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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왕국이 된 한국 게임 시장

  • 입력 2015.11.25 17:03
  • 기자명 Nair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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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씨아~! 한때 이벤트로 진행됐던 롤 초토화 봇 모드.



표절 시비가 붙은 한국 게임들

1. 건바운드(소프트닉스, 넥슨) VS 포트리스(CCR)


건바운드(좌), 포트리스(우).


CCR에서 포트리스를 개발한 강 모 씨가 소프트닉스로 옮겨 자신의 노하우를 이용해 건바운드라는 신작을 개발했고 넥슨에서 퍼블리시를 해 문제가 된 사건. 2002년, CCR은 넥슨에 저작권 위반을 내세워 서비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에서 이를 기각했다.


2. 비엔비(넥슨) VS 봄버맨(허드슨)


비엔비(좌), 봄버맨(우).


2003년, 허드슨에서 넥슨 비엔비를 상대로 표절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는데 당시 넥슨은 매우 적은 금액의 합의금으로 이를 무마한 바 있다. 그런데 계속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넥슨이 오히려 허드슨에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권 등 부존재확인 소송(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달라는 뜻)을 제기해 승소했다.


3. 카트라이더(넥슨) VS 마리오카트(닌텐도)


카트라이더(좌), 마리오카트(우).


소송이 진행됐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어느 쪽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4. 신야구(네오플) VS 실황야구(코나미)


신야구(좌), 실황야구(우).


코나미가 캐릭터의 유사성 등을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5. EZ2DJ(게임세상, 어뮤즈월드) VS 비트매니아(코나미)


EZ2DJ(좌), 비트매니아(우).


일단 코나미가 한국과 일본 특허청에 등록해 놓은 특허가 하나 있는데, ‘음악연출 게임기, 음악연출 게임용 연출조작 지시시스템 및 게임용 프로그램이 기록된 컴퓨터 판독 가능한 기억매체’라는 거다. EZ2DJ와의 표절 소송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특허다. 법원은 코나미가 신청한 표절 소송에서 EZ2DJ가 이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판결, EZ2DJ에 117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할 것과 게임 폐기 및 생산 중단을 명령했다.


6. 펌프잇업(선도엔터테인먼트, 안다미로) VS 댄스댄스레볼루션(코나미)


펌프잇업(좌), 댄스댄스레볼루션(우).


코나미가 의장 모방 및 의장권 침해 이유로 청구소송을 낸 사건인데, 법원에서 발판 등 게임기의 유사성이 인정된다며 코나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니까, 전부 표절이 아닌 거다
EZ2DJ의 경우는 ‘특허 침해’이며, 이건 표절과는 다른 개념이다. 코나미의 또 다른 소송인 펌프잇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의장권 침해지 게임 표절은 아니었다. 실제로 1~4의 경우 법원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카트라이더의 경우도 승소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별도로 합의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암튼 이 내용들을 정리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PC 게임보다 모바일 게임 분야가 훨씬 심하지 않을까? 대충 기억나는 것들만 꼽아봐도 게임의 룰을 카피하는 것에서부터 게임의 룩앤필(look’n feel)을 카피하는 것까지, 훨씬 많아 보인다.




게임기획자들은 왜 게임을 카피하는 것일까?

흔한 사례
흔히 게임 디자이너(기획자)들이 게임 아이디어를 고민한다며 고전 게임들을 뒤지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는 옛 게임들을 해보고 ‘이걸 발전시켜서 이런 식의 게임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심한 경우는 룰을 그대로 가져다 옮기고 아트만 새로 ‘깔쌈하게’ 입혀서 기획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좀 더 심한 사례
한 MMORPG의 팀장급 게임 디자이너한테 들은 이야기다. 게임을 설계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WOW를 켜 놓고 그대로 베꼈다고 한다. 심지어 실무자들이 개발 중 상세 질문을 하면 “WOW에 있는 그대로”라고 대답하기까지 했다는 거다. 그런데 그 게임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는 건 반전.


게임 디자인은 이제 더 이상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재창조’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하는게 맞다. 그래서 나는 게임 디자인이라는 일을 항상 요리에 비유하고는 한다. 널려 있는 다양한 게임 요소들이 요리 재료라면, 게임 디자인은 그 재료들을 잘 버무려서 새로운 맛을 만드는 작업 정도랄까. 예를 들면 내가 평소 좋아하는 김치에 스팸을 넣어보면 어떨까, 뭐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난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그러면서 각 게임들이 지닌 특장점들을 기록으로 남겨놓고는 한다. 소중한 자료인데, 앞서 든 비유에 빗대 말하자면 아주 신선한 재료라 할 수 있다. 잘 만든 게임의 기능들을 가져와서 (물론 완전 망한 게임이라도 흥미롭거나 괜찮은 요소들은 있다) 다른 재료들과 섞어보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전국무사전> 같은 찬바라 액션 CCG 같은 게임이나 <용자타이쿤> 같은 용자물 패러디 게임들을 만들기도 했고 <2World>라는 스마트폰 GPS를 활용한 캐주얼 RPG 게임으로 창업을 하기도 했더랬다. 단, 나는 단언컨대 표절 수준의 카피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만들면 이것보단 낫겠다’는 자의식이 강한 인간인지라, 남이 만든 걸 그냥 대놓고 베끼지를 못한다. 갈아 엎으면 엎었지.



소니에서 제작한 <모두의 스트레스 팍>(우)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휘말린 <다함께 차차차>(좌)



지난 2013년 불거진 ‘차차차 표절 논란’에서, 난 여전히 ‘표절은 아니다. 다만, 양심 버리고 카피한 건 맞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 당시 이게 왜 표절이 아닌지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왜들 카피 못해 안달이 났을까

솔직히 나도 정말 짜증이 난다. 왜들 그렇게 카피를 해대는 걸까. 먼저, 이걸 이해하려면 게임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 게임 시장은 IMF 이후로 급격히 성장했는데 안타깝게도 각 회사의 경영자들이 모두 ‘재밌는 게임을 만들겠다’거나 ‘게임 만드는 데 내 인생을 걸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일단 돈 되는 걸 만들고 나서 창작이든 뭐든 하자’, ‘회사가 유지는 돼야 뭘 만들든지’하는 분들이셨고, 그중엔 ‘창작이 뭐가 중요해, 카피해서 돈 쭉 빨아먹고 업계 뜰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장님들도 계셨다.
결국 시장에는 선의를 가진 회사와 악의(이걸 악의라고 표현하기엔 적확하지 않긴 하지만)를 가진 회사가 경쟁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선의를 가진 회사들 못지않게 악의를 가진 회사들이 낸 게임들도 대박을 치고 돈을 잘 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유명한 모바일 게임을 카피한 게임이 한국 시장에서 대박을 내고, 그 게임들이 상을 받고, 사람들이 ‘되게 재밌다, 넌 이런 거 못 만드냐’며 내게 들이밀 때 “야, 이건 일본 게임 카피한 거야.”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재밌다는데. 그리고 그 회사들이 그 돈으로 점점 성장해서는 유명해지기도 했는데.
손노리(<화이트데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나 불법복제가 판치는 시장에서 차마 버텨내지 못한 비운의 국내 게임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자존심을 지키며 십 년을 넘게 사업을 했지만 매달 직원들 월급날이 돌아올 때마다 피가 마르는 심정, 내가 직접 경영자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해한다. 비유하면 쪽팔리지만 나도 빚쟁이한테 매달 그렇게 시달려 보기도 했고, 뭐 여전히 매달 카드값을 보면서 어떻게 막아야 되나 막막하기도 한 그 심정의 백배, 천배쯤 되겠다고 생각한다. 직원들한테도 미안하지만 그 직원 가족들은 또 어떨까 책임감을 생각하면 만배로 될까.



<화이트데이> 플레이 장면



한국 시장에서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는 평가는 ‘대박이 났다’와 동치한다. 망한 게임에는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 얼마나 독창적이냐는 평가를 받을 리뷰 한 조각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여전히 손가락 빨며 원룸에서 사업하는 내 친구는 앱스토어 리뷰 몇 줄에 자위하면서 계속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유명 게임을 카피하는 건 아주 쉬운 선택이다. 이미 시장에서 성공했고 게임의 재미도 검증이 되어 있는 데다 그림만 ‘깔쌈’하면 대중에게 쉽게 먹힌다. 특히 앱스토어처럼 치열한 전쟁터에서 스크린샷만 가지고 다운로드를 하는 대다수의 고객들에게 게임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스크린샷만 일단 먹어주면 일정 다운로드는 보장되기 때문이다.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쉬운 선택은 ‘유행하는 장르’겠고, 이보다는 좀 더 덜하지만 또 쉬운 선택은 ‘유명 IP나 캐릭터를 계약하는 것’이다. 모바일 게임에 연예인 고스톱이 유행한 이유가 그래서였다.
그런데 이제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창업 붐까지 일어났으니 경쟁이 얼마나 더 심해졌겠나. 하물며 국내 시장에서만 싸우던 시절에도 그렇게 치열했는데, 이젠 전세계와 싸워야 하는 상황아닌가. 게다가 2014년, 카카오톡이 게임 퍼블리시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비주얼드를 카피한 게임이 하루에만 매출 십억을 찍는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게임 제작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졌을 게다.




‘눈 딱 감고 한 번만’하는 심정, 나는 이해한다
게임 개발은(여기저기서 ‘대박만 나면 엄청나게 터진다’는 소문이 있지만, 실제로 부자됐다는 개발자들은 십여 명 남짓이다) 배고픈 직업이다. 월급쟁이는 어디나 다 똑같다. ‘이 게임 보고 똑같이 만들라’는 윗선의 지시가 내려왔을 때, 자존심이 아무리 강하대도 거부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강경하게 개긴다는 것도 고작 ‘회사를 나간다’는 선택뿐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어렵다. 집에서 울고 있는 애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선택은 더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게임 카피 문제는 이런 거다. 좁게 보면 개발자의 양심 문제지만, 그보다 앞서 사업자의 선택 문제이고, 또 그보다 앞에 시장 환경 자체의 문제인 거다. 쉽게 만든 게임이 그렇게 성공하는 걸 보고, 또 기업 사기로 횡령으로 또 하청기업 착취나 소상인 말려 죽이면서 어떻게든 돈만 벌었다 하면 인정받는 상황을 보고, 말 그대로 밥을 굶으면서까지 자존심을 부여잡고 개발자로 살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야이 개XX들아! 너희들마저 그러면 어쩌냐!! 하고 욕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해는 해야 한다.
어쨌든 한국 게임 업계에서 성공의 잣대가 ‘대박난 게임’이고 ‘잘 팔린 게임’이라는 인식이 바뀌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꾸준히 카피 게임들이 승승장구할 거다. 특히 카카오톡 게임에서는 더 그럴 거다. 그렇게 만들어도 매출 수십 억을 찍을 거고, 성공한 사업가 혹은 개발자라며 언론에서 인터뷰 못해 안달이 날 것이며, 그 돈으로 좋은 집 좋은 차 사서 행복하게 살 게 확실하니까.
그런데, 한 마디 하자면.. 그러지 마라. 너희는 그러고 업계를 떠나면 되는 건지 몰라도, 난 죽기 전까지는 게임 만들고 살아야 된다. 넌 그 열매 따먹고 째겠지만, 난 너희가 만든 똥 밭에서 계속 굴러야 된다 말이다.
제발,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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