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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질 대로 망가진 한국 게임 시장을 바라보며

  • 입력 2015.11.05 18:22
  • 기자명 Nair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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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메이드의 <미르의 전설2>



어렸을 적 게임하던 때를 떠올려 보면, 나는 게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재미있는 게임 혹은 재미없는 게임. 그러던 것이 ‘게임이 노동이 되는 시대’를 거치며 이제 게임으로 돈을 벌 수도 있다는 인식이 생기게 됐고, 이제는 ‘가성비가 좋은 게임’이라는 조금은 이상한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건 사실 게임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가성비가 좋은 게임은 대체로 이렇게 정의된다.

투입하는 돈/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에 반해 그 이상으로 재미가 있거나 투자한 돈이 회수되는 게임.


알다시피 ‘상대적으로’라는 말엔 비교우위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수백, 수천 개의 게임 중 돈이 적게 들고 (무료가 가장 우선순위가 높겠지) 오랫동안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을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최근 3~4년 동안 게임 업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이 바로 ‘Freemium’이다. (Freemium : 부분유료화,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데까지는 무료인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캐쉬를 충전할 수밖에 없게 하는 기법)



안드로이드 구글PLAY 게임 카테고리 <최신 대박 히트 게임!> 목록. 모두 무료 게임이다.



사실 소비자가 지갑을 여는 과정은 단순하다. 일단 저 물건을 사고 싶다는 구매욕구가 발생하고, 여기에 돈을 지불할 능력이 따르면서 ‘소비자가 생각하는 물건의 가치 > 가격’이 되면 구매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물론 가격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지불 능력이 충분하다고 가정할 때는 가격보다 가치가 더 비중이 큰 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돈을 지불할 능력을 가진 소비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 선택이 두 가지로 좁혀지고 있다.


1) 구매력이 약한 소비자에게 구매 자극을 촉진시켜서 구매하게 하는 것

2) 구매력이 약한 소비자는 버리고 큰손(업계 용어로 ‘고래’)들만 상대하는 것

(도저히 소비자의 지갑을 못 열겠다 싶은 경우엔 아예 플레이어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찌됐든 이제 게임은 공짜인 것이 되었는데, 이게 게임회사가 서로 제 살 깎아먹기 싸움을 하다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적어도 전적으로 게임회사의 잘못만은 아니다. 장기적인 불황의 여파로 이제 저소득+고실업률이 일상인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소비자의 구매력이 현저히 줄어 들었고 게임에 돈 쓸 여유 자체가 없어져버린 거다. 잘 나가다가 불황이 닥쳤을 때라면 게임 업계가 이렇게까지 휘청거리진 않았겠지만, 어제도 불황이고 오늘도 불황이고 모레도 불황인지라 게임할 돈이 나도 너도 부모님도 없는 상태니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는 거 아닐까 싶다.
결국 게임을 구매하는 소비층은 더 이상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론 지갑을 열지 않게 됐다. 주변을 돌아보면 ‘게임에 절대로 돈을 쓰지 않는다’는 계층이나 무과금을 일종의 자존심 혹은 게임회사와의 싸움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게임에 돈을 쓰면 지는 것이 됐다. 그래서 결국 한국 게임들은 ‘고래 위주의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고래 위주 게임의 대표주자 리니지1. '돈 벌 수 있는 게임'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 구조 자체가 필요에 의한 구매에 기대서는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게 만들어야 산다. 어느 지점에 어떻게 사게 만들 것인지를 정교하게 연구하고, 플레이어의 심리를 조종하고 압박을 가해서 구매 저항에 승리하는 수밖에 없다. (고전 산업들에서는 이를 ‘마케팅’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할 지점이 발생한다.
많은 게임들이 ‘소비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고 많은 돈을 벌고 있는데, 이게 과연 옳은가? 이런 분위기가 게임 회사(자본)와 종사자(노동자)의 이해가 합치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가? 의사에는 반하지만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는 상태인가? 흔히들 이야기하는 윤리적 소비나 윤리적 경영에 빗대어서, ‘윤리적 게임 개발’이라는 것이 한국에선 단연코 불가능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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