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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는 여자일베가 아니다

  • 입력 2015.11.10 10:13
  • 기자명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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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나는 여성문제는 인권문제의 가장 큰 부분집합이라고 본다. 즉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인권문제 중에서 가장 큰 소외집단을 다루고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만큼 여성문제는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남성으로 태어났고, 이는 여성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어떤 한계선을 내게 그어주고 있는 중이다. 그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으며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이 글은 그런 거대한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최근 꽤 널리 알려지고 있는 메갈리아 관련된 문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한 부분, 그 한 부분으로 인해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한 가지만을 얘기하고자 한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꽤 의미는 있을 것 같다.




혐오발언은 언제나 나쁜가
혐오발언은 폭력의 일종이다. 물리력을 동반한 폭력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서 꽤나 복잡한 구조를 가진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혐오발언은 옳지 않은 것, 좋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그 폭력의 일종인 혐오발언은 ‘언제나 나쁜가’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넓게 퍼진 개념은 ‘미러링’인 걸로 보인다. 즉, 일베 등의 여성혐오 발언을 모사해서 주체와 객체를 바꾼 뒤 그대로 돌려주는 형식으로 여성혐오 발언의 실태와 그 문제점을 널리 알려 대중의 각성을 촉구한다는 의미이다.
이 점을 놓고 용납되어야 하며 권장되어야 하는 일이라는 주장과, 일베의 여성혐오와 메갈리아의 남성혐오가 무엇이 다르냐며 양쪽 모두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이다. 쉽게 떠오르는 얘기는 목적이 선하면 수단의 정당성은 없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고민하던 내 머리 속에는 엉뚱하게도 팔구십년대 학생 운동의 현장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흔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좋은데 왜 공부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들고 화염병을 던지냐는 당시 기성세대의 근엄한 비판들이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주변의 어르신(이라고 쓰고 꼰대라 읽는다)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폭력은 나쁜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라는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이라는 나쁜 수단을 쓰면 안 된다, 라는 지극히 논리적이며 당연해 보이는 충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충고에 동의하지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뿐 아니라 당시 모든 민주화 세력이 그랬다. 만약 모든 민주화 세력이 그 충고를 받아들여 얌전하게 시위(얌전한 시위라니.. 어불성설이다.)를 했다면 87년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87년 6.10 항쟁이 불타오르고 비록 거짓된 일이었지만 6.29 선언이 나오는 상황에 이르자 우리 주변에는 학생 운동권이 사용하는 폭력에 대한 비판은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던 기억도 난다. 다들 잘했다고 칭찬하기 바빴을 뿐이다.




모두 다 핑계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는 이렇다.
군부독재가 우리 사회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펼치던 독재정치는 그 자체가 거대한 폭력에 다름 아닌 상황이었다. 그 거대한 폭력에 맞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폭력시위라고 무섭게 이름붙여지긴 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작은, 좁쌀만한 폭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그 작은 폭력으로도 피해자는 속출한다. 본의 아니게 차출(당시 전경은 군인들 중에 차출이었다.)된 전경들의 부상, 주변 상인들의 피해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 작은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 본인이 제일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것도 폭력이고 이것도 폭력이니 폭력을 쓰지 말라는 충고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저 군부독재의 거악에 대해서 암묵적인 동조를 하는 공범들의 자기합리화 아니었겠냐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에 대해, 여성혐오에 남성혐오로 맞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그저 지금처럼 여성차별이 만연한 세상이 그대로 이어지길 바라는 암묵적인 동의에 따르는 공범들의 핑계가 스며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호의적으로 보더라도 전체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느껴지는 말초적인 불편함으로 인한 반응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베의 여성혐오가 군부독재의 폭압처럼 거대한 폭력이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건 의도적인 축소라고 답을 하겠다.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이 과연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에만 타겟을 맞추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상존하고 있다. 많이 좋아지긴 했고, 그게 과연 여성혐오 수준의 차별이냐는 세부적인 반론은 가능하겠지만, 우리 사회가 성평등이 이루어진 사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큰 틀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기울어진 사회의 문제점이 거대하게 물 밑에 숨어있고, 거기에 기반하여 극단적으로 돌출한 것이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인 것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그 뾰족하게 돌출된 끄트머리인 일베의 여성혐오 발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인다. 단지 그 일베의 혐오발언들을 소재로 삼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 발언과 여성 차별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요구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상존하는 여성차별 문제를 군부독재의 폭압이라는 거악에 비교해 보고, 메갈리아의 작은 항거를 학생운동권이 자행하던 작은 폭력으로 치환한다면 비교가 될까?




메갈리아는 여자일베가 아니다
폭력은 나쁘지만 무조건 써서는 안 되는 절대악은 아니다. 결코 폭력을 옹호하거나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필요악으로 행해지는 작은 폭력을 말하는 것뿐이다. 똑같이 혐오발언은 나쁘지만, 거대한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대중의 의식 환기와 각성을 요구하는 수단으로써의 혐오발언은 부정하기 힘든 작은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사용되는 폭력에 대해서도 그 폭력을 행하는 주체들은 책임을 지게 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의 비용으로 보는 것이 맞다.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 대가도 치르지 말고 그 이전에 아예 폭력이나 혐오발언 자체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그런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회적으로 발언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 주장의 진정한 속내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직 우리 사회의 성차별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은 낮다. 페미니즘 진영은 갈 길이 멀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는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슬슬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인종차별 문제나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그 중 가장 심각한 문제인 여성차별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몇걸음 뒤로 물러나 “혐오발언은 좋지 않아” 라면서 어르신(이라고 쓰고 꼰대라고 읽으라니까!) 흉내를 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다른 소수자 약자 문제와 비슷한 수준으로만 그들의 주장을 경청해줘도 될 터인데 말이다.
메갈리아는 여자일베가 아니다. 이건 당연해 보인다.
최소한 그들은 일베보다는 한 발 앞서 있고, 정제되지 않은 본능적 속내를 드러내는 일베의 단순함 정도는 넘어선 집단이라는 점이다. 그 밖에도 몰카 문제나 맥심 잡지의 올바르지 않은 표지 문제를 해결해 내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들의 태도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그 무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여자일베의 남성혐오 발언이라고 치부하고, 금지되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실 것인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살다보면 만나게 되는 불편함 중에서는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는 것도 있고, 어떤 불편함은 문명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떠들고 소란을 피워 해결을 해야 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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