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쩌다 한국은 헬조선이 되었을까

  • 입력 2015.12.07 10:09
  • 수정 2015.12.07 10:12
  • 기자명 북클라우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쩍 늘었다. 1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헬조선’이라는 말. 신조어가 하도 많아 쫓아가는 게 벅차다. 그래서 처음에는 헬조선이라는 말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요즘 ‘안티 조선(조선일보)’ 운동이 다시 시작됐나”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우리가 사는 한국은 지금 지옥이 돼 있는 걸까. 어디 헬조선 뿐이겠는가. 2000년대 초반의 ‘88만 원 세대’는 10년이 지나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가 됐고, ‘5포 세대’(3포+인간관계, 내집)가 나오는가 싶더니 요즘 세대는 아예 모든 걸 포기한 ‘N포 세대’라고 한다. 사람을 구분할 때는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분류한다. 심지어 연예인들까지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는 출신성분 분석이 유행한다. 이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하나의 현상은 ‘절망’이다. 희망 없음. 지금 대한민국은 99%에게 헬조선, 지옥이다.



ⓒ www.yellowbag.pe.kr

어쩌다 한국은 이렇게 됐을까. <어쩌다 한국은>(박성호 지음, 로고폴리스 펴냄, 2015년)의 부제는 “우리의 절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이다. 저자 박성호는 ‘물뚝심송’이라는 필명으로 ‘딴지일보’에 정치 관련 글을 쓰고,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에 출연하는 등 자칭 ‘의견가’이다. 이 책은 그가 어쩌다 한국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지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일단,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집어 치우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저자가 책에 서술한 개인담 하나만 인용해 보겠다.

일자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시절, 경제 규모가 급속히 확대될 때는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늘어나는 일자리 수가 매년 사회로 진출하는 신규 인력에 비해 훨씬 많았죠. 모든 대기업들이 신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어요. 어지간한 대학에 입학하면 1학년 때부터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학교로 찾아와 입사 계약을 권합니다. 온갖 선물을 주고 공장도 견학시켜줍니다. 파티도 열어주죠. 저도 어느 기업에서 보내온 버스를 타고 학과 동기들과 함께 놀러 가서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 하고 선물 보따리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남은 학교생활 동안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조건은 3년에서 5년 동안 그 회사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것뿐이었죠. 요즘 현실에 비하면 어디 머나먼 다른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진짜? 참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1990년대 중반, 그러니까 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고꾸라지기 전까지는 사실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이 땅의 청소년들은 대학에 어떻게 가야할지만 걱정하면 됐다. 일단 대학에만 가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다는 ‘계산’이 서는 사회였다.

그런데 지금의 20대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나요.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좋았던 그 시절은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거예요. 그건 아주 가난한 국가의 경제 규모가 팽창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예외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이제 세계적인 규모로 확대된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에서 그런 꿈 같은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시절을 겪은 제 또래 사람들이 지금의 젊은 계층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젊은 세대에게 미안함을 느낄 겨를도 없다. 40대, 50대, 60대는 한국이 천국인가? ‘평생직장’이라는 신화는 사라졌고, 궤도에서 이탈한 수백만 세대가 자영업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서로를 갉아먹는 경쟁을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계층은 노인이다. 자기가 그랬듯이 공들여 자식들 키워 놓으면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질 줄 알았지만, 지금 자식들은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기에도 벅차다. 아프니까 청춘? 아프니까 노년!이란다.


어쩌다 한국은 이렇게 됐을까. 저자는 ‘노동’, ‘역사’, ‘정치’, ‘언론’, ‘종교’, ‘교육’, ‘국방’ 등 다방면에 걸쳐 원인을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을 모두 요약할 필요는 없고, 필자 나름대로 두 가지 키워드로 나눠보면 ‘모순’과 ‘독점’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우리 사회는 모순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쌓아만 가고 있는 중이다. 지방 향리의 수탈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일제를 끌어들인 친일파 관료의 정책적 선택에 의해 진압되고 만다. 동학을 일으킨 농민들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수렁에 빠져들었지만, 친일파들은 권력과 부를 거의 무한대로 누린다. 해방이 되면서 이 모순을 해결할 기회가 생겼지만, 해방 후 혼란한 정국과 남북 간의 전쟁으로 인해 친일파들은 그대로 권력을 유지했다. 반대자들은 ‘빨갱이’로 몰아 몰살 시키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4.19 혁명을 통해 부패한 이승만 정권을 몰아냈지만 5.16 쿠데타로 인해 모순 해소 기회는 다시 사라졌다. 일본과의 관계 청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 속에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과거사를 바로 잡기 위한 작업을 했으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유야무야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 바꾸려 하면서 모순에 따른 갈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독점 역시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성장은 ‘재벌’과 ‘영남’ 중심으로 이뤄졌다. 성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지만 미국의 막대한 원조는 몇몇 재벌과 권력가들이 독점하다시피 했고, 개발은 경부선 축으로만 이뤄졌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룬 뒤에는 성과를 골고루 나눠가져야 하는데, 부의 집중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모순과 독점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점점 원수지간처럼 으르렁 거리게 됐다는 것이다. 도무지 ‘사회적 합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의사 소통이 안 되는 사회다.
이에, 저자는 독자에게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라”고 권유한다.

제너럴리스트란 아주 얇고 넓게 아는 사람을 뜻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고, 내 권리를 찾고 지키기 위해서는 한 분야만 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상을 두루 살피고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참견을 할 수 있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보면 ‘깨어있는 시민’과 비슷한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빨간책방’에서 진행한 8회의 강연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사회비평에 관한 책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강연을 옮겨 놓은 책이라 어떤 대목에서는 깊이가 얕고 독자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건 단점이다. 다소 논쟁적인 부분도 있지만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한 입문서로는 읽어볼만 하다. 그리고 도대체 ‘어쩌다 한국은’이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이라면 이 책을 통해 나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