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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가지 마세요 : 핀란드의 숨겨진 민낯

  • 입력 2015.12.09 14:58
  • 수정 2015.12.09 17:36
  • 기자명 권용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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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꽤 화제가 됐던 뉴스가 있다. 핀란드 정부가 자국민들한테 월 백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인데, 지난 여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직접 방문했던 '전문가' 입장에서 보자면 과연 제정신으로 내놓은 정책인가 싶다. 마누라 말을 빌리자면 시도 때도 없이 술 먹고 놀다가 주말이 되면 목숨 걸고 노는 핀란드 사람들한테 '시도 때도 없이 주말 주중 상관 없이 목숨 걸고' 놀라는 말인가. 대체 일은 언제 하는 거지? 핀란드 사람들이 아무리 세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그렇지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실은 업무를 제외한다면 헬싱키에서의 일상은 따분함의 연속이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나머지, 틀림없이 '이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누라랑 셀카를 찍는 척 하면서 핀란드의 일상을 용의주도하게 살폈다. 복지병에 걸린 이 나라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할 생각이었다. 얼마나 용의주도했으면 핀란드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불순한 의도로 똘똘 뭉친 나는 그렇게 헬싱키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newsmobile.asia


핀란드라는 나라의 이면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 두 얼굴의 헬싱키(혹은 핀란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먼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했다. 가령 아무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려고 하면 일단 기다리라고 한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손님이 왕이긴 하지만 그럴 수 있어.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길래 조심스레 손을 들면 알겠어,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니깐하는 눈빛을 보낸다. 세상에, 한국이라면 벌써 무릎을 꿇었을 일이다. 이 얼마나 후진스러운 서비스인가, 그러나 나는 용의주도하게 기다렸다. 그럴수록 기어이 이면을 보고야 말겠다는 집요함은 더욱 더 견고해졌다.
그런데 이 불친절하던 종업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한없이 다정해진다. 대개 식사를 마칠 무렵인데 이 때 종업원들은 음식 맛이 괜찮냐고 묻고 커피나 후식은 필요없냐고 묻는다. 그럼 그렇지! 다행스러운 마음에 쟈스민 차를 달라고 했더니 인심 좋게 한 주전자를 내주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그날 나는 용의주도했던 관찰을 그만둘 뻔 했다. 밥 값을 계산할 때 한 주전자의 쟈스민 차 값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그 이후로는 "두유워너 썸 커피 오알..." 할 때마다 복수하듯 "노땡큐!"를 외치곤 했다.


ⓒfinnbay


두 번째 이면은 공권력의 실종이다
. 이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실종이다. 헬싱키에 머무는 동안 경찰관을 딱 한 번 봤다. 그마저도 나의 용의주도했던 관찰 덕분에 간신히 찾았다.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인데 치안이 이 정도로 후진국스러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알려진 바와는 달리 헬싱키는 마음만 먹으면 온통 단속의 대상이었다. 무단횡단과 길빵(노상흡연)을 일삼는 무법자들이 천지삐까리였고, 간혹 고성방가를 해대는 위협적인 십대들도 있었다. 시민들은 그런 십대들을 경찰에 신고하기는 커녕 낄낄거리며 인증샷을 찍거나 무심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혹시 공권력을 최소화해서 아낀 세금으로 복지를 하는 걸까? 이 위태로운 시스템을 걱정하지 않는 핀란드 사람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세 번째 이면은 경쟁 없는 성장이다. 나는 만화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헬싱키에 방문했는데 그렇게 한심한 만화축제는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축제의 주인공은 다들 고만고만한 비주류 인디 만화 혹은 대안 만화들이었는데, 오죽했으면 한국에서도 듣보잡인 내가 메인 무대에서 인터뷰를 했을까. 심지어 그 듣보잡한테 왕복 비행기표랑 호텔 숙박비까지 지원해주고 아무것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네가 재밌을 것 같으면 같이 하자는 게 전부였다.


ⓒtundratabloids


더 재밌는 건
, 고만고만한 시장에서 다들 박 터지게 경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나를 초대한 출판사 대표는 나에게 경쟁 출판사 책도 좋으니 읽어보라며 소개해준다. 아무래도 한통속이 아닌가. 네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는 바보 같은 믿음을 실천하는 바보 같은 족속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만화가들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일종의 작품 제작비와 생활비까지 지원받고 있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몇몇 만화가는 지원금을 얼마나 흥청망청 썼는지 남들 다 노는 밤 시간에 극장 문지기 알바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끝으로 가장 놀라웠던 이면은 헬싱키에 머무는 동안 차별을 못 느꼈다는 점이다. 애 엄마가 유모차를 끌면서 길빵을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노동자들은 상대가 갑이든 손님이든 좀처럼 굽신굽신 하지 않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어딜 가든 돈 아까운 장애인 시설이 빠짐없이 잘 되어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애들이 겁도 없이 무단횡단을 마구 하면 운전자들은 혹시 자기 차 망가질까봐 알아서 조심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얼마나 타인에게 무관심하면 이 지경까지 됐을까.


ⓒflickr


말하자면 끝이 없다
.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기본소득 정책에 부러움과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실상은 위아래도 없고 치안도 엉망이고 경쟁도 없는 한심한 동네다.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동네가 아니란 말이다. ‘소지품 가방을 광장에 깜빡 두고 왔는데 몇 시간 뒤에 찾으러 갔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는 괴담 따윈 믿지 말란 말이다. 한여름에는 백야 현상 때문에 밤 11시에도 해가 지지 않아 맨날 술 먹고 놀 수밖에 없는 우울한 동네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핀란드에는 미래가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간곡히 당부컨대, 부디 핀란드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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