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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이렇게 싼데...' 미국이 석유를 내다파는 이유는?

  • 입력 2015.10.28 12:27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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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략 비축유
5,800만 배럴을 팔고 그 돈을 국가예산으로 편성한다고 합니다.
뭐든 값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게 좋다는 건 당연한 상식입니다. 최근 국제유가는 내림세를 멈출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전략 비축유를 팔겠다니, 미국 정부는 왜 손해 보는 장사를 하려는 걸까요? 게다가 전략 비축유라고 명명한 기름을 전혀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않은 곳에 쓰는 행동 아닌가요? 당신이 정부의 예산 정책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기술 발전과 함께 원유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 그 덕분에 유가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개발한 유전에서 원유 생산을 중단하는 건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손해입니다. 기름값이 떨어지는데도 예정된 생산량 만큼의 원유는 당분간 계속 공급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싼 값에 기름을 파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이에 민간 기업이나 정유 회사들은 너도나도 원유를 사놓고 비축량을 늘렸습니다. 문제는 기름을 저장해둘 비축 시설이 부족해 보관비 또한 결과적으로 만만치 않다는 데 있습니다. 새로 비축 시설을 짓는 건 대단히 신중하게 내려야 할 결정입니다.
미국 정부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전략 비축유를 저장해두는 시설에 아직 여유가 있어서 1,800만 배럴 정도 여유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 이렇게 유가가 쌀 때 곳간을 꽉 채울 만큼 기름을 사뒀다가 유가가 다시 오르면 그때 팔아서 이윤을 챙기는 게 현명한 일 아닌가요?
, 여기서 정부가 이윤을 낸다는 게 어떤 뜻일지 잠깐 생각해봅시다. 일반 기업이 미래에 보장된 이윤을 마다하고 당장 현금을 확보하려고 재고를 팔아 치운다면 분명 손가락질 받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장부상의 흑자를 내는 일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일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정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 합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어차피 이론적으로 조금만 조작을 가하면 언제든 흑자를 내고 이윤을 올릴 수 있습니다
. 미국 정부는 달러 발행국이기 때문이죠. (옮긴이: 물론 통화정책은 행정부가 아닌 중앙은행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 -의 몫이지만 여기서는 포괄적으로 쓰였습니다) 만약 미국 정부가 파산한다면 달러화의 가치도 휴지조각이 되지만, 미국이 파산할 확률은 사실상 0에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세상에서 가장 싼 값에 달러를 빌려 이를 융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통화정책을 통해 흑자, 적자를 넘나들 수 있는 미국 정부이기에 당장의 이윤보다 더 중요한 건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일입니다.
비축유를 팔아 그 돈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건 일단 단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 특히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현재 미국 경제에서 정부가 지출을 늘려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가 의회 예산처의 계산을 토대로 내놓은 예측도 마찬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비축유를 팔아 시장에 내놓으면, 국제 유가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더 떨어질 겁니다. 낮은 유가는 전반적으로 미국 기업과 경제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전략 비축유가 정부의 회계장부에 난 구멍을 메우는 데 쓰이는 건 원래 취지와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전략 비축유는 지난 1970년대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담합해 석유 수출량을 크게 제한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났습니다. 석유 수출국이 담합하면 언제든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미국 정부는 석유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어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비축분을 쌓아둠으로써 취약점을 보완하기로 합니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전략 비축유입니다
. 그런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전략 비축유의전략적 의의는 조금씩 빛이 바랬습니다. 아랍 국가들 사이의 연대가 느슨해졌고, 미국이나 캐나다의 석유 생산량이 늘어났으며, 경제 시스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석유에 대한 의존도도 계속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아랍의 산유국들이 예전처럼 담합한다고 해도 미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아마도 40년 전보다 훨씬 덜할 겁니다.
석유 수출국들의 담합보다 더 큰 충격을 줄지도 모를 위험 요소가 바로 예산 위기입니다. 정부가 기능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일시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실제로 대단히 큽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략 비축유를 급등할지 모르는 유가보다 갑자기 생겨날지 모르는 예산 공백을 메우는 데 쓰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멕시코만에 쌓아둔 비축유 수백, 수천만 배럴은 꽤나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재원이기도 합니다.
원문 :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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