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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손님은 거부한다' 스노우폭스의 착한 공정서비스

  • 입력 2015.11.04 13:43
  • 기자명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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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폭스' 매장 풍경. 이 회사는 '공정서비스 안내'라는 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스노우폭스



요즘 ‘스노우폭스’(SNOW FOX)란 도시락 업체가 화제다. 이 업체가 한국 매장에 내건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란 글 덕분이다. 심심찮게 터지는 고객들의 이른바 ‘갑질’이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안내문은 도입부터 자못 파격적이다.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의 '공정서비스'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공정서비스 안내. ⓒ김승호 대표 페이스북



‘고객은 왕’이라는 슬로건은 우리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있었으니 꽤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그건 말 그대로 ‘구호’에 가까웠지 않나 싶다. 그 때의 서비스 산업이란 오늘날과 비기기 어려운 아주 낮은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서비스를 사고파는 당사자들의 지위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이 구호는 무한경쟁의 서비스 전성시대에 들어서면서 비정상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따위에서 고객들의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면에는 이 오래된 구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갑질은 그러나 주인이 직접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매장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비록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고 있어도 주인은 진상고객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그들의 일탈에 단호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갑질의 근원은 기업의 '잇속 챙기기'
진상 고객들의 갑질은 오너와 판매원이 다른 대규모 매장에서 일어난다. 오너는 매장에서 일어나는 고객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제 가게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 판매원들에게 무한한 인내와 친절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아는 진상고객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왕’인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고자 일탈을 자행하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이 갑질의 공통점은 그것이 보도되지 않았다면 묻히고 넘어갈 일상이었다는 점이다. 직원들의 인권과 자존감은 오너가 누려야 할 매출과 이윤을 위하여 늘 희생되어야 했다는 말이다. 몰상식하고 저열한 고객들의 패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갑질이 존재할 수 있었던 자양은 결국 저들 오너들의 ‘이윤 동기’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노우폭스코리아 매장에 게시한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는 당연히 신선한 충격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매장과 대표에 대한 칭송 댓글이 넘치는 이유다. (<기독교방송(CBS)>의 ‘김현정의 뉴스쇼’는 이 업체 김승호 대표를 인터뷰한 바 있다. 2015. 11. 02.)
김승호 대표는 스무 살에 미국으로 이민한 동포다. 그는 흑인 동네에서 장사도 했었고, 식품점을 운영하면서, 하루에 18시간 이상 일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미국에서 매출 2천억 원의 외식업체 대표가 되었고 고국에도 4개의 매장을 냈다. 그는 미국의 경우는 어떠냐는 김현정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사실 외국이라고 이런 진상고객들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미국은, ‘우리는 손님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는 내용의 종이를 써서 붙여놓는 경우가 많아요. 소란을 일으키는 고객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그 사인, 안내문만 가리키면 돼요. 그래도 문제를 계속 일으키면 경찰을 불러서 내쫓아버리죠.”





미국의 '손님을 받지 않을 권리'
인천의 한 백화점 스와로브스키 매장에서 벌어진 이른바 ‘무릎사과’ 건은 미국에서라면 어땠겠냐는 질문에 그는 ‘아마 당장 영업방해로 경찰을 불렀을 거고 (고객은)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그가 자기 매장에 그런 안내문을 써 붙인 건 그런 미국의 사례를 감안해서일 것이다.


“저는 대가와 서비스 혹은 제안은 동등하게 교환되는 입장이라고 생각을 해요. 대가를 지불한다고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댓글도 폭주한 모양이다. 누리꾼들은 이 도시락집의 공정서비스에 대해 댓글로 공감을 표시하였고, 개중에는 울었다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아마 진상고객들의 갑질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던 피해자들이었을까. ‘우리를 지켜주세요’라고 하는 댓글을 읽고 김 대표도 울었다던가.
<한겨레>의 첫 보도를 읽고 나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예의 업체가 어떤 업체인지, 그 대표라는 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안내문의 내용은 옳다. 실제로 그런 업체의 입장이 실제 직원들에게 여과 없이 관철되는지도 알 수 없긴 하지만.
김 대표는 기획된 홍보라느니, 홍보를 위한 마케팅이 아니냐는 등의 미심쩍은 반응들에 대해 정색을 했다. 그는 ‘전 세계의 1,200개 매장 가운데 4개뿐인 한국 매장에 그런 사업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 일로 인해, 한국의 많은 감정노동자나 이런 데서 일하시는 분들이,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해방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껴요.”




그가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사진 속에 드러난 ‘공정서비스 안내’를 다시 읽어보았다. 자기 직원들을 ‘존중을 받아야 할 훌륭한 젊은이들’로 ‘누군가에게는 금쪽같은 자식’으로 여기는 인식이 언제쯤 우리 사회의 상식과 교양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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