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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애 낳고 싶다

  • 입력 2015.09.28 11:41
  • 기자명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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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기적이라니까?

추석이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전을 부쳐 먹는다. 작년에 결혼한 형과 형수는 아버지의 시답잖은 농담에 연신 웃으며 전을 부친다. 그때 바닥에 신문을 깔던 엄마가 형수에게 묻는다. “그런데 너희 애는 언제 낳을 거니?” 형수의 얼굴이 일순 굳었다 풀린다. 엄마는 형수 얼굴의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요즘 바쁘니?” 형수가 대답한다. “네…” 이번엔 엄마의 얼굴이 굳는다.

아무리 바빠도 할 건 해야지. 하여간 요즘 애들은 이기적이라니까.





요즘 젊은이가 이기적이어서 출산율이 감소한 걸까. 개인주의는 저출산의 원인을 따질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의 중 하나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전통적인 공동체를 분해하고 분해된 개인은 각자도생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없이 사회를 홀로 마주한 개인은 살아남기 위해 이전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많은 것을 포기한다. 출산도 그 중 하나다. 이때 결혼=출산이 당연한 등식이었던 부모세대와 각자도생하는 자식세대 사이에 갈등이 나타난다. 자식세대는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편하게 사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모든 게 내 탓이다
이민아는 논문 <계획적 무자녀 가족: 한국 사회에서 아이 갖기의 의미와 가족주의의 역설>에서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대립적이라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한국에서 가족주의와 개인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며 심지어 서로 강화한다는 것을 11명의 계획적 무자녀 부부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은 신자유주의는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아가는 데 반해 복지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한국에서 개인은 권리의 주체라기보다는 책임의 주체에 가깝다. 생존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엄청 간섭도 많이 하고 그랬을 거 같아요. (생략) 예를 들면 우리 가족은 뭐든지 잘해야 되고 뭐든지 완벽해야 될 거 같고.


책임의 주체인 개인은 사회에 나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든다. 가정을 이룬 개인은 가족 유지의 책임도 온전히 자신이 진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부부는 열심히 일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가족은 서로에게만 의존하며 폐쇄적으로 변한다. 개인주의는 생존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강요하고 결국 가족주의를 강화한다. 아이의 양육비는 가족을 유지하기도 벅찬 부부에게 가족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가온다. 부부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포기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죄책감까지 오롯이 떠맡는 한국의 부부
아이 키우기가 어려운 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부부도 마찬가지다. 어중간한 교육으로는 아이가 생존은커녕 사회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때 아이의 사회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도 가족이 전적으로 떠맡는다.


소위 사회적 상층이라고 하는 저의 누나만 보더라도 되게 힘들어요. 이게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라는 거에요. (한국은)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사회에서 단 1%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11명의 계획적 무자녀 부부들은 개인주의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그리고 이 사회가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낳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계획적 무자녀 부부는 그와 반대로 죄책감까지 떠 앉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을 ‘이기적’,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며 때로는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되어 있는’ 존재로 표현했다.




무엇이 '가족'을 위한 선택일까?
지난주 한 아버지는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한 자신의 아들 세대에게 징징대지 말라고 편지를 썼다. (관련기사 : ‘다만, 그 입을 다무소서‘) 김광일 논설위원은 해당 글에서 ‘분수에 맞게 벌고 살림을 차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려야 하는’ 자신의 세대에 비해 ‘포기’가 무슨 선택쯤 되는 줄 아는 자식 세대를 비난했다.



ⓒ정윤성 만평



형과 형수는 ‘분수에 맞게 벌고 살림을 차려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 드리기 위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해야 할 것이다. 아이를 낳은 형수는 일자리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며 돌아가더라도 일자리의 질은 그전보다 크게 낮아질 것이다. 나의 조카는 자라면서 급식비를 내야 하고, 고등학교 수업료도 내야 할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다면 학자금 대출도 받아야겠지. 형과 형수는 조카가 취업하기 전까지 그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임금피크제로 인해 저녁 9시 이후에 대리운전을 뛰어야 할 수도 있겠다. 아이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 어느 것이 가족을 위함인가? 그 전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인가 낳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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