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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세대'라는 딱지가 위험한 이유

  • 입력 2015.12.12 16:15
  • 수정 2015.12.12 16:20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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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는 먹힌다. 내 지갑 사정이 어려운 건 늘 공감을 받는 얘기다. 삼포세대엔 이러한 감각과 생애주기 곡선에 따라 20-30대가 연애, 결혼, 출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결합되어 있다. 보편적인 공감대 두 개가 더해지니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중을 염두에 둔 모든 곳에서 삼포를 말하게 됐다. 저널리즘부터 시작해서(고함20도 많이 썼다) 드라마 등의 문화콘텐츠, 정치권까지. 삼포세대라는 단어는 전염병처럼 퍼졌다.
삼포세대를 전염병이라 지칭한 건 미사여구가 아니다. 삼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위험한 단어다. 전제부터가 굉장히 불편한데, 삼포세대라는 단어가 연애, 결혼, 출산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N포세대라는 단어는 특정한 인생곡선을 그려낸다. N개를 포기했다는 말은 ‘(N개는 인생에서 필수적인 요소인데) N개를 포기했다’라고 다시 읽을 수 있다.


연애 얘기를 듣고 싶으면 순정만화를 보새오

한국에서 연애, 결혼, 출산 얘기는 굉장히 안전한 대화 주제로 취급되고 있다.

애인 있어요?
슬슬 결혼할 나이네요.
애는 언제 낳아요?

정치, 종교 얘기가 첫만남은 물론 오랜 사이에서도 꺼리는 대화 주제라면 연애, 결혼, 출산 얘기는 다르다. 상대방이 연애, 결혼, 출산 상태가 아니어도, 심지어 그러한 상태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연애, 결혼, 출산 얘기가 무례한 경우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대방이 그 주제로 전혀 얘기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건 듣는 사람이 연애, 결혼, 출산 상태가 아닌 결핍에서 비롯된 ‘열폭’으로 치부되지 말하는 이가 비난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상황에서 삼포세대가 이곳저곳에서 더 많이 사용될수록 그 단어가 숨기고 있는 전제는 더욱 단단해진다. 연애, 결혼, 출산 상태는 정상이고, 독신, 비혼, 무자녀 상태는 비정상이 되는 이분법이 공고해진다. 연애, 결혼, 출산은 무엇보다 개인의, 사적인 영역임에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오지라퍼들에 의해 이는 모두가 씹고 뜯고 즐기는, 공적 영역이 된다. 비연애인구는 솔로/모솔, 비혼주의자들은 눈만 높은 노처녀/노총각으로, 무자녀 부부들은 애국도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정상상태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애인이 왜 없는지, 결혼을 왜 안했는지, 애는 왜 안 낳는지 묻지 말아요 / ⓒ어드벤처타임


오지랖의 최종보스는 국가

삼포세대라는 전염병의 무서움은 유행어를 가장 늦게 쓰지만, 가장 티 나게 쓰는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전해졌을 때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청년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0월 30일 교섭단체 연설 중 발언

만사결통 : 광역자치단체 인구보건복지협회 공동으로 미혼남녀 만남의 기회 제공 사업(가칭) 프로그램 추진
-보건복지부, 10월 19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

그리고 마침내

만혼화 현상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소득이 없고 고용이 불안해 결혼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중략)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젊은이들의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
-박근혜 대통령, 12월 10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심의를 위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중

삼포세대라는 라벨의 끔찍함은 정부와 여당이 삼포세대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확실히 드러났다. 김무성 의원은 삼포세대 구출작전이라는 연막으로 ‘그들의' 노동법을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더 괴상하게 만사가 결혼으로 통한다, 줄여서 ‘만사결통’이라는 아재네이밍 센스를 보여주며 다 큰 국민들의 결혼을 중매하려 하고 있다.

그 사업이 포함된 저출산 정책을 심의하는 자리에서는 ‘실업’과 ‘젊은이들의 사랑’이 엮이는 엄청난 인과관계를 보여줬다. 이를 보자니 실업, 저출산 정책(난임 부부 지원, 육아 제도 선진화 등)을 넘어 이제 국민의 삶의 중대한 선택에도 관여하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거대한 국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간섭 속에는 정책결정자들이 국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런 모습은 중앙여성위원회에 참석한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아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11월 3일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 참석 중

농담이든 아니었든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국회 과반인 여당대표가 출산 여부와 참정권을 묶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끔찍한 일이 아닐까. 그들에게 국민들은 오로지 ‘국민이라는 집합으로 구성된다. 한국 국적의 우리들은, 개개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고회로 속에 개개인의 삶따윈 없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소환되는 인적자본으로 사용된다. 다른 이가 만들어가는 국가를 위해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할 것을 요구받고 그 행위를 통해 만이 애국자(시민)으로 인정을 받는다.

김무성 의원이 김무성 의원에게 ⓒ채널에이

청년들이 삼포세대를 강조했던 최초의 이유는 청년의 처지를 직관적이고 강하게 알리기 위한 장치였다(연애, 결혼, 출산이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삼포세대’는 점점 퍼져나가면서 배제의 논리가 공고해지고 있으며, 국민 개개인의 삶따위엔 그닥 관심이 없는 정책결정자들의 그럴듯한 명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지금이 더 이상 삼포세대라는 라벨을 안쓰거나 최대한 조심해서 쓰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개념어가 그렇듯 단어가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할 수는 없지만, 삼포세대는 “나는 동의해” 혹은 “나는 동의하지 않아”로 단순히 공감/공감하지 않음에서 끝나지 않는 역효과가 굉장히 강해졌다.
곧 있으면 총선이다. 후보들은 정파와 관계없이 다들 배려심 깊은 사람들이 되니 분명 청년을 염두한 삼포세대 발언들이 쏟아질 거라 예상해본다. 모두들 청년문제에 관심이 덜 했을 땐 삼포세대가 말하며 삼포가 된 청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반가웠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나는 수많은 선거홍보 발언 속에서 삼포세대라는 네이밍 아래 배제되고 강등당한 존재들을 꺼내 올려줄 발언을 애타게 찾고 있다. ‘국민’의 삶이 아닌 국민인 ‘나와 너’의 다양한 삶을 인정하고 지지, 지원해주는 후보나 정당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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