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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들의 장례식은 어떻게 치러졌을까?

  • 입력 2015.11.27 16:17
  • 수정 2015.11.30 08:29
  • 기자명 임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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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2015년 11월 22일, 반독재 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역대 대통령들의 장례식은 2014년 ‘국가장법’이 시행되기 이전까지 국민장, 국장으로 구분돼 치러져 왔는데 그 기준이 모호해 항상 논란이 돼 왔다. 그러다 보니 어떤 대통령은 나라에서 장례비를 지원하는 국장, 국민장을 거절하고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무튼, 정부 지원금 수준으로 보자면 ‘국장>국민장>사회장>가족장’ 순인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이에 비례한 건 아니었다. 역대 대통령들의 장례식은 어떤 방식으로 치러졌을까? 또 장례식 풍경은 어땠을까?


가족장
가족 및 친족 중심으로 거행되는 장례 의식

사회장
국가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저명 인사가 서거했을 때 국가에서 장례 비용의 일부를 보조해 치르는 장례 의식

국민장
국가원수나 국가에 현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서거했을 때 국가에서 장례 비용의 일부를 지원해 치르는 장례 의식

국장
국가원수나 국가에 현저한 공헌을 한 사람이 서거했을 때 국가에서 장례 비용의 전부를 지원해 치르는 장례 의식

국가장
2014년 11월 ‘국가장법’ 개정을 통해 국장과 국민장을 통합한 것으로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긴 사람이 서거했을 때 국가에서 장례 비용의 전부를 지원해 치르는 장례 의식




이승만 대한민국 제1·2·3대 대통령 - 가족장
1965년 7월 19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하와이에서 사망했다. 초대 대통령인 만큼 국민장이 아닌 국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국민장은커녕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당시 정권을 휘어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승만 국장에 강력히 반대하며 유족들에게 국민장을 제안했는데 유족들은 이에, ‘국민장을 하느니 차라리 가족장을 하겠다 이놈아!’며 극렬히 반발했다. 그때 박정희가 ‘ㅇㅇ 그럼 그러든가’ 해 버려서 가족장으로 치러진 거다. 근데 사실 말이 가족장이지 수십 만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장례식에 참여해 그림(?)은 꽤나 잘 나왔다.



하와이에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해



두 소녀가 이승만 전 대통령 유해에 헌화를 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 든 국민들



이승만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을 따르는 국민들.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서울 남대문에 모여든 국민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지켜 보기 위해 서울정동교회 앞에 모인 국민들





윤보선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 - 가족장
역임 1년만에 5.16쿠데타로 하야한 비운의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장례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충남 아산에 조촐히 마련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



매장지로 운구 중이다.



국립묘지에 묻히는 걸 마다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충남 아산의 선영에 안장되었다.





최규하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 국민장
존재감 없기로는 윤보선 전 대통령과 쌍벽을 이루는 대통령이다. 마찬가지로 재임 기간이 상당히 짧았기 때문인데, 고작 10개월이 전부였다.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치러졌는데 참석한 국민은 2,000여 명에 불과해 비교적 조촐하게 치러졌다. 퇴임 이후 상당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검소, 절약이 몸에 벤 대통령이었다.


경복궁 앞뜰에서 거행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



최규하 전 대통령 운구 행렬과 이를 호위하는 경찰 병력들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박정희 대한민국 제5·
6·7·8·9대 대통령 - 국장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히 갈리는 대통령이다. 장례식은 대한민국 최초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그만큼 서거 당시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상당했다. 41개국 조문사절 및 각계인사 등 3천여명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국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나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당시 현장 사진만 보아도 그 슬픔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이날 전국 초중고등학교가 휴교를 하기도 했다.


청와대를 나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뒤따르는 국민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국민들. 운구 행렬에만 약 200여만명이 뒤따랐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는 박근혜 대통령.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 국장
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게 관례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을 고려해 고인에 대한 최고 예우 차원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국장인 셈이다. 2000년 12월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만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인사인 터라 장례식에만 정관계 주요 인사 및 주한 외교 사절 유족 등 약 2만 4천여명이 참석했다.


서울 시청광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
75만여명의 국민들이 전국 184개 분향소에 들러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현충원으로 향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



김대중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을 보기 위해 모여든 국민들





노무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 국민장
당초 유족들은 가족장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전 국민적인 추모 열기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집회 중 경찰이 ‘불법 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이를 제지해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애국 보수로 알려진 국민행동본부와 고엽제전우회에서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을 강탈해 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후에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이 당당히 언론에 나와 ‘쓰레기를 청소한 것뿐’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500여만명에 이르렀는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수였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영결식이 열릴 경복궁으로 향하고 있다.



경복궁 앞뜰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행렬을 지켜 보기 위해 모여든 수백만의 국민들



2009년 6월 24일,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에 의해 분향소가 기습철거됐다.



경찰이 직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 측은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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