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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그런 게 아니다

  • 입력 2015.09.30 10:23
  • 기자명 MC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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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표현의 자유가 누명을 쓴 시대이다. 최근 공론장에서 빈번히 불려나온 구호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여성들'이다. 올 한 해 "여성혐오의 만연" "페미니즘의 약진"이란 드센 바람이 일며 교차했는데, 여성혐오 콘텐츠들이 호된 비판에 직면하는 와중 튀어나온 볼멘소리다. 주지하다시피 표현의 자유는 시민에 대한 시민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의 자유다. 어떤 표현이 개진될 기회를 국가가 검열로 앗아가며 시민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회도 앗아간다면 표현의 자유를 약탈하는 것이다.

이미 개진된 표현이 또 다른 표현과 경합하며 동조 여론을 규합해 상대를 비판/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치열하게 작동하는 것에 가깝다. 저들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추고 있었다면, '표현의 자유'란 풍월을 읊는 대신, 상대의 비판 논리가 부적절함을 입증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뒤집어 해석하면, 그들은 여성혐오 콘텐츠를 방어할 논리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란 거창한 규범을 언급하며 이견을 묵살하는 반칙을 부린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라는 명제는 다른 의미에서 유효하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불거진 또 다른 경향은 '명예훼손 고소 엄포의 유행'이다. 악플과 루머에 늘상 시달리는 유명인들이 법의 철퇴를 내리찍겠다 선언하는 뉴스는 이제 새롭지 않다. 비단 신원이 널리 알려져있어 이름에 흠집이 날 소지가 높은 유명인들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 장삼이사들이 댓글창에서 멱살잡이를 하다 문득 "고소"라는 단어를 꺼내드는 광경도 익숙하다. SNS에서도, 조리돌림과 뒷소문에 피격당한 '파워 트위터리안'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라며 일일이 경고하는 모습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다. 음해와 험담이 잘못이라는 점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말의 폭력은, 구타와 폭행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아픈 법이다. 맑은 용액에 떨어트린 잉크 방울처럼 말과 글이 순식간에 확산되는 인터넷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더 이상 자력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선 법의 힘을 빌릴 수 있다. 문제는 명예훼손이란 개념의 헐거움과 그걸 다루는 사법체계에 있다. 한국은 민사 뿐 아니라 형사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한다. 현행 명예훼손죄는 걸면 걸리는 형벌이다. 쪽지나 채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터넷 공간에서, 누군가를 지목해서 비난하면 백이면 백 경찰에 사건이 접수된다. 검찰이 불기소처분하거나, 판사가 고소를 기각해도, 사법기관에 출석통보를 받는 정신적 부담과 사건 조사와 발명을 위해 경찰과 법원을 오가는 물리적 비용은 간과할 수 없다. 가족과 직장에 고소 당한 사실이 알려진다면 난감한 일이다. 만에 하나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형사 범죄로 '빨간 줄'을 긋는 셈이니 그것도 두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명예훼손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고 사실의 적시까지 처벌한다. 강력한 형벌이다. 형사 소송이라는 말은 소송의 진행절차를 경찰과 검찰이 담당한다는 뜻이다. 고소인은 별다른 비용을 감수하지 않는다. 형사 판결이 내려진 후엔 민사소송으로 이행해 배상금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갈 필요도 없이 소 제기를 취하하는 대가로 합의금을 받을 수도 있다. 소송 취지가 타당하건 그렇지 않건, 고소인은 못 해도 본전이고 피고소인은 잘 해야 본전이다. "당신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습니다"라고 통보하는 순간, 힘의 비대칭 관계가 성립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사태는 더 이상
'시민과 시민의 경합'에 머물지 않는다. 여론의 손가락질에 상처입고 토라진 마음을 일거에 만회하고 사람들을 굴복시킨다. 통보를 받은 이들은 목전에 닥칠 화를 피하려 내심과 다른 사과를 하고 발언을 철회한다. 이 일대 역전극을 가능케 하는 건 법에 대한 호가호위다. 근거도 없고 맥락도 없는 악담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즐거워하는 승냥이들을 변호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어떤 이가 특정한 다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고소라는 칼춤을 출 때, 그 인물이 연루된 쟁점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인물의 행적에 대한 비판은 그의 '명예'에 대한 비판과 쉽게 스미고 겹친다는 점을 생각해도 그렇다. (법원이 명예훼손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가 해당 쟁점에 대한 판단을 갈음하며 사회의 숙의 시스템을 교란할 우려도 있다.) 그것이 공적 수준에 놓인 쟁점일 수록 '표현의 자유'는 외진 곳으로 뒷걸음질친다. 나는 이런 사회적 경향을 시민이 시민의 입을 봉하는데 용역을 제공하는 '국가 공권력 대여 체계의 발생'이라고 일컫고 싶다. (여기까지 얘기를 정리했다면, 앞서 거론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두 가지 경향을 한 줄로 꿰어 볼 수 있다. 가령, 데이트 폭력을 연상케하는 만화를 그려 사람들의 분노를 산 레바의 웹툰을 보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레바툰을 비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선을 넘은 비난은 법 대로 처리하겠다"라는 으름장으로 여론을 위축시킨 레바에 가깝다.)


대안은 무엇일까
. '표현의 자유'란 깃발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그 깃대를 붙들고 악플과 루머를 이를 악물고 견뎌야하는가.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문제는 민주적 공동체에서 살기 위한 비용으로 사고해야 한다. 공적 쟁점으로 구설수에 올랐다면 먼저 고려할 행동은 '거국적인 고소 통보의 단행'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성실한 입장 소명이 아닐까. 이미 여론의 프레임이 기울어 그런 소명도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면 비난 수위와 성격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가능한 고소 대상을 축소해서 가리는 게 좋을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권익구제 수단으로서 명예훼손 소송을 활용하는 건 막을 수 없되, 그 나쁜 효과에 대한 문제의식도 단단히 쥐고 가자는 말이다.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그를 민사소송으로 돌리도록 사회적 담론과 요구를 응집하는 커다란 차원의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고소는 자랑스런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공동체는 권리의 연대와 책임의 분담으로 성립한다. 더 좋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비용을 명예가 훼손된 당사자에게만 떠넘길 수 없다. 누군가를 비판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민들이 함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논란의 지배적 프레임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분노에 휩쓸려 한 쪽의 말만 확신하지 말고, 감정을 배설하는 모진 말보다 현상을 사고하는 정제된 말을 지향하려 노력할 것.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지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작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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