매니아도 아니다. 대체 왜 이들은 게임 제작을 선언한 것일까. 그리고 대체 어떻게 이를 게임으로 만들었을까. 지난 12 6, 홍대에 위치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수저 게임>의 체험 행사에 운 좋게 당첨되어 직접 체험하였다.


서는 곳이 달라지니 생각도 달라진다

<수저 게임>의 예상 발매도. (사진출처=수저게임 페이스북)


예정 시간보다 약간 늦게 행사장에 도착하니 벌써 초대받은 사람들이 거의 도착해 있었다
. 부랴부랴 빈자리에 앉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다 모였다. 모인 이들은 총 10명이었다. 원래는 9명을 뽑을 예정이었으나 게임 개발자가 한 명을 추가로 더 선발해서 그렇게 되었다. 일부를 제외하면 이 자리에 모인 10명은 대부분 처음 보는 사이였다. 계급 역시 잘 쳐줘야 동수저가 될까 말까 할뿐 금수저나 은수저인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자 게임 개발자가 소개를 시작했다. 개발자의 이름은 소위잉집장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월간 잉여>의 편집장 최서윤 씨였다. <월간 잉여> 2012 2월에 창간해 꾸준히 발간되고 있는 잡지이자, 소위잉여인간취급을 받는 백수 또는취업을 준비 중인대학생들을 주 타겟으로 삼은 매체이다. 최서윤 씨를 비롯해 <월간 잉여>를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이 이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들이 만든 게임의 룰은 비교적 간명하다. 게임에 참여하는 이들은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뉘며 (, 금수저의 수는 흙수저보다 적다.) 금수저는 기본적으로 집을 소유해 임대료를 처음부터 받을 수 있지만 흙수저는 그렇지 못한채 오히려 임대료를 매 턴마다 내야 하는 신세에 놓인다. 또한 대학에 가냐 가지 않느냐에 따라 매 턴마다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달라진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매 턴마다 벌어들이는 금액은 대학 미진학자의 두 배가 된다.
또한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수저들은 한 턴마다 법안을 발의하는 것을 통해 각자의 권리를 획득해야 하며, 여기에 중간 중간 벌어지는 랜덤카드 이벤트의 돌발 상황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거나 지금의 계급 구도를 그대로 유지시켜야만 한다. 흙수저는 한 명이라도 사망하면 패배, 금수저 역시 계급이 하락하거나 사망하면 패배한다. 대신 흙수저는 끝까지 모두 살아남거나 계급이 상승하면 이길 수 있고, 금수저는 흙수저를 죽게하는 등 지금의 계급을 유지하면 승리한다.
룰을 듣고서 비교적 간단한 게임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예상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접어야만 했다. 첫 판에선 금수저를 2, 자동적으로 흙수저를 8명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각자의 계급을 정할 카드를 뽑자마자 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뽑은 카드는 금수저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꿈인 계급이지만 게임에서나마 금수저가 된다고 생각하니 참 기분이 이상했다.

고작 보드 게임 속 계급에 불과한 금수저/은수저 카드. 하지만 모두가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카드로 갈려진 이 계급은 점차 모두를 잠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게임에 참여하면서도 실제로 금수저가 된 듯 게임 속 계급에 몰입해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기려면 저 흙수저들이 어떻게든 아등바등하게 만들어 고생만 잔뜩하게 만들어야 한다. 당장 다른 금수저 한 명과 함께 금수저를 위한 법안을 발의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금수저보다 흙수저의 수가 월등히 많아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이 계속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금수저들은 3턴마다 자신들끼리 결탁해 흙수저 중 한 명을 감옥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옥에 간 흙수저는 2턴 동안 법안 발의 및 투표가 제약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흙수저의 수가 더 많았고, 그 덕에 종합부동산세나 무상 등록금 같은 법안이 게속 통과되었다.
이러한 구도를 뒤집은 것은 게임 중반부에 벌어진 랜덤카드 이벤트였다. 마침 내가 앞에 있어 카드를 뽑을 수 있었는데 이럴수가, 내가 뽑은 카드는 무척이나 막강한 카드였다. ‘갑자기 북한이 도발하여 모든 흙수저가 빨갱이로 몰려 전부 감옥에 간다.’ 나와 다른 금수저를 제외한 나머지 8명은 모두 즉각 법안 발의와 투표 참여가 제한되었고, 둘이서 우리를 제약한 법률을 폐지하는 동시에 우리끼리를 위한 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게임에서 완벽하게 승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앞서 진행된 턴에서 흙수저들을 위한 법안들이 너무 많이 제정되었고, 또한 나를 포함한 금수저들 역시 좀 더 악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모든 흙수저의 투표권을 영구적으로 제한한다는 법을 만들어 놓을 걸. 우리는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추가 수익 증대에만 너무 눈이 먼 나머지 궁극적인 승리를 달성하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게임의 결과는 모든 플레이어의 승리였다. 흙수저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금수저 역시 망하거나 죽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나는 진짜 금수저도 아닌데, 게임 내내 금수저가 된 것처럼 행동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계급 상승을 위해 각자도생한 결과는?
첫 번째 게임이 끝나고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첫 번째 게임에 없던 룰을 추가하는 동시에 미비했던 룰을 수정한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다. 수저 계급에 따라 법안 발의에 드는 비용에 격차를 두고, 수적 열세를 메꾸기 위해 금수저의 수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리는 동시에 3턴마다 감옥에 보낼 수 있는 흙수저의 수를 2명으로 늘렸다. 또한 법안 발의에 있어서도 마냥 자유로운 방식이 아니라 미리프레임 카드를 뽑아 그 안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 이상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세 번째 법안은 발의하는 순간 자동 통과되는날치기 시스템도 마련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은수저라는 중간 계급을 추가한 것이다. 매 턴마다 가장 재산이 많은 흙수저는 자동적으로 은수저 계급으로 상승시키는 식으로 유지되는 이은수저계급의 두 번째 게임의 구도를 완벽히 갈랐다. 수적 우세로 인한 우위가 첫 번째에 비해 많이 깎여나간 가운데, 중간 계급이라는 비교적 쉬운 계급 상승의 추가가 흙수저들 간의 이전투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두 번째 게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활용된 법안 프레임 카드.

강력한 힘을 지녀 대학 재학, 부동산 유무에 상관없이 힘을 모을 수 있었던 흙수저들은 점차 대학에 따라, 그리고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서로 편이 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가 재산이 제일 많아 처음으로 흙수저에서 은수저로 계급이 상승하게 되었다. 온갖 제약이 걸려있는 흙수저와 달리 은수저는 금수저는 아니어도 흙수저보단 나은 혜택들이 마련되어 있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 놓칠 수가 있나. 나는 적극적으로 금수저에게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다시 그 사이에 첫 번째 게임에서 나왔던 랜덤카드인북한 도발 이벤트가 발생해 모든 흙수저의 권한이 제약되어 나를 비롯한 은수저와 금수저들만 남아 자신들만을 위한 법안을 신나게 제정했다. 이후 랜덤카드에서는부동산 폭락이벤트가 발생했지만 금수저와 은수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쌓아놓은 자산이 많았기 때문에 재산 가치가 하락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계급 역시 하락하지 않았다.
미리 집을 구매한 덕분에 나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은수저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고, 금수저의 지위 역시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집도 없고, 대학도 나오지 못한 흙수저는 결국 게임이 끝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남은 것은 오직 재산을 축적한 흙수저와 금, 은수저뿐. 우리를 막을 사람이 사라지다 보니 살아남은 자들은 너무 심심했다. 결국 마지막 턴은 한 사람에게 가위바위보로 모든 재산을 몰아주는 법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했고, 그렇게 두 번째 게임은 도박으로 마무리되었다. 재산은 오직 1명만 가졌지만 어찌되었든 금수저의 승리였다.


아직은 아쉬워도
, 앞날이 기대되는 게임
게임이 모두 마무리되고 간단히 게임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었다. 가장 골치가 아픈 것은 역시나 매 턴마다 제정되는법안이다. 아직 법안의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제약할지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재산 변동과 법안 발의-투표 참여는 물론 게임의 기본 규칙마저 바꿀 수 있는 무제한의 룰은 게임 진행 관리자는 물론 참여자마저 혼란스럽게 했다. 명확치 않은 승리/패배 요건 등의 게임 요소들 역시 아직 프로토타입이고 게임 디자인을 잘 모르는 이들이 만든 게임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가 게임 전반에 서려있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까지 가리는 것은 아니다. 각자 속한 계급에 따라 누군가는 연대를 했고, 누군가는 각자도생을 택했다. 본편 게임 중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금수저가 흙수저와의 상생을 적극적으로 꾀하는 플레이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재미를 주기 위해 각 플레이어마다 승리조건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도 재미가 있지 않을까.) 처음엔 평범하게 진행되리라 생각했던 게임은 점점 플레이어들이 몰입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계급에 이입해 서로 치고 박고 때로는 뭉치는 다양한 양상을 보인 것은 분명 게임의 기본적인 틀이 분명 흥미로워서 였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아직 게임의 개발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식으로 게임이 발매된다면 이 글에 작성한 많은 요소들이 개선되거나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현재 <수저 게임> 12 30일 발매를 목표로 계속 개발 중에 있으며, 아쉽게도 이미 신청이 마무리되었지만 12 26일 이대역 근처의 독립출판물 서점퇴근 길 책한잔에서 다시 한 번 게임 테스트가 이뤄질 예정이다. 부디 이들의 게임 개발 시도가 잘 마무리되어, 수저 계급론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을 넘어 더욱 뼈저리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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