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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보수화는 이제 시작이다

  • 입력 2015.12.19 20:19
  • 수정 2015.12.19 21:31
  • 기자명 MC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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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2012년, 진보적 색깔로 대통령 선거와 조응하는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두 개의 문>, <광해, 왕이 된 남자>, , <남영동 1985>, <26년>이다. 흐름은 끊이지 않았다. 2013년엔 <노리개>와 <천안함 프로젝트>가 개봉했다. 그해 연말엔 노무현 전기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의 위용을 뽐냈다. 2015년엔 세월호 사건의 의혹을 추적하는 <다이빙 벨>이 나타났다. 말하자면, 영화 산업에서 진보적 이념은 스테디셀러였다.


장면 둘.

다시 2012년, 영화 산업이 호황을 맞으며 구조적 변화가 본격적으로 관측됐다. 바로 기성세대 티켓파워 심화다. 『맥스무비』에 따르면 2012년 40대 관객 예매율(25.8%)이 처음으로 20대 관객(20.1%)을 제치고 30대(44.4%)에 이어 2인자로 부상했다. 올해 상반기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에서 CGV가 발표한 통계를 보자. 전체 관객 대비 40대 관객 비율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2.1%, 24.1%, 25.7%로 부력을 탔고, 50대 관객은 2013년 대비 2014년 35.4% 증가했다. 동 기간 40대, 50대 관객 증가율은 20대 관객 증가율을 가파르게 앞질렀다.


장면 셋.

올해 6월 <연평해전>이 개봉했다. 9월에는 <사도>가 개봉했다. <연평해전>은 아주 이례적인 영화다. 관람 시장에서 최초로 성공한 우파 프로파간다 영화다. 그래서일까, 흥행을 둘러싼 논란이 구구하고 치열했다. 일련의 사태는 장면 하나의 행간 속에 의미심장하다. <사도>는 장면 둘, 기성세대 티켓파워 심화현상이 드라마틱하게 반영된 영화다. 이런 콘텍스트가 텍스트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 파헤쳐 볼 가치가 있다. 두 편의 영화를 되짚으며 2015년 한국영화를 결산하려 한다. 한국영화 저변에서 꿈틀거리는 또 다른 흐름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좌우 반전된 역할놀이 <연평해전>
<연평해전> 논란은 의미심장했다. 지금껏 진보 프로파간다 영화를 둘러싸고 연행되던 역할놀이가 완전히 좌우 반전됐기 때문이다. <연평해전>은 정치적 영화라는 비판, 이념을 선동하기 전에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집중하라는 비판과 부딪혔다. 관객이 진영논리로 동원되고 있다는 고발도 잇따랐다. 이것은 그간 보수 언론이 진보 프로파간다 흥행가도에 던지던 18번 코멘트다. 우습게도 이번엔 진보 언론이 이 대사를 인용한 것이다. 보수진영은 <연평해전>은 정치가 아닌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응수했고, 관람행렬은 자발적이라고 방어했다. 보수언론 헤드라인은 “잊지 맙시다!”, “기억하겠습니다!” 같은 간증으로 채워졌다. 이 또한 <두 개의 문>, <남영동 1985>, <26년>, <다이빙 벨> 등을 지원하던 진보언론의 상투어다.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재미있는 사실은 또 있다. <연평해전>에 진영논리가 개입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사들이 정작 하나같이 진영논리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변호인’에 입 열던 평론가들, ‘연평해전’ 외면하는 이유는…”이란 기사를 발행하며, <연평해전>의 후견인을 자처하듯 상대진영 비평가들에게 <변호인>에게 줬던 평을 우리에게도 내 놓으라 생떼를 썼다.
SBS는 “[취재파일] 누가 ‘연평해전’에 스크린 1013개를 밀어줬나?”라는 고발성 기사를 냈는데, 독과점 흑막을 의심하는 추론에서 비약이 심하고, <국제시장>까지 스크린 밀어주기를 의심하는, 논리에 허점이 많은 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국제시장’은 최다 스크린이 열린 날 좌석점유율 29.3%”이며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했는데 이는 사실관계부터 잘못됐다. <국제시장>은 2015년 1월 3일 1,044개로 최다 스크린을 배정받았는데, 이날 좌석점유율은 62.1%다. <연평해전> 1,013개 스크린 배정을 두고 “경쟁사인 NEW의 작품에 대기업 극장체인들이 보조를 맞춰주고 있는 것 자체가 희한”하다고 평하지만, 앞선 3월 NEW가 배급한 <스물>도 첫 주 926개 스크린을 배정받았고 <스물>보다 <연평해전>의 흥행세가 양호했다.
『오마이뉴스』도 “<국제시장>보다 진일보한 <연평해전> 밀어주기”라는 기사로 보수언론의 편파적 태도에 일갈을 날렸지만, <연평해전> 같은 영화가 등장한 배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정하지 않았다.




진보 프로파간다와 진보진영의 지원사격
진보진영은 <26년>의 함량미달 만듦새를 불문에 부치며 정치적 가치를 강조했다. <남영동 1985>를 보는 것을 시대를 바꾸는 선각자적 행위로 독려했다. 급기야 『경향신문』에는 12월 19일이란 ‘결전의 날짜’를 정확하게 가리킨 선동문까지 등장했다([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남영동 1985’와 ‘26년’). 이것은 두 말할 것 없이 진영논리에 갇힌 영화평이었다.


영화 <남영동 1985>와 <26년> 포스터



우파세력은 전통적으로 대중문화 헤게모니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진보 상업주의의 문화시장 경쟁력은 월등했고 우파는 대항 콘텐츠를 내놓지 못했다. 건곤일척의 전선에서, 진보 프로파간다의 기치 아래 적군이 일치 단결하는 장관을 보며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정황의 반작용으로 <다이빙 벨>, <천안함 프로젝트> 검열 논란이 일었고,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부산영화제 인선 논란이 불거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파 상업영화를 제작하려는 움직임이 움찔거렸다.
2013년엔 육영수 전기영화 <퍼스트 레이디> 제작이 무산되는가 하면 ‘수꼴 할배’를 주인공 삼은 <죽지 않아>라는 민망한 졸작이 같은 해 개봉했다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되기도 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제작비 펀딩에 실패하며 흐지부지됐다. 2014년 2월 제작 발표회에서 제작자 서세원은 <변호인>에게 삿대질하며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 “이런 X같은 상업영화가 나와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집단 최면에 걸렸다.”는 극언을 쏟았다. 그런 와중 2014년 연말에는 우연찮게도 <국제시장>이라는 ‘산업화 시대’ 친화적 영화가 나타났다. 보수 언론은 제작비 한 푼 보태지 않은 영화에 ‘좌파 평론가 막말’ 프레임으로 업혀 갔다. 그 해의 천만 영화 <변호인>의 대항마로 앞세우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2015년, 우파 진영은 배우 캐스팅과 프로덕션, 배급에서 구색을 갖춘 상업영화를 은막에 올리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바로 <연평해전>이다. <연평해전>은 600만 관객을 모았다.




<연평해전>의 등장, 어떤 의미를 지닐까
관객의 관람 동기는 불균질하고 다층적이고 우발적이므로 관람 행위에서 통일된 의도와 효과를 발굴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마련이지만 국지적 가설을 제기할 순 있다. 가령, 진보 진영이 ‘자기 편’ 영화에 쌍수를 들며 제창한 정치적 각성의 서사를 방향만 바꿔 덧붙일 수 있다.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진보적 깃발을 건 한국영화의 전통적 전략은 현실을 역사로 소급해서 나쁜 질서의 기원을 찾아 ‘찢어진 역사의 페이지’를 보여주며 관객을 계몽하는 것이다. 그 기원은 일제 강점기 상해이고, 5.18 광주이고,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이고, 민주화의 거인이 웅변을 토하는 독재정권 치하 법정이다.
<연평해전>은 그런 진보적 기획과 맞은편에서 공명했다. 그것은 대중문화의 장을 거쳐 연평해전 사건을 공적 과거에서 역사로 상징화하려는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마치, 90년대에 권위주의 정권이 사망하고 문민정부가 집권하며, 80년 광주가 반복적으로 문화시장에서 상연되어 개인-소비자가 된 관객에게 사건의 의미를 각인한 것처럼. “당신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던 그날, 숨을 거둔 호국 영령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70년대 반공영화의 시장주의적 버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요점은 문화적 계몽과 동원의 시도가 우리사회 오른쪽에서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연평해전>의 예기치 못한 흥행 앞에서, 자발적 관람의 의미를 힘껏 축소하려 한 진보진영의 공모는 이런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는 몸짓은 아니었을까.




늙은 수컷의 개선가 <사도>

<사도>는 끔찍한 이야기다. 아비가 아들을 죽인다. 그것도 뒤주에 가둬 산송장을 만드는 엽기적 방식으로. 이것이 사도와 영조 사이 비극의 하이라이트다. 역사적으로 영조가 사도 세자를 죽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이야기’로 옮길 때 그 중 어떤 국면을 어떤 관점으로 포착할지가 중요하다. 이준익은 영조와 사도 세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뒤로 물리고, 둘의 비극을 온전히 부자관계에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이 경우 감독은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힘을 지닌 아비가 아직 힘없는 아들을 제거하는 윤리적 오점을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준익은 이 쟁점에서 느슨한 태도로 물러선다. 오히려 나는 이준익이 자꾸만 영조의 뒤를 받쳐준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영화 <사도> 포스터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7일의 기록에 연대기적 플래시백을 첨부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파국을 맞은 관계를 보여주고 왜 사태가 이 지경으로 치달았는지 하나씩 설명하는 구조인데, 흥미로운 건 영화의 오프닝이다. <사도>는 영조가 사도를 뒤주에 가두는 장면이 아니라, 사도가 칼을 차고 경희궁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직후 장면에서 사도를 뒤주에 가두는 영조의 결단에 정당성이 실리고, 왜 아비가 아들을 죽였는지가 아닌 왜 아들이 아비를 죽이려했는지가 플롯의 해명 목표가 된다. 이에 따라 사건의 윤리적 초점도 틀어지고 희석된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의 감정선으로 건축된 영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캐릭터가 균등하게 재현되지 않았다. 영조는 내면과 배경, 세부가 살아있는 입체적 인물이고 다양한 면모를 품고 있다. 자식 공부에 기대를 거는 아버지에서 노회하고 비정한 제왕,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보통사람’과 그것이 발현된 신경증적 습관을 지닌 별종을 오가고, 때론 코믹한 역할까지 수행한다. 이것이 사극의 문법을 벗어난 송강호의 고유한 재현 수법과 어울려 풍부한 인상을 자아낸다.
사도는 곰곰이 뜯어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행적에 일관성이 없고, 종종 파멸을 자초한다는 인상이 들며, 세자로서 국정에 대한 소신도 없다. 대리청정하는 장면에선 느닷없이 개혁가의 면모를 과시하며 보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사도란 캐릭터에 관한 명확한 사실은 ‘공부하기 싫은 아들’이란 감정이입의 외피와 아비를 향한 목마른 인정욕구밖에 없다. 이것이 ‘상처 입은 미숙아 폭군’이라는, 연산군 캐릭터를 통해 한국 사극이 구축한 전형성으로 재현되며 그를 평면적 인물로 만든다. 사도가 뒤주에 갇히는 사태를 부른 둘의 행적에서, 논리적 개연성이 느껴지는 건 차라리 영조이며 사도는 피해자라는 지위에 의해 반사적 연민만 얻는다. “공부 열심히 해라. 실력 없으면 왕이라도 칼 끝 쥔다.”는 대사는 울림이 있지만,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는 그저 공허한 것이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영조가 사도를 죽이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왕을 시해하려 한 신하이자 아비를 죽이려 한 자식을 처단하는 것이다. 이는 공적/사적 층위다. 둘째, 면학에 정진하라는 아버지의 율법을 거역한 아들을 정죄하는 것이다. 이는 온전히 사적 층위다. 마지막,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두머리를 위협하는 ‘젊은 수컷’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도를 주살하는 가장 내밀한 동기라는 점에서 실재적 층위라 부를만하다. 영화에는 이런 층위들이 뒤죽박죽 혼재하고, 영조가 윤리적 비난을 피해 옮겨 다니는 엄폐물이 되어 준다.
사도와 영조는 부자지간인 동시에 왕과 세자라는 군신지간이다. 영조는 아들을 짓누르는 아비지이지만, 역모를 꾀한 신하에게 벌을 내리는 군왕이기도 하다. 영조가 행하는 공적 결단의 과도함은 사적 사연으로 설명되고, 사적 비정함은 공적 대의로 정당화된다. 사도가 숨을 거두던 7일째, 영조와 사도가 대면하는 장면을 보자. 이 장면은 전음을 나누듯, 인물들이 입을 떼지도 않고 발화하며 ‘영혼의 대화’처럼 진정성을 세팅한다. 아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영조가 돌연 슬픔을 토로하며 목쉰 소리로 운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은 대의명분에 의지한 자기변호이고, 캐릭터에게 죄의식을 고백하게 해 죄의 무게를 덜어주는 연출이다. 빼어난 영화는 악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게 해주지만, 이렇듯 악행을 ‘이해할만한 것’으로 묘사해서는 곤란하다.
사도의 죽음을 초래한 행간도 영조를 일정 정도 면책하는 구조다. 사도가 칼을 차고 경희궁으로 향하는 상황은 사료에 없는 상상된 재현이다. 영조는 이 사건을 통해 사도를 죽일 수 있는 명분과 설득력을 얻었다. 영빈은 사도의 경희궁 행을 고변하고, 정조는 왕위를 대신 이을 존재로서 사도의 주살에 연루된다. 이준익은 저 둘이 죄책감에 흐느끼는 장면을 삽입하며 이런 정황을 강조한다. 영조가 걸머질 몫의 죄의식이 분산되는 것이다.
사도와 영조 사이엔 부자관계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구멍이 뚫려있다. 앞서 말한 실재적 층위에 의한 것이다. 영화 중반, 친국 후 귀를 씻는 영조가 사도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조는 흉한 말을 들으면 미운 사람을 불러 그 말을 전가하는 버릇이 있다. 이 장면은 그가 아들에게 어떤 감정을 품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때, 영조는 귀 씻는 물 대접을 받쳐 든 궁녀를 음습한 눈빛으로 흘끔거린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사도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명백히 그날 밤 궁녀와 동침할 것이라는 암시다. 아들 앞에서 동물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것이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이 장면은 부자 사이 갈등을 수컷 사이 긴장으로 이탈시키는 효과를 파생한다. 사도와 영조가 대립하는 직접적 계기가 무엇인지도 되새겨야 한다. 사도가 대리청정하며 탕평책을 무시했고, 신하들 힘으로 왕좌를 얻은 아픈 처지를 찔렸기 때문이다. 그 직후 영조의 훈육은 폭압으로 치닫고 자식의 ‘깨끗한 체’에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사도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보위의 안정을 위해 제압할 경쟁자에 불과하다. 내 입지를 흔들고 열등감을 일깨우는 젊은 수컷에 대한 늙은 수컷의 적개심, 곧 세대 간의 대결이다.
이준익은 영조와 사도가 대결하는 이 영화에 지속적으로 정조를 개입시킨다. 이준익은 한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정조가 영조와 사도가 담지한 가치를 정반합으로 통합하는 인물이라 밝혔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조는 곧 영화의 결론이다. 정조는 ‘아버지의 율법’을 충실히 수행하여 사도 대신 선택된 영조의 유사-아들이다. 그는 아비의 비극을 지켜보며 오열하지만, 더 큰 아버지의 율법을 긍정한다. 엔딩의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서, 어른이 된 정조는 사도의 부채를 들고 춤 추고, 허공에 활 시위를 당기며 사도를 재현한다. 그렇게 죽은 아비를 애도하면서, 아비를 죽인 권위를 계승하여 ‘떳떳하게’ 사배를 올리고 ‘떳떳하게’ 놀며 미완의 꿈을 이뤄준다.
영조의 시점으로 본 <사도>는 어떤 영화인가. 강한 아버지가 권위를 거역하는 나쁜 아들을 숙청하고 좋은 아들을 얻는다. 자식의 숨이 멎고서야 '생각하고 슬퍼하며' 살아남은 자의 특권 같은 죄의식을 챙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가 세운 질서는 온존할 것이다. 늙은 수컷은 승리를 음미하며 ‘개선가’를 울린다. 아버지의 율법을 삼엄하게 전시하며. 이 장면에서 지난 대선, 세대 간 대결 구도 끝에 기성세대의 승리로 귀결된 선거 결과가 떠오른 건 무슨 연유에서일까.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이준익은 어린 아들의 비극을 장황하게 애도하며 그가 얼마나 아프게 학대당했는지 진술한다. 그러나 그를 학대한 아버지의 질서가 나쁘다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소망을 위해 자식을 도구로 쓰는 태도를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신파를 연출하려 사도란 캐릭터를 평면화하고 무력하게 폭주하다 파멸을 자초하는 인물로 도구화한다는 의심이 든다. 아비와 아들, 수컷과 수컷,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맞서는 형국의 영화에서, 이렇듯 모호한 제스처로 양 편에 발을 걸치며 타협한다. 나이 든 관객들에게 은밀하게 힘의 카타르시스를 상납하며.




한국영화의 보수화는 이제 시작이다
돌이켜보면, 국가주의•민족주의 같은 우파적 이념을 비껴든 영화가 개봉하는 건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연평해전>처럼 근 과거의 구체적 사건을 정파적 욕망을 투영해 무대로 옮긴 영화는 처음이다. 그래서 <연평해전>의 상업적 성공은 시사점이 굵다. 이 영화의 관객 비율은 20대가 압도적이었다. 이것은 세상과 격리된 채 징집당한 피해자로서의 공감대, 내가 부재한 곳에서 그들이 희생당했다는 죄의식을 부추기는 안보 소재를 잘 포착한 결과다. 한편 2010년 천안함 침몰•연평도 포격 이후 강화된 젊은 세대의 반북 정서와 공명할 것이다. 물론, <연평해전>의 성공이 전적으로 자발적 관람에 의한 것인지, 과연 관객들이 영화의 이념적 성격에 반응한 것인지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요점은 보수 정파 이데올로기를 담은 영화가 세대를 종단하는 포섭력을 발휘한 표면적 결과가 이제 드러났다는 것이다. 우파 상업영화의 경쟁력을 목격하면서,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전향적 자세로 주판을 튕길 것이다.




지난 4일 <인천상륙작전>이 크랭크인했다. 이 영화는 물경 160억 제작비에, CJ가 배급을 맡았고, 충무로 스타 이정재에 헐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까지 캐스팅했다. 제작자 정태원의 변과 시놉시스를 볼 때, 한국전쟁을 다룬 어떤 역대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교해도 도저한 국가주의•반공주의가 부족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범수를 비롯한 출연 배우 몇몇은 12월 2일 '맥아더 길' 명예도로 지정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진보 프로파간다 및 <연평해전> 때와 같은 정치적 논란은 더 많이 재연될 것이다. 영화담론 밖의 진영 싸움도 영화담론 안쪽으로 더 많이 진입할 것이다.
<사도>는 지난 10년간 격변한 관람 지형을 함축하고 있다. 『맥스무비』 통계에 따르면, 2003년 20대 관객은 전체 관객 수 70%에 육박했다. 한국영화는 ‘소년’들과 동행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고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20대 관객은 30%가 채 안 된다. 20대가 추락한 빈자리로 40•50대가 승천했다. 메인 관객층 권력이 이양됐고 지배적 취향의 축이 이동한 결과 한국영화는 늙어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 인구구조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영화산업/관람시장의 재편을 의미한다.




2000년 세대별 인구는 20대 820만, 30대 850만, 40대 690만, 50대 435만이었다. 그러나 2015년엔 20대 680만, 30대 760만, 40대 850만, 50대 800만으로 전복됐다. 이제 충무로는 기성세대를 소외하고 큰돈을 만질 수가 없다. 가족 코메디 최초로 천만 관객을 이룬 <7번 방의 선물>은 중대한 징후였다. 작년엔 1,700만 관객 <명량>이, 올해는 1,400만 관객 <국제시장>이 기록적 흥행과 사회적 담론을 터트렸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구태한 세대관에 대한 비판도 들끓었다. 대중문화 영역에서 벌어진 세대 갈등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도>는 600만 관객으로 후반기 최고 흥행작이 되었는데, 텍스트 안팎에서 길항하던 세대 간 대립양상이 텍스트 안에 집약돼 있고, 그 중 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변천한 관객 구조가 산업적 조건을 넘어 콘텍스트가 되어 점점 텍스트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상 진단한 두 가지 경향은 차후 지속할 것 같다. 특히 후자는 뿌리 깊은 구조적 재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성세대일수록 보수 이념에 친화적이므로, 양자는 느슨하게 연동돼 있고 서로를 강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두 경향이 어떤 변곡점에서 만나는지 주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파적 소재가 호응을 얻는 이념적 의미에서의, 기성의 가치를 긍정하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양자를 아우르는 ‘한국영화 보수화 이행’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소년 영화와 소년 관객이 일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거쳐, 10년 전 극심한 불황으로의 돌입을 거쳐, 4년 전 대호황으로의 반등을 거쳐, 영화산업은 또 한 차례 이행기를 맞이하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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