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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믿지 마세요

  • 입력 2015.10.01 13:33
  • 수정 2015.10.01 13:45
  • 기자명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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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에는 저자의 초점이 뉴스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뉴스의 시대>에서,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 주목했다. 그는 뉴스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탐구하기보다, 급변하는 뉴스 속에서 개인이 어떤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그 또한 뉴스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한다. 이 책은 서두에서, 뉴스를 “구성원들을 가르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이라 언급하고 있다. 다만 뉴스를 수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뉴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알랭 드 보통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할 때 얻게 되는 보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제안한다.


뉴스도 예술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뉴스를 크게 정치 뉴스, 해외 뉴스, 경제 뉴스, 셀러브리티 뉴스, 재난 뉴스, 소비자 정보 뉴스로 분류한다. 그가 뉴스를 분석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실제 뉴스를 인용하면서 해당 뉴스가 갖는 한계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것이 수용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설명한다. 경제 뉴스에 나오는 숫자와 그래프가 우리네 삶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저자는 생생한 방식으로 주지시킨다.


그가 선택한 또 다른 방식은 뉴스와 예술 사이의 비교다. 그는 시, 소설, 희곡, 그림, 사진 등의 예술을 통해 뉴스에 결여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장 와 닿은 부분은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는 뉴스와, <보바리 부인>이나 <햄릿> 같은 비극 문학 사이의 비교였다. 이 비교에서, 그는 아동 포르노 사진을 다운받아 징역형을 선고받은 미국 의사의 사례를 제시했다. 저자가 주목한 부분은 포르노를 다운받은 의사가, 살인을 저지른 햄릿보다도 더 추악한 인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점이다.
책의 문구를 인용하면, 비극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품위 있고 호감 가는 인물도 결국엔 쉽사리 주위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아주 평범한 사람도 끔찍한 범죄자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뉴스는 그런 교훈을 제공하지 못한다. 단순히 그런 범죄자와 평범한 개인을 분리시키는 역할만 담당한다는 것이다. 즉, 뉴스는 범죄자에 대한 공포만 강조할 뿐, 사건을 비극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부분은 한국의 언론에도 적용된다. 우리 언론 또한 연쇄살인이나 잇따른 성폭행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할 때, 대부분의 언론이 범인의 기행에 주목하거나 자극적인 범행 묘사에만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개인적 배경을 분석하기보다 범인 자체를 괴물로 만드는 데 치중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뉴스 수용자는 공포감에 휩싸여 흉악범죄에 대한 경계심을 갖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된다. 범죄는 본디 괴물이었던 사람이 저지르는 특수한 경우로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흉악범죄 보도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뉴스 수용자로 하여금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게 하는 예방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공포가 비극이 될 때 뉴스 수용자도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뉴스에서 벗어나라?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뉴스의 작동 방식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유지하는데, 책 곳곳에서 이것은 숨김 없이 드러난다. 그가 책 속에서 뉴스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자.

뉴스란 기본적으로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한 묶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뉴스는 아무 의심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있는 소비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뉴스는 모든 게 쇠퇴하기 마련이라는 절대적인 불가피성을 정직하게 직시하기보다 새로 발견된 건강 정보를 팔아먹는 걸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는 책의 마지막 장인 결론에서 더 구체화된다. 그는 최근 개발된 구글 뉴스 등의 맞춤형 뉴스 기능을 소개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기능들을 두고 “대중의 수만큼 다양한 뉴스 채널”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동시에 한계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어떤 뉴스를 보고 싶어하는지 알 만큼, 정말 스스로 의식적인 준비를 갖추었는지”다. 결국 맞춤 뉴스는 사람들의 뉴스에 대한 가치 판단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현재의 뉴스 편집 시스템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뉴스의 본질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것이 늘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의 최신 소식을 알기 위해 뉴스를 소비하면서, 독자들이 정작 스스로의 내면을 탐구하는 일에서는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한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뉴스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부분은 많았다. 객관적인 보도보다 편향된 뉴스가 사람들에게 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그의 분석은, 기계적인 균형보도는 읽는 이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체감하게끔 했다.
<뉴스의 시대>는 범람하는 뉴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책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현직자들로서는 뉴스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책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지적한 지점들을 뉴스가 극복한다면 역으로 뉴스는 저자의 말마따나 예술의 한 영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 아닌, 사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뉴스. 속보와 특종에 얽매인 현대의 언론이 한 번쯤 고민해 볼 만한 방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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