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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 소득 높이려면 재산 상속이 쉬워져야 한다고?

  • 입력 2015.09.25 12:00
  • 수정 2015.09.25 12:26
  • 기자명 잡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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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기획재정부는 중장기 조세 정책 운용 계획인 <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국회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자료에는 근로소득 면세자 비율은 줄이면서, 부모의 재산을 자녀에게 넘겨주는 증여세 제도는 완화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내년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이루어진 이번 발표는 전형적인 ‘여론 간보기용 발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처음 세운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국회와 국민의 여론을 살피면서 정책 방향을 변경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상속세·증여세 세율 인하 계획 등은 '부자감세'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장기 시행과제로 미뤄놓은 모양입니다.
시행 시점은 달라지더라도, 현 정부의 정책이 상속세와 증여세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는 점만은 선명하게 드러난 듯 합니다. 사실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부자감세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온 터라, 이런 정책을 내놓는다는 사실 자체가 새삼 놀랍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기획재정부가 이 정책을 제시하면서 근거로서 제시하는 논리가 더 당황스럽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운용계획에서, 재산세 과세분야의 개혁과제를 언급하면서 한국의 현행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이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55%, 프랑스는 45%, 미국과 영국은 각각 40%, 독일이 30%인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상속, 증여세는 50%이므로 우리나라보다 세율이 높은 나라는 일본 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구조적인 소비부진이 우려되고 있으므로, 부가 젊은 세대로 이전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더 쉽게 풀어보면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소득이 없는 부모세대가 소비를 적게 하기 때문에 상속·증여세를 낮춰서 젊은 세대로 좀 더 많은 재산을 넘겨주면 젊은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나라 상속세 및 증여세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는 일은 드뭅니다. 그런데 한국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재벌들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편법은 물론 불법적인 방법까지 사용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이라 불리는 삼성도, 이런 불명예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부모 재산으로 자식 세대 소비 활성화?

정책의 근거도 부족하지만, 부모의 재산을 자녀들에게 넘겨주어 소비를 늘이겠다는 정책 방향 자체가 황당합니다. 청년층의 소비를 늘이려면 그들이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게 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월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모름지기 정부 부처라면 개인적 상속을 통한 부의 이전을 기대하기보다 합리적인 분배를 위한 정책 제안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는 마치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부모세대의 노후자금에 눈독을 들이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증여세 감세를 주장하는 논리도 마찬가지로 빈약합니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하여 증여세제를 합리화 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하여 증여세를 깎아주자는 주장입니다.
이 세부 내용을 보면, ▲사업기회 제공 등 변칙적 증여에 대한 과세근거를 마련하고 증여세 과세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보완,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을 통한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자녀 세대에 대한 증여 관련 제도 개선, ▲ 가업상속공제 대상기업을 확대하고 사후관리 요건을 현실화하는 등 원활한 가업승계 지원 등 입니다.
변칙적 증여에 대한 과세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2003년에 도입한 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보완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과세를 피해갈 수 있는 예외조항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과세형평성과 소득재분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셈입니다.


증여세를 깎는 것이 ‘합리화’인가?

가업상속공제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한 대안은 아닌 듯 합니다. 가업을 상속받는 경우에 한꺼번에 증여세를 납부하기 어렵다면 장기간 분할하여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재정운용계획에는 법인세율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정책 방향이 여전히 뚜렷하게 드러나 있고, 일반 직장인들의 면세자 비율은 줄였지만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정책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계획은 앞서 언급하였던, 증여세와 상속세를 줄여 젊은 사람들의 소비를 늘이겠다는 주장입니다.
국가의 시선에서 청년층의 소비 활성화를 고민하려면,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고민으로 다가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정부가 청년의 소비를 높이겠다고 나서는 자체가 모순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는 세금을 줄여 자식 세대의 부를 증대하겠다니, 이런 말장난같은 정책이 국가의 공식 문서로 발행되었다는 자체가 우스우면서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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