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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인종차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입력 2015.10.01 15:42
  • 수정 2015.10.01 15:45
  • 기자명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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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출근길, 떠밀리듯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아침 햇살과 함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향기가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역 옆 커피숍에서 풍겨오는 커피 향 입니다. 서울 시내 웬만한 지하철역 옆에는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출근길에 스타벅스에 들려 4천 원 남짓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즐기는 것은 많은 직장인들의 습관일 겁니다. 그런데 올 초, 미국의 스타벅스에서는 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나오는 스타벅스 직원들의 낯선 인사가 큰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커피를 건내주는 스타벅스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인종차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묻기 시작한 겁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든지 "감사합니다" 류의 인사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당황했습니다. 이것은 라는 이름의 스타벅스 캠페인이었습니다. 이 행사가 시작된 직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캠페인에 관한 논란을 쏟아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지난 3월 15일, 스타벅스의 CEO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미국 전역의 스타벅스 직원들에게 캠페인에 관한 제안을 보냈습니다. 이 제안서에는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스타벅스의 컵에 "Race Together"라는 문구를 손으로 적어 손님들에게 대접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건네는 바리스타들이 손님들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져서 자연스러운 토론을 이끌어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스타벅스에 커피를 사러 방문한 손님들은 직원들로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가벼운 인사부터 진지한 질문까지, 다양한 물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스타벅스는 갑자기 왜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을까요?


최근의 미국은 비무장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탓에, 인종간의 긴장이 그 어느때보다 높은 상태입니다. 특히 작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일어났던, 18세 흑인 소년에 대한 경찰의 총격사망사건에 관한 항의시위는 폭력시위로까지 번져 미국 전역을 긴장시켰습니다. 11월에는 뉴욕시에서 흑인 노숙자가 경찰의 과격 제압으로 인해 질식사하는 사건이 일어나 맨해튼에서 이를 규탄하는 시위기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벌인 경찰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아 흑인 사회의 분노를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스타벅스 CEO가 하워드 슐츠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가 바로 캠페인입니다. 미국 내 스타벅스 매장에 방문하는 하루 수백만 명의 고객들에게 인종차별 문제를 상기시키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 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CEO가 직접 나서서 기업과 직원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CEO Activism을 실행한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스타벅스 고객들이 'Race Together'라는 문구가 쓰여진 컵을 들고 돌아다니고, 이들이 일상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대화를 잠깐씩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겁니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캠페인은 시작된 직후부터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캠페인의 첫 주, 'Race Together'에 관한 보도는 "가장 멍청한 마케팅 캠페인", "스타벅스 최악의 캠페인", "얻을 것도 얻은 것도 없는 스타벅스" 등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Starbucks CEO has a terrible idea to fix race relations"라는 제목으로 캠페인을 비판했고, <이코노미스트>는 "Starbucks and branding: #Fail"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스타벅스의 홈페이지와 주요 임원들의 SNS는 이 캠페인을 비난하는 글들로 인해 차단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스타벅스의 PR담당 임원은 트위터에 빗발치는 멘션을 삭제하다 못해 계정 자체를 삭제해야 했습니다. 결국 캠페인이 시작된지 5일만에 스타벅스는 캠페인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칭찬받아 마땅할 것 같은 스타벅스의 캠페인이 왜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고 있는 걸까요?
캠페인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스타벅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이슈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종차별 이슈와는 아무 상관없는 카페 브랜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가볍게 던지면서 자신들의 기업이미지를 높이고 더 많은 음료를 팔려는 의도가 짙다는 것입니다. 백인 경찰에게 희생된 흑인 소년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비난까지 받는 것을 보면, 스타벅스가 인종차별을 기회주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시민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비난은 20여년 전 베네통이 내놓은 광고에서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베네통은 20여년 전부터 제품과는 관계없는 전쟁,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자신들의 제품광고에 내세워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좋은 평가도 많지만, 사회적 이슈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악용했다는 비난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캠페인에 대한 반발 또한 기업이 사회 이슈에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는 맥락에서 발생한 일로 보입니다.
스타벅스의 캠페인이 비판 받는 두 번째 이유는 스타벅스가 스스로도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애틀랜타, 스페인, 독일의 스타벅스 직원들이 동양인 고객의 커피컵에 동양인을 비하하는 '찢어진 눈' 그림을 그려 내놓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스타벅스 내부의 인종차별도 방지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손님들에게 인종 차별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려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비판의 핵심입니다.


적극적인 네티즌들은 스타벅스의 임원들이 모두 백인임을 밝혀내고, 스타벅스가 과연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스타벅스의 임원중에는 흑인이 한 명도 없고, 하워드 슐츠를 포함한 대부분이 백인입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의 비판은, 회사의 CEO가 직원들에게 특정 정치적 태도를 갖도록 강요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옵니다. 물론 인종 차별 철폐가 옳은 주장이고 이를 반대하는 직원이 없다고 해도, 커피를 만들도록 고용된 직원에게 계약 외의 정치적 행동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손님들이 몰려드는 시간대에 커피를 만들거나 디저트를 서빙하고, 가게를 정리하느라 정신 없이 바쁜 직원들에게 새로운 업무를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비판이 타당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 의미를 담은 기업의 캠페인이 이 정도로 강한 반발에 부딪히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이미 2년 전, 스타벅스는 비슷한 캠페인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법안 처리에 집중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컵에 "Come Together"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연방정부 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는 등, 그 동안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펼쳐 왔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캠페인이 비난을 받는 것은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스타벅스가 사회적 이슈를 이용해서 자신의 수익을 추구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캠페인은 오히려 스타벅스가 손해를 감수하고 벌인 행사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바리스타들이 컵에 문구를 적고 고객들과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특히 바쁜 아침 시간에는 컵에 문구를 적는 것만으로도 고객이 평소보다 20% 이상 더 길게 줄을 선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번 뿐 아니라, 그 동안 CEO하워드 슐츠의 사회적 활동을 보면 오히려 스타벅스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총기 휴대를 반대한다며 고객들에게 총을 가지고는 스타벅스에 오지 말라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주주들에게는 차라리 스타벅스의 주식을 팔아버리라는 말을 했습니다. 스타벅스 CEO의 이런 과거 행동을 돌아볼 때, 이번 캠페인을 완전히 기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캠페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이 남다른 원인은, 기업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 캠페인 자체의 미숙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 자체에는, 많은 미국 국민들도 동의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다양한 사회 운동을 벌이는 가운데에도 스타벅스의 이익과 주가가 꾸준히 증가해온 것으로 봐서, 대다수의 미국 소비자들은 스타벅스의 사회활동 자체에는 그다지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캠페인은 인종차별이라는 문제를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커피컵에 문구를 적고 고객에게 인종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택한 점이 유난히 부적절하게 보인 듯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고객에게 인종차별 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강요한다는 느낌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 큰 억압으로 다가왔을 수 있습니다.
만약 스타벅스가 캠페인을 다른 방법으로 실행했다면 어땠을까요? 미국 내에만 4천 개가 넘는 매장을 활용해서 차별에 시달리는 유색인종 고객 상대의 문화활동을 펼친다거나, 스타벅스 직원 고용 기준에 ‘인종 차별 금지’를 명문화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타벅스가 가진 일종의 ‘커뮤니티’라는 이미지를 살린다면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도 더욱 세련되고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동안의 스타벅스 캠페인과 비교했을 때, 이번 캠페인은 우선 세련되지 못한 방법을 택했고 그로 인해 본 의도까지 공격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캠페인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워드 슐츠는 인종차별 폐지를 위한 스타벅스의 활동은 계속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어쩌면, 캠페인에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으로 인해 인종차별 문제를 이슈화 시키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그 말을 직접 실천하는 스타벅스와 하워드 슐츠의 의지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보다 세련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지난 캠페인의 실패를 말끔히 만회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분들은 하워드 슐츠에게 직접 제안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여러분이 제안한 아이디어로 미국 4천여 개 매장에서, 더 나아가 전세계 스타벅스 매장에서 캠페인을 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원문 :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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