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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코드 선재> 폐관, 설 자리 잃은 독립영화

  • 입력 2015.11.26 10:52
  • 기자명 성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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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경복궁을 비롯한 각종 궁궐들과 전각이 지척에 있어 예로부터 많은 왕족들과 사대부들이 살았던 동네이고 현재는 지역이 한옥마을 지구로 지정되며 여러 볼거리와 관광객들로 가득한 지역이 되었다. 물론 신촌이나 홍대, 이태원이 그렇듯 사람들이 늘어나며 생기는 부작용도 북촌 지역에도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임대료가 부쩍 올라 버티지 못하는 가게가 속출하며 그 가게들이 떠난 자리엔 다른 지역에서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숍만 들어선다.
그렇게 북촌이 점차 다른 동네와 비슷한 공간으로 바뀌는 와중에서도 계속 북촌에 남아 동네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공간들이 몇 곳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보다 대중에게 친숙할 정독도서관, 오래 전부터 북촌에 터를 박고 활동하던 각종 화랑들, 북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며 정착한 인간문화재의 공방들. 그리고 북촌 지역의 유일한 영화관이자 독립영화 전용관이었던 씨네코드 선재가 바로 그러한 공간이었다.
씨네코드 선재는 분명 영화를 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은 아니었다. 애초에 극장이 입주한 아트선재센터의 소극장 자체가 처음부터 영화 상영을 목표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보기엔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좌석은 마치 학교 시청각실 보다도 더 딱딱했고, 바로 앞줄에 사람이 앉으면 스크린이 가려서 보이지가 않았다. 스크린 역시 무척이나 작고 멀리 있어 조금이라도 작은 자막이 나오면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한 개장 초기에는 영사기의 상태 또한 좋지 않아 영화의 명암이 뭉개지거나 디지털 노이즈가 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씨네코드 선재는 분명 의미가 큰 공간이다. 2000년대 초중반 먼저 아트선재센터의 소극장을 활용했던 서울아트시네마가 계약 등의 문제로 장소를 옮긴 뒤 한동안 비어 있었던 소극장을 다시 독립, 예술영화로 물들였던 공간이며 대형 멀티플렉스는 물론 CGV 아트하우스 등 독립영화관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멀티플렉스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운 극장에서도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자주 상영하던 곳이 씨네코드 선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촌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씨네코드 선재가 가지던 의의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씨네코드 선재는 이제 며칠 후면 우리 곁을 떠나고 만다. 지난 10 23, 씨네코드 선재를 운영하는 독립 · 예술영화 전문 수입배급사영화사 진진 11 30일을 마지막으로 씨네코드 선재의 운영을 종료한다는 공지를 올렸기 때문이다. 영화사 진진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운영 중단 사유는건물주와의 임대차 계약 종료였다. 씨네코드 선재가 사용하고 있는 소극장의 주인인 아트선재센터 측과 건물 전체 리모델링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협상이 결렬되며 영화사 진진은 이 공간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씨네코드 선재를 운영하는 영화사 진진이 지난 10 23일 게재한 씨네코드 선재의 운영중단에 대한 공지


이후
<경향신문>, <연합뉴스>, <씨네21> 등의 보도를 통해 씨네코드 선재의 운영 상황이 무척이나 열악했음이 드러났다. 매달 월세로 1500만원을 건물주인 아트선재센터에 납부해야 했고, 최근까지 누적된 적자만 9억 원이었다고 한다. 그제야 씨네코드 선재의 열악한 시설 문제가 이해가 가고 말았다. 누적 관객 일만 명도 모으기 어려운 한국 독립 · 예술영화 상황 속에서 씨네코드 선재는 좌석은커녕 쉽게 영사기나 스크린을 교체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 사정도 모르고서 씨네코드 선재를 갈 때마다 시설에 대해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었던 것이 내심 미안했다.


표면적인 시장 확대 뒤에 가리워진 독립영화판의 열악함
어떤 분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의아한 느낌을 품을지도 모른다. 언론에서는 독립영화가 놀라운 흥행을 했다는 소식이 근래 자주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말은 일단 사실이긴 하다. 작년 말에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종전까지 한국 독립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가지고 있던 <워낭소리> 296만 관객을 갱신한 480만 관객을 달성했다. 그 보다 더 이전에 개봉했던 <비긴 어게인>은 관객을 342만명이 모아 해외 다양성 영화 흥행 기록을 갱신했고, 이후 올해 개봉했던 독립영화인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한여름의 판타지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각각 24, 4 3, 3 5, 78천 관객이 관람하며 흥행을 했었다.
문제는 이 기록들이 무척이나 단편적이고 한정적인 기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경우 분명 독립영화이지만 배급되는 방식은 상업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들은 각각 개봉 첫 날 186개관, 353개관, 65개관에서 상영되었다. 대다수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가 20개 상영관을 채우는 것도 버겁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출발지점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물론 이 세 영화의 배급사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는 CJ CGV의 독립-예술영화 전문 브랜드인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했다는 사실도 인식해야만 한다.
다른 독립영화 흥행작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김성근 감독의 고양 원더스 시절을 다뤄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파울볼> <설국열차> 등을 제작했던 오퍼스픽쳐스가 투자, 배급한 작품이었다. 최종적으로 3 1천명의 관객을 모았지만, 역시 해당 소식을 다루는 기사에서는 첫 날 204개관에서 개봉했다는 사실은 지적받지 않았다. 홍상수 감독의 최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역시홍상수의 작품이라는 네임 밸류가 있었지만, 동시에 신생 배급사 중에선 가장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고 있는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가 배급에 관여했다는 사실은 부각되지 않는다. 물론 작품 자체의 힘을 마냥 배제할 수 있지만, 이 작품들이 더 많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힘의 배경에는 배급사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독립영화 최다 관객을 기록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분명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CGV 아트하우스라는 대형 자본을 통해 광범위하게 배급되었다는 사실은 크게 언급되지 않았다.


대형 자본이 관여되지 않는 독립영화 중에서 소위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어느 정도 흥행했다고 기준으로 삼는
누적 관객 1만명을 돌파한 작품은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 민병훈 감독의 <사랑이 이긴다>,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정도 밖에는 남지 않는다. 분명 독립영화를 보는 사람이 늘어나기는 늘어났지만 그 늘어난 시장의 몫 대부분은 이전부터 계속 독립영화를 만들고 유통했던 영화사가 아니라 사실상 CGV NEW와 같은 곳이 가져가고 마는 셈이다. 특히 CGV는 앞서 언급했듯 독립영화의 유통, 배급, 투자 뿐만 아니라 독립영화 상영관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CGV가 한국 독립영화판에 지니고 있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강대하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정책적인 후퇴가 가뜩이나 대형 영화사가 시장을 점차 독식하며 생기는 한국 독립영화를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2014 9월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사업 심사에서 지방에 위치한 5개 독립영화관(대구 동성아트홀, 대전아트시네마, 거제아트시네마, 안동중앙시네마, 부산 아트씨어터 씨앤씨)을 탈락시켰다. 영진위가 든 탈락 사유는 해당 극장들의 시설이 너무나도 낙후되었고, 꾸준히 지원을 했지만 시설이나 장비 개선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작 그간 영진위는 시설 개선에 대한 지원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적반하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답변이었다.
지원사업 탈락의 여파는 너무나도 컸다. 탈락된 5개의 극장 중 대구 동성아트홀과 거제아트시네마가 곧 문을 닫았다. 다행히 대구 동성아트홀의 경우 이전부터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대구 지역의 유명 병원인 광개토병원이 극장을 인수하면서 다시 문을 열게 되었지만, 거제아트시네마의 경우 재개관이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동성아트홀과 같이 기적적인 사건이 있지 않고선 사실상 거제아트시네마가 재개관될 가능성은 0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2의 씨네코드 선재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독립영화계의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 자신들만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올해 초부터 문제가 된 예술영화전용관 운영 지원사업과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사업 개편안이 바로 그 문제의 정책이다. 1월에 발표된 개편안에 따르면 각자 진행되던 두 개의 지원사업을 하나로 합쳐 영진위가 선정한 26편의 영화를 위탁업체를 통해 전국 35개관(예술영화관 20개관, 지역 멀티플렉스 15개관)에 영진위가 규정한대로 작품을 상영할 때 지원금을 지원한다는 이 계획은 발표될 당시부터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의 직접 지원하던 방식이 잘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위탁업체를 불러 오는 것도 이상하며, 영진위가 작품 상영 일시를 규정하는 것은 독립영화관의 프로그래밍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진위는 그 후 5개월 동안 별다른 의견 반영도 없이 지난 6, 선정작을 26편에서 25편으로 줄이는 등의 세세한 수치만 바꾸고 그대로 정책을 강행했다. 단지 독립영화 개봉 지원 정책을 흡수 합병하는 대신 계속 유지한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이후에도 계속 비판과 항의가 계속 되고 있지만 영진위는 꾸준히 자신들의 계획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위탁업체로 독립영화와 큰 연관관계가 없던 한국영화배급협회를 선정했고, 독립영화관과 독립영화 배급-유통사들이 집단으로 정책 참여 보이콧을 선언했음에도 영진위 측에서 일방적으로 작품과 극장을 선정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의 독립영화 지원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처럼 막무가내로 진행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사진은 지난 6 16일 영화단체 대표들이 해운대에 위치한 영화진흥위원회에 항의 방문을 한 모습.

(사진출처 = 씨네21)


분명 정부의 지원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독립영화계 내부에서 나오긴 했었다
. 단순히 작품 몇 편, 극장 몇 개를 골라 돈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국에 깔려 있는 멀티플렉스에 독립영화 상영 쿼터를 정하거나 시설 개선이 시급한 영화관에는 특별히 더 많은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실제로도 이러한 정책 개악이 이뤄지기 이전 영진위는 독립영화계와 함께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설립을 논의하며 독립영화 상영 극장 확대, 독립영화 배급사와의 공동 마케팅, 지역 미디어센터와의 네트워크 구축을 논의했었다. 하지만 2013년 이후 논의는 중단되었고, 결국 지원 제도는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앞으로 독립영화관이 걸을 길을 암시하듯, 2009년부터 북촌을 지키고 있던 씨네코드 선재가 결국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물론 시도 자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고, 2014년 말에는 대구에서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와 대구민예총, 그리고 대구 지역의 독립영화 공동체미디어핀다가 힘을 합쳐 독립영화관오오극장을 만들었고 창원에서는 비영리 문화단체 ACC프로젝트가 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해당 단체에서 운영하던 소극장 ‘SO극장을 개조한시네아트 리좀이라는 이름의 독립영화관이 곧 개관을 앞두고 있다. 또한 올해 6월에는 각각 낙원상가, 미로스페이스에 거처를 두고 있던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가 종로3가 서울극장에 자리를 틀며 시설 개선은 물론, 멀티플렉스에 밀려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는 서울극장과 협업 체제를 구상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독립영화가 겪었던 여정에서도 드러나듯 독립영화계만의 힘으로는 독립영화의 자립이 쉽지 않은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게다가 CGV 아트하우스를 위시한 대형 영화사들이 독립영화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상황 속에서 정부의 전체적인 독립영화 정책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독립영화의 자립은커녕, CGV 아트하우스가 아닌 다른 독립영화관을 찾는 것은 어려워지는 미래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미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움직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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