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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이티드 항공의 '부러진 기타', 그리고 땅콩리턴

  • 입력 2015.12.09 12:12
  • 수정 2015.12.09 12:13
  • 기자명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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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한파가 몰아닥치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추워지니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네요. 바로 작년 이맘 때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대한항공 땅콩리턴' 사건입니다. 오너의 비뚤어진 권위의식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비판하는 말들이 쏟아져나왔지만, 개인적으로 필자가 이 사건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부분은 이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승객들에 대한 대한항공의 사후처리 방식이었습니다.

사건이 확산되고 갑질의 당사자인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서, 한진 그룹은 조양호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 부사장을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의 빠른 사후조치를 취했습니다.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정작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에 대한 조치는 허술했습니다. 당시 조 부사장과 같이 1등석에 있었던 한 승객의 증언에 의하면, 대한항공 측에서 사건에 대한 보상으로 '모형비행기와 달력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이 왔었다고 합니다. 피해를 입은 승객에게 기념품을 주겠다니, 회장이 나서 몇 번씩 사죄한 사건에 대한 대책으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이 증언이 기사화되면서 조양호 회장의 사과문은 진정성을 의심받았고 대한항공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재점화되었습니다. 결국 한진그룹은 사건 발생 후 보름 동안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시가총액이 2000억 이상 증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대한항공의 이 사건이 아니라도, 실망한 고객 한명의 마음을 되돌리는 일을 등한시하다 실패한 기업의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기존 고객에 대한 사과보다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홍보활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그런데 7년 전, 미국 3대 항공사 중 하나인 유나이티드 항공도 유사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대한항공처럼 오너가 개입한 갑질 사건은 아니었지만, 기존 고객 한 명에 대한 응대를 소홀히 했다가 나흘만에 주가가 10%이상 폭락하고 오만한 항공사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낙인이 찍힌 일입니다. 마케팅 분야에서 고객관리의 중요성을 말할 때마다 늘 거론되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2008년 3월 31일, 캐나다 출신의 컨트리송 가수 데이브(Dave Carroll)는 네브라스카에서의 공연을 위해 시카고 공항에서 환승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뒤에 앉은 승객으로부터 수하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짐을 부주의하게 던지고 있다는 불평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기타박스도 휙휙 던지다시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데이브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에 필요한 기타를 수하물로 부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네브라스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짐을 찾아 기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비싼 기타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3500불짜리 기타가 부러져 있는 걸 본 데이브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기타를 이렇게 부러뜨린 것 자체도 문제였지만, 이미 승무원들에게 세 번이나 기타를 조심히 다뤄달라고 부탁한 뒤였기 때문에 더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승무원들은 데이브의 부탁을 듣고도 들은척 만척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일단 공연이 급했던 데이브는 네브라스카로 가 공연을 마쳤고, 돌아오는 길에 시카고 공항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사 측에 컴플레인을 하고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유나이티드 항공은 "기타를 부러뜨린 것은 미안하지만 보상해 줄 책임은 없다"고 했습니다. 사고 발생 후 24시간 이내에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데 데이브는 그 시간을 넘겼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기타의 파손에 대한 책임소재가 분명한데도 말이죠. 이후 데이브는 콜센터에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며 수차례 항의했지만 늘 보상 책임이 없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끈질긴 데이브는 무려 9개월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유나이티드 항공에 끊임없이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데이브는 자신이 겪은 이 황당한 사건을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유명하지는 않은 인디 가수일 뿐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공연을 통해 이 경험을 널리 알리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2009년 7월 6일, 사건이 있은지 15개월만에 데이브는 자신의 노래뿐만 아니라 이를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노래 제목도 아주 직설적이었죠.

"United Breaks Guitars"(유나이티드가 내 기타를 부러뜨렸어)


United~ United~ United, You broke my tailored guitar~가사도 참 노골적이죠?

데이브는 미국 중부 특유의 신나는 리듬에 자신이 겪은 황당한 일을 녹여냈습니다.

Some big help you are
너에게 충고 하나 할께
You broke it, You should fix it

네가 부쉈으면 네가 고쳐야지
You're liable, just admit it
너희들 책임인거 알면 인정해야지
I should've flown with someone else or gone by car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타고 갈 걸 그랬어
Cause United breaks guitars
왜냐하면 유나이티드 항공은 기타를 부숴버리니까



데이브는 뮤직비디오에도 직접 출연해 자기 경험담을 노래로 부릅니다.
"네브라스카로 가는 길에 시카고 공항에 들렸지~"

노래하는 데이브 뒤에서 공항 직원들이 기타를 던지고 있습니다(ㅋㅋㅋ)

데이브가 항의하지만 직원들은 들은척 만척 입니다. 내 책임 아니니 다른 부서에 문의하세요~

아스팔트 위에 목이 부러진 채 살해된(?) 데이브의 기타입니다.

목소리는 친절하지만 결국 유나이티드에서는 보상해줄수 없다고 하네요...

목이 부러진 기타의 장례식입니다. 슬퍼야 하는데 노래랑 표정이 왜 이렇게 웃길까요.


이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업로드된지 하루만에, 이 비디오의 조회수는 15만을 돌파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 50만 명이, 한달 뒤에는 500만 명이 이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심지어 노래에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유나이티드~ 유나이티드~" 하며 흥얼거릴 정도였다고 하네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회사가 자신의 브랜드를 500만명에게 노출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요? 만약 유나이티드 항공이 TV광고를 통해 500만명에게 유나이티드라는 브랜드를 인식시키려면 아마 어마어마한 금액의 광고비를 쏟아 부은 뒤에도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유나이티드 항공이 승객의 수화물을 던져서 파손시켰다는 4분짜리 뮤직비디오를 5백만명이 보고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닌다는 것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수십 년 매출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역시나 그 영향은 주식시장에서 바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가 올라온지 나흘 만에 유나이티드 항공의 주가는 10%이상 곤두박질쳤습니다. 무려 1억 8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회사가치가 증발해버린 것이지요. 3000불짜리 기타를 배상해주지 않고 버티던 유나이티드는 기타 5만 개 이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잃어버린 무형의 브랜드 가치까지 생각하면 그 손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유나이티드 항공. 결국 유나이티드 항공 측은 데이브에게 사과하고 기타값에 해당하는 3000불을 그의 의사에 따라 비영리 음악 교육기관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데이브가 제작한 뮤직비디오를 자사의 내부 교육용 비디오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심지어 유나이티드 항공은 데이브를 자사의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고객서비스 교육의 강연자로 초청합니다. 물론 강연료는 두둑히 지불했겠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데이브를 1등석에 태워 미국 전역의 유나이티드 지사로 모시고 간 뒤 자신들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강연하러 가는 데이브의 수하물을 유나이티드가 또 잃어버리는 일이 있었다네요...)
실수는 누구나 하죠. 심지어 여러 사람이 모인 기업도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글로벌 기업도 고객에게 실수를 합니다. 그런데 훌륭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이 실수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생겨납니다. 고객의 수화물을 파손하는 실수는 유나이티드 항공뿐만 아니라 그 어느 항공사에서든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이지만, 그 이후 어떻게 사과하고 처리하느냐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이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만 해당하는 진리가 아니라 기업과 고객 사이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칙이라 생각합니다.


그룹 회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땅콩 리턴'에 대한 소비자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사과에서 사태 무마 이상의 의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해를 입은 승객에게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 대한항공과,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조차 갑질을 일삼은 조현아 부사장. 카메라에 대고 읽은 사과문 이외에 어떤 부분에서도 반성의 맥락은 읽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유나이티드 항공의 사례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던 것인지, 그저 시간을 때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미지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크게 골탕을 먹은 후에라도 확실한 사후 처리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 유나이티드 항공과 그나마도 제대로 하지 않은 대한항공의 품격은 또 다른 차이가 나는 것 같네요. 글쎄요..."대한항공~대한항공~ 넌 땅콩을 무시했어~" 이런 노래라도 만들어지면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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