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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와 ‘전병욱 사건’은 나를 어떻게 바꾸었나

  • 입력 2015.11.17 17:20
  • 수정 2015.11.17 18:03
  • 기자명 권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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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이후,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며 무지했던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하면 할수록, 또 선교단체 선배들이 추천하는 신앙서적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가운데 스멀스멀 커지는 의문이 있었다. 그들이 가르쳤던 구원 그 이후의 ‘가장 모범적인 삶’이란 게 너무 매력이 없고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듭난 삶은 단순한 삶?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이었던 선교단체에서 가르치는 신앙관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거듭난 삶은 아주 단순한 한 가지 ‘사명’으로 귀결된다. ‘영혼구원’의 영광스런 사명을 위해 우리 삶의 모든 요소를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단체에서는 소위 영혼구원과 전도를 위해 직접 기여하지 않는 모든 삶의 요소와 주제들은 ‘쓸데없는 사치’라는 뉘앙스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오직 ‘사명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만이 가장 가치 있고 영광스런 삶이라고 믿었다.
그런 가르침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삶의 의미’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인류의 저 유서 깊은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주었으며, 인생의 우선순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알려주었으니까. 그래서 꽤 많은 신앙 선배와 동기들은 수련회 때마다 ‘방탕했던 탕자의 삶’을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고,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고, 이제 날마다 선교하는 삶만을 살겠다고 벅찬 감동으로 신앙고백을 했다.
그런데 난 그때부터 (삐딱했던 성격 탓인지) 그런 그들의 감동적이고 눈물 어린 고백을 감명 깊게 듣다가도, ‘그러니까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오직 전도와 선교만을 위한 것이라는 삶의 목표가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거둘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의 목표를 위해 삶의 나머지 다양한 가능성과 요소들을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생은 너무 재미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들었다. 나아가 그런 가치관으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도리어 이 세상 각처에서 기독교인들이 응당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직무유기를 하며 ‘세상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대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커져갔다.
그러다가 마음이 맞는 미대생들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이나 예술관과 관련된 책들을 같이 읽다가 나의 이런 큰 의문에 대답이 될 만한, 아니 적어도 같은 문제의식을 고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네덜란드의 미술사학자 ‘한스 로크마커’였다.

기독교의 주류는, 모세 오경과 성경 전체를 통해 선포된 언약사상을 무시하는, 일종의 경건주의에 빠졌다. 구약 성경은 종종 무시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의미는 단지 경건 생활로 국한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경건주의적 활동에만 주력함에 따라 철학, 과학, 예술, 경제, 정치 등 인간 삶의 대부분의 영역들은 너무나도 쉽게 세상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 한스 로크마커, 《예술과 기독교》(IVP) 중에서

반가웠다. 가슴 깊이 공감이 갔다. 한스 로크마커의 책들은 소위 ‘종교적인 주제나 소재의 제약’으로부터 내 직업관이나 예술관에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감히 ‘영혼구원’의 중차대한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여기냐고 비난을 들을까봐 내가 속한 선교단체에서는 이런 의문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힘들었다. 나중에 그 단체에서 나오고 교회로 옮겼어도 마찬가지였다. 구원받은 신앙인의 삶에 대한 올바른 ‘기준’은 선교단체나 교회나 큰 차이가 없었다. 선교단체가 훨씬 투철한 헌신을 요구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시대의 불의에는 관심 없는 교회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10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착하고 순진했던 (세상 물정은 그만큼 모르던) 교회 청년의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2009년 1월 통영에 선교를 갔다가 TV로 접하게 된 남일당 ‘용산참사’가 큰 계기였다. 마침 내가 사무실로 쓰던 곳과 지척에 있어서 용산참사 이후에 유족들의 투쟁과 기도 모임, 시위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남일당 사고 후 유족들과 그들을 돕는 시민단체,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 천주교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남일당 건물 1층을 추모미사 드리는 처소와 농성장 겸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난 매일 그 앞을 지나다녔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매일 그 앞을 지나며 피해자 유족들이 그 거리에서 노숙하고, 추모미사를 드리며, 집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점차 그분들의 슬픔 가득한 표정과 외롭고 고단한 싸움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점차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남일당’ 사태에 대한 글과 기사들을 상세히 찾아보았다. 남일당 사태가 벌어진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아보면서 경찰이 필요 이상의 과도하고 무리한 진압을 시도했다는 점(이 부분은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두 개의 문>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다), 개발을 이유로 그분들이 너무도 억울하게 삶의 거처를 빼앗겼다는 점, 그분들이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생존권이었다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분노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남일당 앞 거리에서 드려지던 추모 미사 곁을 지나가는데 내 앞을 지나가던 아저씨들의 대화가 귀에 꽂혔다.

천주교에서는 저렇게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항상 앞장서는데, 개신교 새끼들은 코빼기 한번 안 비춘단 말이야.

맞아, 그 새끼들은 교회 예배당 큰 거 짓는 거 빼곤 관심이 없잖아.

나도 모르게 그 아저씨들과 다른 방향의 골목으로 돌아갔다. 마치 그분들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과 참담함이 밀려왔다. ‘왜 국가 공권력은 부자와 강자의 편에만 서는가?’라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다고 자랑하는 대형교회인 우리 교회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처럼 왜 이들을 돕거나 관심 갖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솟아났다.
교회에서 만나는 친한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용산 남일당에 관해 물어보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내가 그랬듯이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대략 짐작만 할 뿐. 그때 나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교회가 어쩌면 이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에는 아예 관심도 없으면서 오직 우리만을 위한 성을 쌓아놓고 신앙생활을 하는 게 아닌가, 진지한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밖 고통당하는 이웃들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부조리와 범죄로 고통당하는 성도들조차 무관심과 무시로 일관하는 교회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교회 내 부조리·범죄에도 무관심한 교회

여자 후배가 있었다. 내가 대학청년부 간사를 할 때 팀원이었고, 팀이 바뀐 후에도 계속 친하게 지내던 후배였다. 예술대학을 나온 친구였고, 당시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그의 설교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을 정도로 광팬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오빠, 어떻게 하면 담임목사님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당시 나는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를 존경했지만, 인격적으로는 그리 존경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친하게 지내면 도리어 그의 인간적 약점과 허물 때문에 도리어 시험에 들까봐, 가급적 유명한 목사님들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넌지시 말렸다. 그래도 후배는 포기하지 않고 선교를 다녀온 뒤 결국 전병욱 목사와 꽤 친해져서 가깝게 지냈다.


그 뒤로는 팀도 달라져서 자주 연락할 기회가 없었는데, 1년쯤 지나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자기는 교회를 떠날 생각인데 마지막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식사나 같이 하자고. 교회를 정말 사랑하고 교회 친구들도 무척 좋아했던 아이라 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에 많이 놀랐지만, 식사 자리에 나온 그 친구는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봐도 대답을 피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냥 개인 사정이 있어서 집 근처 교회로 옮긴다는 이야기만 했다. 마침 그 친구가 담임목사와 꽤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서 물었다.

너 혹시 담임목사님이랑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니?

심각한 의미로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저 감정적으로 마음 상할 일이 있었나 하는 차원에서 물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때, 그 친구의 반응이 너무 뜻밖이었다.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서 우리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운 후에야 감정을 추스르고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내가 겪은 일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야 말할 수 있어요.

그러고는 다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나는 이 아이가 겪었을 일이 내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 무엇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의 불길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진실을 알게 되어도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일은 그렇게 잊혔다.
3년이 지난 후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가 드러났다.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니 너무 큰 충격이었다.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으며, 성범죄의 수위도 매우 높았다. 그리고 상습적이었다. 피해자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 후배의 눈물과 탄식이 기억났다. 그 장면은 악몽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연락이 끊어진 그 후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가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했던 말은 전 목사 사건이 공개된 후 내 가슴을 계속 비수처럼 헤집어 놓았다. ‘오빠… 내가 겪은 일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가서야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건이 드러난 후 교회에서 ‘한국교회에 덕이 안 된다’며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흐지부지 덮으려는 시간이 길어지자, 어이없게도 가해자인 전병욱 목사는 많은 교인들에게 위로와 힘내라는 격려를 받았다. 반면, 정작 피해자인 여성들은 이단에서 파송된 무리라거나, 교회를 흔들기 위해 담임목사를 유혹하고 음해하는 꽃뱀이었다며 오해와 매도 속에 이중 삼중의 상처를 받았다.
많은 교인들이 진실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담임목사’의 편을 들었다. 나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담임목사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를 내 후배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나는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촉구하고 사건의 실체를 알리는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불거진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병욱 목사에 대한 교단측의 징계나 면직은커녕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도리어 최근에는 평양노회에서 지금까지 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를 ‘노회 재판’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핑계로 노회에 가입시켜주기까지 했다. 평양노회와 예장합동 교단의 무책임과 방만함, 상습적인 성범죄자를 보위하는 그들의 권위주의와 악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견고하다.


‘그들만의 천국’을 추구하는 한국교회

몇 년 동안 전병욱 목사 사건에 깊이 관여해 면직운동을 하면서, 마치 <매트릭스>라는 영화 속 주인공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충격적인 현실을 깨우치듯 한국교회의 처참한 민낯을 보게 되었다. (물론 한국교회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볼 수 있는’ 놀라운 세계이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목도한 교회의 민낯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얼마나 교회 밖 현실에 무관심하며 오직 ‘교회 일’만 잘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포장하며 그런 신앙만을 올바른 신앙이라 가르쳐 왔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교회 밖 세상과는 담을 쌓고 ‘교회 안의 천국’만을 만들려 하면 할수록 한국교회는 자정능력을 잃고 내부의 부패와 비리로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교회 밖 세상에 대한 복음의 영향력도 없고, 교회 안도 천국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교회는 어느새 자기 소득과 교육수준의 범위, 주거와 직장생활의 범위, 자기 신앙과 교회생활의 범위 안에 안락하게 머물며 내 삶의 ‘경계 너머’에서 아픔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종교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구원 이후의 삶’을 단순하고 획일적인 유형으로 범주화했다. 오직 교회 일만 열심히 하고 교인 수 늘려나가는 것만이 구원 이후의 삶 전부라 가르치며, 교회가 몸담은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도리어 경건한 신앙인의 삶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우리에게 주신 복음(Good News)은 ‘모든 계급과 빈부와 경계와 인종과 나라’를 뛰어넘는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경계를 넘어서는’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귀족과 하인, 자유인과 노예들이 경계를 넘어 ‘복음의 기쁨과 능력’ 가운데 하나님 나라 잔치를 벌였던 초대교회의 놀라운 관용과 사랑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비슷한 소득 수준, 비슷한 지적 능력, 공통의 이해관계로 ‘패거리’처럼 뭉쳐 다니며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이 애국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설교가 넘쳐난다. 모든 사회적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없애자는 ‘차별금지법’을 온 교인을 동원해서 반대하며 ‘동성애자들 따위’의 인권은 보호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옹졸하고 배타적인 갈등의 종교가 되었다. ‘그들만의 천국’에는 온갖 범죄와 비리가 들끓는데도 교회의 ‘건덕’(健德)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그런 비리와 죄악들을 덮어버린 채 썩어가고 있다. 마치 예수님이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외쳤던 말씀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는 것 같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3:27, 새번역)


그런 ‘세상적인’ 일

열심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 소위 ‘신실한 사람’들의 독특한 언어습관 중 하나가 ‘세상 일’이라는 표현이다. 흔히 경건하지 않거나 세속적이거나 교회에서 배운 가치관으로 볼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취미활동이든 업무활동이든 음주·가무를 뜻하는 것이든)을 지칭해서 무시하거나 폄하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런 ‘세상 일’ 또는 그런 ‘세상적인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죄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내가 대학생 때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는 대놓고 우리가 다니는 직장은 ‘부업’일 뿐이며, 우리의 본업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가는 전도자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하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교회 확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식의 구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며, 한국교회의 신앙을 좀먹는 가치관인지 알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거듭난 기독교인들의 삶을 오직 ‘자기 교회의 부흥’이라는 명분에만 헌신시키거나 활용해왔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도록 훈련하고 양육하는 데는 철저히 실패했다. 많은 신학자들이 개신교인들의 영지주의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그런 왜곡된 신앙이 현실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지적해왔다.

이러한 이원론은, 불의가 눈에 뻔히 눈에 보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성가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양성된다. 그러한 관점은, 진짜로 중요한 사업인 복음에만 신경 쓰자고 말한다. 여기에서 복음이란 미래 세계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전담반을 구성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그 위치에 가게 만들고 거기에 머물게 만드는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IVP) 중에서

삶의 ‘맥락’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소명

기독교인은 ‘교회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가? 기독교인은 각자가 삶으로 살아내야 할 공간적, 시대적, 사회적 배경이라는 ‘맥락’이 있다. 내가 왜 하필 이 시대에, 이 나라에, 이 사회에 살게 되었는지 그런 삶의 맥락을 깊이 고려해 볼 때 비로소 내가 받은 ‘생명의 복음’은 구체적인 ‘소명의 방향’을 비춘다. 우리가 소금이 되어 뿌려져야 할 음식이 무엇인지, 우리가 빛이 되어 비춰야 할 어둠이 어디인지는 바로 이러한 삶의 맥락에서 발견된다.
몇 년 동안 싸워온 전병욱 목사 성범죄 사건에 끊임없이 좌절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이 나라의 정치현실을 계속해서 목격하면서, 생존 자체가 버거운 짐이 되어버린 이 땅 위에 사는 수많은 친구와 후배의 삶을 보면서 최근 몇 달간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꿈꾸는 ‘한국 탈출’만이 답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복음으로 생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묵상하고 글을 쓰면서 내가 부름받은 복음의 소명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결국, 우린 어딘가로 부름받아 살아내야 할 삶의 소명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소명은 내가 속한 시대와 사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생명’은 경계가 없다. 생명력이 충만한 나무들은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물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생명력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올바른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면, 이 나라가 11년째 OECD 자살률 1위를 하는 죽음의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의 자살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은 교회가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렸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의 터전은 ‘교회’만이 아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불편한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살아내야 할 삶의 터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싸워야 할 터전이 교회만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소명인지 알기에 많은 사람이 ‘신앙의 영역’을 오직 ‘교회 일’로만 국한하려 한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핑계를 대기도 좋으니까.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진지하게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따르고자 한다면, 교회 봉사나 교회 헌신이 우리의 소명을 축소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짜 징글징글하고 불편하고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이 땅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삶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따지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내가 할 일을 찾아 잘 감당할 생각이다. 딱히 할 일도 없지 않은가? 다시는 ‘교회 놀이’하는 것으로 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고 핑계 댈 수도 없다. 훗날 기회가 있으면 그분께 물어볼 생각이다.

제가 왜 이렇게 힘들고 지랄 맞은 땅에 살아야 했나요?

그럼 아마 그분은 전쟁이나 기근, 상상할 수도 없는 참담한 삶의 터전에서 살아내는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며 말씀하시겠지.

지금 뭐라고 했니?

원문 : 복음과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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