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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오랜만이야!

  • 입력 2017.10.28 13:00
  • 수정 2017.10.28 13:15
  • 기자명 BIG 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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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신해철 씨의 3주기를 맞아 다시 읽어 봅니다.

이 글은 2015년 10월 24일, 신해철 씨의 1주기 추모 특집을 방송한 TV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과 <히든싱어4>를 본 후 썼습니다.



오랜만에 예능을 보다 눈물을 쏙 뺐다. 시험이나 회사 일에 치여 챙겨볼 시간이 없던 요즘, 간만의 웃음거리를 찾아 TV를 킨 것이 화근이었다.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심지어 본방도 아닌 예고편에 울먹이다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감성이 이리 예민해졌나 싶은 찰나, 벌써 1년이 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마왕. 사람들이 외치는 그의 '호 아닌 호'. '닉네임 아닌 닉네임'. 과연 유희적인 부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어떤 사람이 이런 칭호를 받고 기뻐할까. 악마의 왕이라. 그만큼 그의 40여 인생이 강렬하고 뇌리에 남았음에 용인되었을 이름이니라. 아니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악의 힘을 빌어서라도, 이 세상의 허례허식과 각종 부패들에 벗어나는 실타래를 잡기 위한 국민들의 작은 소망의 발현이었을 수도.


신해철. 음악가이자 철학가였던 그가 떠난 지 1년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만했다가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잔상처럼, 다행이 그는 아직 내 머릿속에 있다. 물론 내 기억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지만 말이다.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하늘로 간 뒤, 지상에서의 그의 여백은, 아이들이 그린 그림(아버지를 기리며), 세상 가수들의 추모공연, 그리고 의사와의 법정 싸움이 채웠다. 그래도 역시 그 중심엔 그의 노래가 있었다.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1998. 6. 1.


신해철의 노래 리스트들을 다시 재생 목록에 추가해본다. 솔직히 나는 신해철의 광팬도, 음악적 맹신자도 아니다. 외고 시험 준비하기 급급했던 중3 시절, 새벽 수학문제로 끙끙 앓으며 주파수를 맞추곤 했는데 그때 들리는 음산한 목소리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침착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그의 음성은 경이로울 정도로 귀에 날카롭게 꽂혔고, 오묘하게도 아늑했다. 그렇게 그는 또래들은 모두 잠들 시간, 나의 새벽 2시간을 책임졌다. 노래도 없었고, 수다가 대부분이었지만 어쩌면 그냥 잠 안 오는 수험생의 새벽친구랄까. 외롭고 고된 입시 싸움의 이만한 친구도 없었던 것 같다.

라디오 프로그램 <신해철의 Ghost Station> 중 일부 발췌


아이러니하게도 본격적인 그의 노래를 들은 것은 그가 사망한 후였다. 정확히 2014년 10월~11월. 거의 10년치 노래를 다 들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24시간, 31일 정도를 그의 노래에 묻혀 살았던 것 같다. 우울했다. 침울했고, 깨닫기도 했다. 넥스트라는 록그룹(밴드?)으로 유명해진 줄로만 알았는데, 그대에게라는 원히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장르를 뛰어넘는 그의 음악세계에 혼이 나갔다. 또한 젊은 시절의 솔로로 보여준 미성의 음색은 어찌할 것인가.

신해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1990.


신해철,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1991.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철학가이기 전에 가수였고, 달변가 이기 전에 음악인이었다. 모든 노래에 감성을 넘어선 메시지를 가진 시인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와 음악적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혁명가이기도 하다. 1인의 비트박스들과 아카펠라를 짜깁기하여 만든 노래는 물론, 강렬하고 경쾌해 보이는 노래 속에는 절실함과 애틋함이 녹아 있다. 14년 6월에 발매된 ‘단 하나의 약속‘을 들어본다. 아내를 위한 헌정 곡이라는 이 곡은 그의 유작이다. 빠르고 흥쾌한 멜로디 리듬에 눈물이 맺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MBC <휴먼다큐 사랑>, 신해철 편, 2015.

어느덧 1년 전 이맘때와 마찬가지로 내 귀에는 신해철의 음악들만이 꽂히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 하나인 임청정도 최근 신곡을 냈지만 뒷전이다. 어느새 내 음원 리스트에는 그의 노래들로만 가득하다. 모든 희로애락을 다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간만에 나의 감성을 풍성하게 해주는 그의 노래들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면서 신기하다. 이 사람, 어떻게 알았기에 지쳐있던 나의 현실을 위로해주고 있는지. 노래들로 이 시대의 청춘들을 감싸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지.

JTBC <속사정쌀롱> 1화, 2014. 신해철의 마지막 방송 출연작이다.

바쁜 와중이겠지만, 우리 모두 그의 음악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굳이 음악들을 시간이 안 된다면 이번 신해철 1주기를 맞아 특집 방송을 준비한 KBS <불후의 명곡>과 jtbc <히든싱어4> 재방송이라도 한번 챙겨보자. 눈물만 쏙 빼면 어떻게 하느냐고? 괜찮다. 그래도 적어도 당신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왜 사람들이 ‘마왕’을 잊지 못하는지를, 그의 음악은 그 이유를 교과서처럼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다.


뉴스K <영상리포트 - 민물장어의 꿈>, 2014.



이번에는 울지 않을 것이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게 아님을, 지금 내가 듣는 노래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마왕,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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