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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목에 건 날, 그는 유령이 되었다

  • 입력 2015.10.02 15:30
  • 기자명 김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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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 세계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승부의 장에 선 선수들이 드러내는 인간의 의지와 용기는 충분히 우리의 가슴을 밝힐 수 있으나, 거기서 한 발만 나서면 세상사의 지저분한 이치가 적용 된다. 심한 경우는 승패를 가늠하는 현장까지도 오염시켜 버리기도 한다. 지난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트 경기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러시아 금메달리스트에게 터뜨린 분통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오랫동안 한국은 주로 ‘스포츠 뒷거래’의 피해자였다. 멜버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복싱 선수 송순천의 경우 3라운드 내내 상대를 압도했지만, 금메달은 상대에게 돌아갔다. 상대가 동독 선수였고 심판진도 상대에 유리한 쪽으로 구성되었던 탓이다. 후문에 의하면 당시 경기를 지켜본 호주 관중들은 편파 판정에 흥분해서 의자를 집어 던졌다고 한다.
귀국 후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가 힘이 없어 금메달을 못 지켜줘 미안하다”며 순금 메달을 줄 정도였다니 당시의 억울함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 국제 스포츠경기 중계에서는 수시로 “아 이럴 수 있습니까?” 하는 아나운서의 거친 비명이 들렸고, 그 뒤로는 늘 “국력이 약해서…” 하는 아버지의 한탄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88년도의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순위 4위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을 냈다. 당연히 홈그라운드의 이점은 있었겠지만, 편파판정으로 구설수에 오른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 하나 또렷하게 씁쓸한 기억은, 복싱 라이트 미들급에서 금메달을 딴 박시헌의 경우였다.


박시헌은 이때 도저히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손가락뼈에 부상을 입고 한 손은 거의 못 쓰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몸으로 이제껏 쟁쟁한 선수들을 제쳐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는데, 결승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로이 존스였다. 필자가 직접 보았던 경기이기에 기억하지만, 이 게임은 분명히 진 경기였다. 물론 심판의 채점 기준이 다를 수야 있지만 그 경기를 두고 박시헌이 이겼다고 단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심판은 박시헌의 손을 들었다.
로이 존스는 입을 벌렸고 관중들은 환호와 탄성의 중간을 헤매는 묘한 소리를 냈다. 박시헌은 어색한 얼굴로 로이 존스를 안아 올렸다. 일부러 어색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해도 더 이상 어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경기를 지켜보던 필자도 “창피하다”는 말을 연발했고, 함께 보던 친구들은 “4위 하려고 별 야료를 부리는구나.”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한국인들조차 이 판정에 대한 항의 전화를 퍼부었고 “메달을 반납하라”는 주문도 했다. 물론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로이 존스였겠지만 승자 박시헌 역시 그 승리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목에 걸고도 자랑할 수 없는 금메달이었다.

모 방송국에서 금메달리스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갔어요. 한 사람씩 호명하면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소감을 밝히는 자리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을 안 부르는 겁니다. 위에서 무슨 지시가 내려 왔던 건지, 단순한 실수였는지 알 수 없어요.

- 2002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시헌의 말

금메달을 달라고 애걸복걸하지도 않았고 돈을 갖다 바친 것도 아닌데, 박시헌의 금메달은 온 국민의 수치가 되어버렸다. 이후 박시헌은 10여년 동안 대인기피증에 시달려야 했고 자살까지 고민했다. 그의 부인은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했다.
1969년 호주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임국찬 선수가 결국 이민을 가고 만 일화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에서 국민에게 수치심이나 아쉬움을 남긴 스포츠 선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비난을 받았다. 박시헌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석연치 않은 패배를 안은 미국은 미국대로 끊임없이 박시헌에게 로이 존스와의 재대결을 제안했다. 동시에 미국은 IOC에 이 문제를 제소하여 판정을 뒤집으려고 했다. 무려 9년이 지난 1997년에야, IOC는 한국측의 매수 공작이 일체 없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금메달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박시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도, 박시헌도 심판을 매수하지 않았다면 그 경기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판정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걸까?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사건의 원인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다는 주장이 그 중 신빙성을 얻고 있다. 심판을 움직인 것은 순위에 눈이 먼 한국이 아니라 당시의 세계 복싱 연맹 사무총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동독 사람이었고, 서울올림픽에서 동독과 미국은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로이 존스가 금메달을 따면 순위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서, 동독인 사무총장이 힘을 써서 심판들의 점수를 박시헌 쪽으로 몰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추측이긴 하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박시헌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진 새우가 되는 셈이다.
자신의 손이 올라간 이후, 웃지도 환호하지도 못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로이 존스를 엉거주춤 안아 올리던 박시헌의 모습이 새삼 눈에 밟힌다.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승리였을 뿐 부당한 승리가 아니었다. 부당한 승리였다 하더라도 그의 책임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을 부끄럽게 했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건 유령이 되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날은 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의 날로 남았다.
그의 비극을 회고하다 보니, 문득 그가 1988년이 아니라 2016년쯤에 열린 올림픽에서 비슷한 경로와 내용으로 금메달을 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988년의 한국인들은 박시헌에게는 잔인했을망정, 의아한 승리에 민망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한다.”는 채찍질에 시달리는 요즘의 한국인들도 그럴 수 있을까? 21세기의 애매한 한국인 금메달리스트는 박시헌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의 사진 한 장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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