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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을 '인민'으로 듣고 싶었던 조선일보의 헛발질을 보며

  • 입력 2015.11.25 09:48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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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자 조선일보 사설.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2015. 11. 20.


조선일보는 '빈민'을 '인민'으로 잘못들었음을 인정하며 위 사설에 대한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2015. 11. 21.



지난 11·14 민중총궐기 대회 이후, 완강한 시민사회 진영의 저항에 놀란 수구세력들이 반격에 나선 가운데 <조선일보>가 노린 한 수(!)가 헛발질이라는 게 밝혀졌단다. 이는 같은 날 베풀어진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이 연설 중 ‘인민’이란 표현을 썼다면서 기사와 사설로 이념공세를 편 결과에서다.




'빈민'을 '인민'으로 들은 <조선일보>의 헛발질
'인민'이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는 전교조의 강력한 항의에 결국 <조선일보>는 꼬리를 내렸다. 확인 결과 ‘빈민’을 ‘인민’으로 잘못 알아들었다고 사과하며 인터넷판에서 해당 기사와 사설을 삭제하는 등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이는 뭔가 꼬투리를 잡아 이들에게 이념공세를 펴야겠다는 의욕의 과잉이 초래한 일이다.
전교조 변성호 위원장의 연설에서 해당 부분은 ‘노동자·민중·빈민·시민·청년 학도들이 함께하고 있다’이다. 상식적으로 민중이 나왔는데 다시 동어반복이라 할 수 있는 인민이 들어갈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조급증이 결국 헛발질로 이어지고 만 것이다.
이 헛발질에 <동아일보>와 <문화일보>가 숟가락을 걸쳐 놓은 것도 코미디다. 그러나 정작 <조선일보>의 기사를 인용해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는 침묵하고 있고, 전교조는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명백한 오보와 왜곡 보도에 대한 사과는 나 몰라라 하는 이들 보수 매체들의 배짱은 얼마나 갈까.
요즘은 가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에 헛갈릴 때가 많다. 분명 달력은 2015년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데, 매체들이 전하는 소식들은 수십 년 세월 저편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아는데, 정작 사람들은 무심하게 그런 상황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여론이 이미 반대로 기울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여당은 거짓말 등 온갖 꼼수를 동원하여 이를 확정 고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국민들에 대해서는 ‘비국민’이라면서 적대시하거나 색깔론에 기대며 이 반대 의견의 진정성을 폄훼하고 있다. 11·14 집회에서 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은 이러한 막장의 결과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언어가 시대나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게 한편으로는 당대의 세계 파악 방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더욱이 분단과 전쟁을 겪으면서 내면화된 이데올로기는 특정 언어들을 금기로 묶어 버리게 되어 우리는 적지 않은 언어들을 잃어버렸다.
분단의 질곡을 거쳐 오면서 냉전 이데올로기, 반공주의에 가위눌린 결과 마침내 우리는 자유로운 사유조차 검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반도 북쪽에 자리 잡은 인민공화국 때문에 ‘인민’을 잃었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동무로 말미암아 ‘동무’도 잃어야 했다.


인민공화국을 다스리는 노동당 덕분에 우리는 노동도 잃었다. 대신에 온 세계가 쓰는 노동절도 이 땅에선 근로자의 날이고, 노동재해도 산업재해라는 말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노동조합법이나 노동3권이 근로조합법이나 근로3권으로 불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일 지경이다.
그런데 이번엔 인민이다. <조선>을 비롯한 수구 언론들은 이 낱말이 “국어사전에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 국민은 거의 쓰지 않는 단어”고, “우리는 국민이라고 쓰고 북한에서 인민이라고 하는 것이 굳어진 지 오래”라면서 이 낱말에 색깔을 칠한 것이다.




인민과 국민 사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인민의 뜻을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대체로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를 이른다.’고 명시하고 개화기의 <독립신문>과 홍성원 대하소설 <육이오>의 용례를 소개하고 있다.



국가를 전제로 한 '국민'에 비해 '인민'은 피지배층 일반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인민(people)은 국가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인간, 피지배층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국가를 전제로 한 ‘국민’보다는 중립적인 낱말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선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로 유명한 “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의 ‘people’은 ‘인민’이 아닌 ‘국민’으로 번역된다. 유진오가 제헌 헌법을 기초하면서 인민을 포기하고 국민을 사용한 것은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인민은 잃어버린 금기의 언어가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이 조항은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1항에 이어 주권자와 권력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토 박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 국민들의 주권은 얼마나 보장받고 있을까. 그들로부터 나와 행사되는 권력이 그들의 의사와 얼마나 부합할까.
잃어버린 낱말들, 그 금기의 언어를 되짚어 떠올리면서 다시 역사를 생각한다. 민주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직 대통령의 부음에 즈음하여 사람들은 새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는 모양이다. 그이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부르짖었지만, 새벽은 언제였나, 여전히 세상은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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