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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

  • 입력 2015.11.27 09:54
  • 기자명 비더슈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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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11 27,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장에 서명했다.
알프레드 노벨은
1833 10 21,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은 일단은 건축 기술자였지만, 직업보다는 발명에 열중했던 탓에 그의 가정은 상당히 빈궁했다고 한다. 하지만 뭐 노벨이 18살이 되던 해에는 가족이 모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고 아버지가 공장을 세운 다음부터는 상당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 (Alfred Bernhard Nobel, 1833.10.21 ~ 1896.12.10)


이 영향으로 노벨도
1851년부터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기계공학과 화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53년에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크림 전쟁이 터졌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패배하는 바람의 그의 아버지의 공장도 파산하고 말았다. 학비를 지원받지 못한 그는 더 이상의 학업은 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파산 이후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갔고, 노벨과 노벨의 형 두 명은 함께 러시아에 남았다. 노벨은 이때부터 다이너마이트 연구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폭탄은 상당히 불안정해서 실제 사용에 들어가기 전에 폭발하는 사고가 상당히 많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던 것에 착안해 연구에 들어간 것이다.
후에 다시 노벨은 스톡홀름에 돌아왔고, 그 때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공동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는 10여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단지 시간만이 걸린 것이 아니라, 연구의 과정에서 벌어진 폭발 때문에 동생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다.
그는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화학 물질을 연구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폭탄인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다이너마이트는 1867년에 특허를 얻었다. 이제까지의 사고를 최소화한 다이너마이트는 희대의 히트작이었고, 그가 특허를 낸 다이너마이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가면서 그는 상당한 부를 쌓게 되었다. 아니, ‘상당한이라고 말하기는 부족했다. 이 발명으로 그의 가문은 유럽 최대의 부호 가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노벨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사실 노벨이 안전한 폭탄을 발명한 것은 광산의 개발이나 어려운 공사 등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위험한 공정에서 사용하기 안전한 폭탄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다이너마이트는 이런 목적보다는 전쟁에서 대량 살상용 무기로 사용되었다.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이 사람을 죽이는 데 이용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했다. 노벨의 평화에 대한 갈구는 대단히 커서, 자기 여비서가 평화 운동에 참여할 때는 상당히 큰 돈을 지원해주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은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사망하면서 발생했다. 프랑스의 한 언론사는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다는 소식을 잘못 듣고, 본인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는 오보를 냈다. 말하자면 노벨은 자신의 부고 기사를 미리 본 셈이다. 이 기사는 노벨을죽음의 상인이라고 칭하며 비판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던 노벨은 이를 계기로 무언가 일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노벨은 1895 11 27, 자신의 유언장을 만들고 그곳에 서명했다. 이 유언장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94%에 달하는 3200만 크로나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해 두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는노벨상이라는 상을 만들어, 각계에서 사회에 기여한 사람에게 상과 함께 상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노벨은 얼마 지나지 않은 1896 12 10일에 숨졌다. 그의 유산은 유언에 따라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로 기부되었고, 이 재산에서 나오는 이익금으로 해마다 노벨상을 선정해 수상하게 되었다. 1901년부터 스웨덴에서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의 4개 분야의 노벨상 시상이 시작되었다.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시상했다. 1968년부터는 경제학상이 추가되어, 현재는 모두 6개의 분야에서 노벨상이 시상되고 있다.


▲ 노벨 상 메달


지금까지도 매년 노벨상 수상 소식에는 각국이 들썩인다
. 어느 나라에서는 노벨상을 몇 개 수여받았는지를 두고 경쟁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노벨상의 권위는 상당한 수준으로 인정을 받아서, 이제는 어떤 규범이 된 것 같은 정도다.
노벨의 평화를 위한 다짐이 인정받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래도 아직 사람에서부터 시작하는 희망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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