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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탈핵에 성공한 이유

  • 입력 2015.12.10 18:30
  • 기자명 eou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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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강력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세계 4위의 경제규모를 갖는 경제대국입니다. 룩셈부르크처럼 작은 국가도 아니고 인구 8천만명, 면적은 남한의 3.5배를 가지는 커다란 나라이죠. 이러한 규모의 국가에서 원자력발전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특히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독일은 70년대부터 꾸준히 원전반대 여론이 있어왔는데요, 1977년 환경을 중시하고 원전을 반대하는 녹색당이 창당되고 정치권 진출에 성공합니다. 초기에는 원전반대운동의 성과는 미미했으나, 1986년 체르노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거치며 탈핵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1998년 독일사회당과 녹색당의 연립정권때부터 시작된 독일정부의 탈핵정책은 2002년 원자력법과 재생에너지법을 통해 2033년까지 탈원전을 목표로 하였으나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그 기한을 앞당겨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독일의 원전은 모두 17기로 그 중 8곳은 2011년에 이미 가동을 멈췄고, 나머지 9기중 6기는 2021년까지, 그리고 3기는 2022년에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독일정부는 이 결정이 ‘되돌려질 수 없는’ 결정이라 못박아 두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 정말 독일같은 제조업국가가 원전없이 사는게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당연한데요, 간혹 이런 뉴스에 달린 댓글이나 블로그 등을 보다보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보이곤 합니다.

독일은 환경을 위해 자국내에서의 원전은 폐쇄한다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전기를 프랑스의 원전으로부터 사오고 있다. 결국 원전 위치만 독일에서 프랑스로 바꾼 것이니 위선적이다…

과연 그럴 듯 한 이야기입니다. 소위 ‘녹색세탁’이라는 용어로써, 친환경을 빙자한 속임수라는 거죠. 우리나라의 사정을 돌아보기만 해도, 탈핵이 그렇게 쉬운 일일리 없겠죠.
…그래서 직접 조사해보았습니다.
독일은 프랑스 원전으로부터 생산된 전기를 수입하고 있는가?
이 질문의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독일은 프랑스로부터 2014년 한해동안 14.8TWh의 전력을 수입했습니다. (https://www.energy-charts.de/exchange.htm)


그러면 그렇지. 원전 없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라는 반응이 나올 법 합니다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력의 수출수입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두어야 합니다. 생산한 전기를 깡통에 담아 비행기에 실어 보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전력을 수출/수입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섬이나 다름없이 고립된 반도국가인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륙국가들끼리는 전력의 매매가 활성화되어있습니다. 지리적 조건에 따라, 자국의 멀리 있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보다 타국의 가까이 있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더 쌀 수 있기 때문이죠.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면 저장보관이 어렵고 전송거리에 따라 비용이 지수함수로 증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적절한 입지조건을 찾기 어렵고, 초기 시설비가 많이 들며 한번 발전을 시작하면 쉽게 이전하거나 중단, 증설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기 때문에 지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국경지역의 소비자들은 경우에 따라 자국 생산 전기대신 타국의 전기를 이용하는 케이스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프랑스 접경지역의 독일영토에서 프랑스 전기를 수입해서 쓰는 일은 사실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겁니다. 반대로, 프랑스에서도 독일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입합니다. 어느 발전소가 가까이 있냐의 문제인거죠.
프랑스는 원자력에너지 중심 국가로써, 원전생산 전기비율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2009년 기준 전체 생산량의 80.1%), 특히 독일 국경에 붙어서 건설된 Cattenom, Fessenheim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가 그 근처 독일지역에서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죠.

그러므로 독일이 프랑스 원전으로부터 생산된 전기를 수입하느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입니다. 생산된 전기에 원산지 표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로부터 수입하는 전기라면 아마도 주로 Cattenom과 Fessenheim의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라고 봐도 되겠죠. 그러니 독일이 프랑스 원전에 생산된 전기를 수입하여 쓴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뭐, 결국 이 질문의 핵심은, 독일의 원전폐쇄는 결국 무늬만 그럴듯한 정치적 쇼로, 실제로는 원자력에너지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 않느냐 하는거겠죠. 그래서 다시 전기의 수출입문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사실 독일은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최대(전세계 7위)의 전력생산국가이자 주요 전력 수출국가입니다. 2014년 한해동안 독일은 덴마크, 프랑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웨덴, 체코, 스위스에게74,121,519 MWh의 전력을 수출했고, 37,808,287MWh의 전력을 수입했습니다. 수입보다 수출이 딱 2배 되는거죠.


앞서 설명했던 대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끼리는 전기의 교환이 당연한 것입니다만, 원전 폐쇄로 전기가 부족하다면 이렇게까지 전기를 수출할 수 있는 걸까요? 혹은 원자력처럼 싼 전기 없이도 이런 수출이 가능할까요?
답은 '가능하다'입니다.


실제로는 원전은 이미 독일 전기생산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다. 1990년 전체 전기생산의 28%를 담당하고 있던 원자력발전은 2014년에는 15.5%까지 떨어졌죠. 화석에너지도 1990년 57%에서 2014년에는 44%까지 낮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갭을 수력, 풍력, 바이오매스, 태양광 등의 친환경에너지가 메꾸고 있습니다. 1990년 전체 4%에서 2014년에는 26%까지 차지했습니다. 2020년까지는 전체 전력생산의 40%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목표이고, 현재는 로드맵상 초과달성중입니다.
혹시 원전 폐쇄로 인해 전기 생산량자체가 줄어들어 발생한 착시효과는 아닐까요?

(Installed net power generation capacity in Germany. Data: Fraunhofer ISE, April 2015.)

아니군요. 2011년 원전 1차 폐쇄로 인해 잠시 전체 발전가능용량이 줄긴 했으나 곧 친환경에너지의 비약적 증가가 한눈에 보입니다.
즉, 독일이 프랑스 원전에서 전기를 수입한다는 이야기는 문자그대로는 사실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에 접경한 일부 지역의 지리적 특수성일 뿐, 독일은 착실히 친환경 탈핵국가로 행군중입니다.
이쯤해서 한국의 경우에는 어떤지 살펴봅시다. KEPCO자료에 따르면 2011년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체의 겨우 3.6%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수력, 풍력, 태양광발전을 위한 지리적 조건은 한국이 독일보다 훨씬 좋습니다.
두 나라의 전력 소비량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도 있을까요? 한국은 2012년 506TWh의 전기를 사용했습니다. 독일은 2012년 579TWh의 전기를 사용했네요.(IEA Key World Energy Statistics Statistics) 전력소비규모는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되겠네요.
참고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과 수입에너지량을 보면, 2012년 한국은 3,029TWh, 2,644TWh를, 독일은 3,626TWh, 2,315Twh입니다.(위와 같은 자료) 독일도 석탄과 철광석이 좀 있을 뿐 자원부국은 아닙니다. 전기세도 어마무지하게 비싸고 기름값도 한국보다 높죠. 다만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려는 정부와 민간의 의지와 노력이 탈핵을 현실로 만든 힘이겠죠.

그런 노력에 힘입어,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4년 849Mt에서 2012년 748Mt로 10%이상 줄일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은 21.9% 증가했죠. 1인당 이산화탄소배출 세계 3위에 빛나는 한국으로서는 얼마전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총회에서 발표하신 바대로 어떻게 이산화탄소를 줄이실지, 각하의 건투가 참으로 기대되는 바입니다.
한국 이야기를 하느라 삼천포로 빠진 내용을 다시 주워모아서 결론을 내자면, 독일이라고 딱히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 탈핵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 제약조건과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탈핵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일 뿐이죠. 부디 이 글이, 독일의 탈핵관련 뉴스마다 달리는 ‘프랑스 전기 수입설’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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