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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을 동시에 존경하는 이들에게

  • 입력 2015.10.23 10:13
  • 수정 2015.10.23 13:49
  • 기자명 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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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폭파한 한강철교 ⓒ조선일보



이승만을 존경한다는 이들이 대한민국은
1948 8 15 '건국'됐다고 말하는 건 사기다. 정부 수립 초기 대한민국은 단기 연호를 사용했으나, 이승만은 강력하게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통성 있는 정부임을 강조해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임정 출신의 우위를 지키고 싶었고, 38선 이북에 대한 정통성 우위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 수립을 한 서기 1948년은 '단기 4281'이 아니라 '민국 30'이었다. 본인 스스로 1919 3.1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고, 임시정부 체제를 마무리하고 제대로 된 정부를 수립한 게 민국 30년이었음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승만을 존경할 수 있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한다고 하는 사람은 그냥 사기꾼이다.


ⓒ리얼팩트 TV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이들이 이승만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건 덕질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자라는 증거다
. 시위의 무력진압이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탄압, 부정선거, 반공 강조, 1인 장기집권 및 독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더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박정희는 이승만을 철저히 부정하고 비판했다. 애초에 5.16군사 쿠데타의 기획 자체가 이승만 정권을 군부가 뒤집으려던 기획이었으나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1년 뒤로 미뤄진 것 아니었나. 그러니 이승만을 존경한다면 박정희의 쿠데타를 통한 헌정파괴 및 집권을 비판해야 하는 것이고, 박정희를 존경한다면 소장 박정희를 궐기케 만든 이승만 독재를 비판해야 한다. 각기 수십년씩 시차를 두고 동떨어진 존재들도 아니고, 바로 등을 맞대고 선 두 대통령을 한꺼번에 다 존경할 수는 없다.
'각하'께서 이승만 정권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직접 쓰셔서 발표하신 1962년 명문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보자

지난날 이승만 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만의 수지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부정과 불법의 흉계를 꾸미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국민의 기본 권리가 나라법에 규정되긴 했지만 그것은 한갓 종이 위에 적어놓은 글귀에 지나지 않았을 뿐, 자유당 정부는 그것을 지키고 실현시키기는커녕 도리어 그러한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일쑤였다. 이리하여 정부에 의해서 자유를 짓밟히고 시달려게 된 온 국민은 정부의 억눌림에서부터 다시 자유를 되찾으려는 자유 투쟁의 운동을 벌였고 그것이 이른 바 자유당 정치하의 우리 형편이었다.
남한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12년 동안 기간 산업의 토대가 되는 전력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짓지 못하는 사치스런 소비경제로 말미암아 농촌은 메말라 갔으며, 메마른 농촌의 피와 살을 깎아서 도시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썩고 그릇된 일만이 극심해져 갔다.
자유당 독재 12년에 농촌의 경제는 파탄되고 관기는 문란해졌으며, 부정축재자들은 건전한 국가 경제의 성장은 제쳐 놓고, 그릇되고 썩어빠지기만 했다. 해방 16년에, 남한에서는 이승만 노인의 어두운 독재와 썩어빠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들이 날뛰어 겨레의 장래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이승만 '',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 이승만 '노인'이라 칭하는 저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보라. 혹자는 박정희가 1965년 이승만을 칭송하는 조사를 남긴 걸 인용하며 훗날 존경의 뜻을 밝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사망한 후 유해가 국내 송환될 때 예의상 해준 이야기에 가깝다.
정말 자기가 쓴 글처럼 이승만이 호국신이 되어주길 바랐다면, 국민장을 제안한 게 아니라 구 자유당 인사들이 요구했던 국장을 해줬겠지. 국민장을 하느니 가족장을 하겠다던 유가족들의 고집에 '그럼 그러던가' 했겠는가. 정말 자기가 쓴 추도사처럼 "오매불망하시던 고국 땅에서 임종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고 이역의 쓸쓸한 해빈에서 고독하게 최후를 마치게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면, 귀국 요청을 할 때마다 그렇게 차갑게 거절하지 말았어야지. 안 그런가.
박정희를 존경할 수 있다. 이승만을 존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모두 한다고 하는 사람은 존경의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자들이다. 덕후란 모름지기 내가 팬질하는 대상이 무슨 말을 언제 어떻게 했는지 다 알고 되새김질 하는 존재들 아닌가. 이런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이끈다고 하고 자유경제를 연구한다고 하니,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연일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올인코리아 <박정희와 전두환을 통치자로>

전두환을 존경한다는 이들이 박정희를 함께 존경한다는 건 정신분열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묵인과 비호로 제 세력을 키웠던 하나회는, 10.26 사건 이후 혼란스러운 시국을 수습하고 민주화 절차를 밟으려 했던 정권을 뒤집어 엎고 권좌를 차지했다. 그 때, 신군부가 몰아낸 정권의 수뇌가 누구였는가. 박정희가 직접 임명했던 국무총리 최규하였다. 75 12월 총리 서리부터 시작해서 79 10 26일까지 4년에 달하는 세월을 국무총리로 재직했던, 박정희가 직접 김종필 대신 선택한 신뢰할 수 있는 카드였다.
물론 최규하에 대한 평가가 갈릴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제5공화국이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볼까? 계엄사는 1980 "시대를 대표하는 사회악·정치 악이라 할 수 있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10명을 수사당국에 연행하여 그 동안 집중적인 수사를 전개하여 왔다"고 밝히며 그 명단을 공개했는데, 그 명단 안에 있는 이들은 죄다 제3공화국의 피와 살들이었다. 김종필 공화당 총재, 이후락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종규 전 대통령 경호실장, 김종락 전 한일은행 전무(김종필의 형), 김치열 전 내무장관,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2수석비서관...
5공화국은 박정희의 시대를 부정부패와 비리, 독재의 시대로 규정하길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헌법 개정 과정에선 전문에 적혀 있던 '5.16 혁명정신'을 빼버렸다. 미국 망명 당시 ABC 방송을 통해 한국의 정치범 고문을 폭로한 김대중의 주장에, 민주정의당 대변인을 역임한 초선의원 봉두완은 이렇게 말했다. "무슨 근거로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년 전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저게, 민주정의당이 박정희 시절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야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두환을 존경할 수도 있겠지. 박정희를 존경하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고 하는 건 제정신이 아닌 일이다. 정치적 아비를 전면 부정하고 침을 뱉은 아들인데, 부자를 모두 존경한다고? 그러니까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을 하던 박정희와, 3S를 촉진시켜 프로야구와 <애마부인>의 시대를 연 전두환을 동시에 존경한다고?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모든 대통령에겐 공과 과가 있다. 난 개인적으로 이승만이든 박정희든 전두환이든 헌정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 수반이 아니라 스스로 전제군주가 되고자 했던 이들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과가 공보다 훨씬 크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들 중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이가 있다면 그 또한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셋을 동시에 존경하는 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이렇게 철저하게 서로를 부정함으로써만 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사이,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이 세 가지일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고, '독재'를 했으며, 정권을 획득/유지하기 위해 '헌정을 파괴'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반공을 위해서라면 헌정을 파괴해도 좋다"는 신념을 지지하는 거라면, 이 셋을 동시에 존경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그러나 이 셋을 동시에 존경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말하는 건 진짜 이상한 일인 게, 그건 자유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분들이 이 셋을 동시에 존경하는 건, 독재 옹호를 통해 민주주의자이길 포기하고 특정 사상에 대한 탄압을 옹호함으로써 자유주의의 이념을 부정하는 자멸 행위다.
자유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니 이도 저도 아닌 거 아니냐고? 이름을 잃어버려 시무룩해 하실 분들을 위해 내가 새 이름을 찾아놨다. 역사상 이 분들의 사상과 가장 근접했던 이들, 영혼의 쌍둥이들이 100년 전 붙여 놓으신 이름을 물려 받으면 되지 않은가. 그 선배들의 이름을 따다가 이 분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면 되겠다. 국가의 영도를 지지하고, 위대한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며,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증오를 품고 있어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울 수만 있다면 헌정을 일부 정지하거나 파괴해도 좋다고 믿는 이들, 이러한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의견을 내거나 역사를 가르치려 하는 이들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 1920년에 창당해 1945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정당의 구성원들은 그런 믿음을 공유했더랬다.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라고. 줄임말로 '나치'라 부르고 그들의 이념을 '나치즘'이라고 일컫는다.


과찬이라고
? 에이, 괜히 빼지 말자. 이 모든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자며 찬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국정교과서'의 슬로건은 '올바른 역사교과서'. '올바르다'는 표현, 어디서 본 거냐면.

"역사교육은 국가의 부정을 목표로 하는 좌파들의 영향력을 일소해야 한다. [...] 역사는 '올바르게 해석된'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 나치독일 교육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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