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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 '복면시위'를 금지한 이유

  • 입력 2015.11.25 10:32
  • 수정 2015.11.25 10:33
  • 기자명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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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시위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IS도 그렇게 (복면시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우리나라의 시위대를 IS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는 '인권 선진국으로 꼽히는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는 복면 시위를 금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카드뉴스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주장을 들으면 우리나라 시위문화가 외국에 비해 대단히 과격하며 위험천만하다고 느껴집니다. 우리보다 인권이 성숙한 국가에서도 그렇다고 하니 한국도 빨리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해외 선진국들의 '복면시위 금지'를 논하기 전에 짚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 나라에서는 어떤 배경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게 된 걸까요?


네오나치의 폭동에 대비한 독일
독일 집회법(Versammlungsrecht)은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가하거나 집회 장소로 향하는 경우 형사처벌하고, 신원 확인을 막는 물품을 소지하는 경우 질서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오스트리아 집회법은 복면을 하고 집회·시위에 참석하면 행정청이 구금이나 금전적 제재 처분을 부과하고, 참석자가 무장을 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부과합니다. 스위스에서는 베른을(수도) 포함한 6개의 칸톤에서 복면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몇 해전 독일에 갔을 때 노동절 시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노동절 전날에 주요 집회 시위 장소에는 경찰 장갑차와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복면시위를 금지한 이유는 극우 나치주의자나 훌리건 등의 과격 시위대의 난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위 문화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하고 훨씬 폭력적입니다.
2010년 '신나치' 대원 수천 명은 연합군의 2차대전 폭격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 드레스덴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나치주의에 반대하는 시민 1만여 명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그들의 진입을 막았습니다. 독일 경찰들은 엄청난 유혈 사태가 벌어질까 초긴장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나치 지지자들의 집회는 대부분 방화와 폭동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독일경찰이 우려하는 것은 과격한 집회나 시위 자체가 아닙니다. 극우 나치 세력의 폭동이나 유럽 내 반 이슬람주의자들의 보복 테러 등입니다. 한국의 집회나 시위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극우 테러와 폭동이 벌어지는 유럽국가이기 때문에 집회 시 복면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KKK 때문에 복면을 금지한 미국
미국도 연방과 주정부에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법에는 '헌법에 보장된 타인의 권리나 특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하는 집회와 시위에서 복면을 착용하는 금지'하는 법안이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단순히 집회나 시위에 참가할 때 복면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아닙니다.

미국을 공포로 몰아 넣은 KKK단의 활동

미국에서 이런 법안이 만들어진 이유는 백인우월주의 극우 단체 'KKK' 때문이었습니다. KKK는 하얀 고깔 두건을 쓰고 얼굴을 가린 채 흑인을 학살하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종에게 테러를 자행하던 악명 높은 극우단체입니다. 남북전쟁 직후 등장한 KKK는 미국 백인사회의 옹호 속에서 백주대낮에 흑인, 동양인들을 공격하고, 인권 활동가들을 폭행했습니다.
미국의 복면시위 금지법은 KKK와 같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범'을 검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처럼 어정쩡한 이유(대통령의 심기)로 복면시위를 금지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죠.


위헌 판결을 받은 미국의 복면금지법
미국의 여러 주에 복면착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방법원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1978년 미국 법원은 이란 영사관 앞에서 복면을 쓰고 시위를 벌이다 캘리포니아 형법 제650a에 의해 기소된 시민 판결에서 '공공장소에서 복면을 쓰고 집회·시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규의 문헌이 모호하므로 위헌이고, 복면을 착용하지 않는 집회·시위에 비하여 복면을 착용한 집회·시위를 차별하므로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주장한 '복면시위 금지법'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

이런 것들도 금지되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복면금지 규정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x자를 표시한 마스크를 착용한 침묵시위도 복면시위에 해당할까요? 정치인의 가면을 쓰고 그들을 비난하는 시위를 쓰는 것도 복면시위라고 봐야 할까요? 동물보호를 외치는 시민들이 코끼리 분장을 하고 시위를 해도 복면시위일까요?
동성애자나 성매매 여성 등 신분이 밝혀질 경우 위협에 노출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시위를 한다고 합시다. 그들이 복면을 착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박근혜 대통령과 조선일보는 '복면착용 집회·시위 = 불법폭력 집회·시위’라는 매우 조악하고 단순한 논리로 복면시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법체계는 이미 집회나 시위에서 폭력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처벌할 지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럴 것'이라는 추정만으로 집회 참여자들의 행동을 제한하겠다는 건 대단히 반민주적인 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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