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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장사가 아니라 사기다

  • 입력 2015.12.16 13:59
  • 수정 2016.02.13 09:27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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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넛지(Nudge) : '어떤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며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 행동경제학 분야에서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나 설계를 일컫는 뜻으로 쓰인다.

인간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은 변화, “넛지”가 주목받고 있다. 행동 과학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넛지의 기술은 윤리적인 원칙에 따라 잘 활용하면 매우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할 만한 나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데 넛지가 잘못 쓰이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해야 한다.

하버드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와 함께 쓴 나의 책 <넛지>에 누군가 사인을 요청할 때마다 나는 “좋은 목적을 위해 넛지해 주세요(Nudge for good).”라는 말을 덧붙인다. 불행히도 이 말은 책의 저자로서의 기대보다 간곡한 청에 가깝다. 넛지 사용에서 다음 세 가지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한다.

• 모든 넛지는 투명해야 하고, 절대로 상대방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
• 넛지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 넛지를 통해 유도된 행동이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영국과 미국 정부에서 넛지의 원리를 이용해 정책을 만드는 이들은 이러한 원칙을 세심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민간 분야로 눈을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넛지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기업 활동 가운데는 잘못된 정책, 옳지 못한 상술이 종종 눈에 띈다.



피싱이나 다름없는 '나쁜 넛지'



지난 봄, 나는 내가 쓴 새 책에 관한 권위있는 서평이 나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일간지 <더 타임즈>에서 보낸 이메일이었다. 서평을 읽고 싶다는 마음에 이메일에 있던 링크를 눌렀더니 바로 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되었다. 첫 한 달은 1파운드만 내면 시험 구독을 할 수 있다는 제의에 나는 마음이 솔깃했다.
신문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기사 유료화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하지만 시험 구독 신청 전에 이용 약관을 찬찬히 읽어봤더니, 예상대로 신용 카드 정보를 제공해야 했고 시험 구독 기간이 끝나면 자동으로 정기 구독자로 전환된다는 내용이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구독료는 한 달에 26파운드(약 4만5천 원)였다. 사실 이 액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정기 구독자가 될 생각이 없었고, 그저 내 책에 관한 서평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용 약관의 세세한 부분을 읽다 보니 구독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구독을 취소하려면 구독기간 만료 15일 전에 신문사에 이를 알려야 했다. 즉, 시험 구독 기간이 끝난 뒤 취소하고 싶다고 밝혀도 그날부터 15일 동안은 구독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1파운드에 한 달간 구독할 수 있다는 제안은 실제로는 2주짜리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취소하는 방법도 대단히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런던에 있는 <더 타임즈> 사무실에 영국 근무시간에 맞춰 전화를 해야 했다.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는 없었다. 전화비도 독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짜증 나는 동시에 우려스럽기 그지없었다. 미국에 사는 데다, 늘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는 교수인 나는 결국 제때 취소를 못 하고 몇 개월 동안 구독료를 내게 될 확률이 꽤 높았기 때문이다. 서평 하나 읽는 데 드는 비용이 결과적으로 100파운드를 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더 타임즈> 대변인 크리스 던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구독을 취소하기 전에 독자가 직접 전화를 걸도록 해놓은 이유는 독자가 신문 보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가 영국 밖에 사는 독자들에게는 구독 취소 과정이 대단히 불편한 절차라는 점을 지적하자, 그는 회사 차원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재고해보겠다고 답했다.
<더 타임즈>의 이 정책은 앞서 언급한 넛지의 이용 원칙 세 가지에 모두 어긋난다. 시험 구독 제안은 오해의 소지가 컸으며 전혀 투명하지 않았고, 구독을 취소하는 절차는 무척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나아가 구독 계약 전체가 신문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있었다. 이는 잠재적 독자의 이익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넛지의 원칙과 어긋나는 정책으로 보였다.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사려고 유나이티드 항공사 웹사이트에 접속했을 때도 나쁜 넛지의 사례를 체험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푯값을 결제하기도 전에 여행 보험을 원하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런 식으로 거듭 의사를 묻고 확인하는 건 소비자가 정말로 큰 실수를 할지 모를 때나 정당화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지원하는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지금 보험 혜택을 받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 정말 맞느냐”고 두번 세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실수로 건강 보험을 잃게 되는 상황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한술 더 떠, 결제 전에 비행기 표에 관한 보험 구매 여부를 묻는 말 옆에 ‘예/아니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뒤, ‘예’ 버튼에 강조 표시까지 해놓았다.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결제를 할 수 없도록 해서 질문을 강제로 소비자에게 노출하고, 구매를 선택하는 게 낫다는 권고까지 덧붙여놓은 것은 매우 강력한 넛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좋은 목적을 위한 넛지일까?
구체적인 사항을 살펴보자. 비행기 푯값이 고작 300달러인 여행에 책정된 여행 보험료는 20.13달러다. 이 보험은 푯값으로 낸 돈 가운데 환불이 안 되는 부분에만 적용된다. (보통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경우 비행기 표를 바꾸는 데 드는 수수료가 200달러다. 보험에 들면 사정이 생겨 표를 바꿀 때 이 수수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빼곡히 적힌 환불 요건 가운데는 비행기가 결항 또는 지연된 경우가 아닐 때 환불을 받으려면 예약을 취소한 지 72시간 이내에 ‘비행기를 타는 게 건강상 위험하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받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만약 크루즈 여행과 패키지로 표를 샀을 경우에는 보험이 그나마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예정된 항공편의 결항 또는 지연으로 인해 정해진 장소에서 크루즈선에 환승하지 못했을 경우, 보험을 통해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크루즈를 탈 계획이 없었다.
아예 처음부터 환불 가능한 비행기 표를 사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100% 환불 가능한 비행기 표는 값이 856달러나 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는 환불이 가능한 비행기 표에도 여전히 여행 보험을 권했다. 보험료도 49.23달러로 더 비쌌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대변인 라산 존슨은 여행 보험에 관해 “여행을 하는 소비자나 항공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치러야 할지 모르는 예기치 못한 비용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험료는 보험을 제공하는 알리안츠가 책정한다고 덧붙였다. 알리안츠의 대변인 대니얼 듀라조는 보험료가 푯값에 비례해 책정된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푯값에 비례해 보험료를 산정하는 게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그나마 여행 보험과 같은 옵션을 선택하지 않기가 쉬웠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었다고 할 만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넛지 역시 앞서 언급한 다른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넛지들은 투명하지도 않았고, 대부분 소비자에게 득이 되지도 않았다.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한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상당히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기업이 소비자들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넛지를 이용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로버트 실러 교수는 이러한 행동을 ‘피싱 사기(phishing)’라고 칭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실러 교수와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해 <바보들을 노리는 피싱 사기(Phishing for Phools)>라는 책을 썼다.

어떤 사람들은 피싱 사기, 혹은 사악한 넛지가 민간 분야에서보다 정부 정책에 적용될 때 더욱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지만, 민간 분야에서는 소비자가 어떤 신문을 읽고 어떤 항공사를 이용할지 자유롭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구분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는 나쁜 정책을 폈다가는 다음번 선거에서 패하여 퇴출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간 분야에서의 경쟁은 피싱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조장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주택담보 대출 업계의 관행은 민간 분야에서 나쁜 넛지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만연할 수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업계는 담보로 잡힌 집값이 떨어졌을 때 갚을 수 없을 만큼의 무리한 대출을 소비자들에게 권장했다. 대출 관행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가는 돈을 벌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결국, 서로 경쟁하다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는 못하고 모두가 한배를 탄 공범이 된 셈이다.
소비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저항함으로써 서로를 도울 수 있다. 앞서 예로 든 여행 보험이나 “한 달” 시범 구독 같은 의심스러운 제안을 우리가 더 신중하게 살피고 거절할수록, 기업은 이런 옳지 못한 책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소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업이 소비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면, 그런 기업이 더욱 많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번창하게 될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도 나아질 것이다.


원문 :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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