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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이유

  • 입력 2016.09.25 11:33
  • 수정 2016.12.03 16:51
  • 기자명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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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2년마다 한 번씩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르는 미국에서 대통령을 뽑지 않는 선거를 중간 선거(midterm election)라 부릅니다. 지난해 치러진 가장 최근의 중간선거의 투표율은 41.9%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2년 선거 때 57.5%보다 크게 낮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중간선거 투표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리타분하게 갑자기 웬 투표율 얘기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가계소득이 3만 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의 18~24세 유권자의 투표율은 13%였고, 가계소득이 15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층의 65세 이상 유권자의 투표율은 73%였습니다. 미국에서 투표하는 사람과 투표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갈수록 차이가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나이 든, 돈이 많은, 백인들의 투표율은 계속해서 높거나 높아지는 반면 저소득층, 유색 인종,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은 정체돼 있거나 오히려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정책이 표를 주는 사람들의 이익을 따라가게 된 겁니다. 저소득층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투표율이 오르면 당연한 말이지만 정치권도 이들의 이해관계를 지금처럼 묵살하지는 못할 겁니다.
실제로 나이, 소득, 인종 등에 따라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유권자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미국 선거 연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 ANES) 프로젝트에서 정리한 데이터를 보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투표한 사람들과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의 견해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든 도표인데, 여러 가지 경제 분야 이슈에 대해 의견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투표한 유권자와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견해 차이. 미국 선거 연구(ANES), Vox에서 재인용.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에 훨씬 더 민감하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투표한 사람들은 정부가 그렇게까지 다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소득층을 위해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정도의 차이도 뚜렷합니다. 투표소에 가서 표를 던진 사람들보다 투표소에 가지 않은, 혹은 가지 못한 사람들이 정부가 지금보다 더 많이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투표소에 가서 한 표를 던지는 게 실제로 정책에 영향을 미칠까요? 실제 정책에는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보다 투표한 유권자들의 선호가 더 반영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또한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을 봐도 유권자 구성의 변화가 정책을 바꿔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한 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점차 많은 사람에게 주어져 지금과 같은 보통 선거가 주어지기까지의 역사를 한 번 되돌아봅시다. 투표권의 확장이 복지국가로서 정부의 역할을 넓혀왔다는 게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서유럽 12개 나라를 1830년부너 1938년까지 분석한 연구 결과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른 투표 제한이 점점 철폐됨에 따라 정부 지출이 늘어났습니다. 너무 옛날 사례 아니냐고요? 1960년부터 1982년까지를 살펴본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복지 지출이 높은 패턴은 꾸준히 유지됐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뒤 일어난 변화를 살펴보죠. 미국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뒤, 주 정부의 지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 지출의 상당 부분이 공공 보건에 집중됐는데, 그 결과 매년 영유아 2만 명이 목숨을 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후 남부의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진행된 민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의 영향으로 흑인들의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남부에서 텃세를 구축해 온 민주당의 정책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지방 정부는 더 많은 예산을 흑인 커뮤니티에 배정했습니다. 인두세 철폐나 저소득층 유권자들의 투표율 상승은 대부분 예외없이 복지 지출을 늘렸습니다.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복지 지출이 전반적으로 형편없고, 복지국가를 뜻하는 큰 정부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높은 나라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낮은 투표율입니다. 투표율과 정부 지출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둘 사이의 상관 관계는 상당히 높습니다. 미국은 최소한 투표율이 70%가 넘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투표율도 50% 언저리에 그쳐 상당히 낮은 동시에 정부 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도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로버트 프랜지스(Rober Franzese)는 저서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거시경제 정책(Macroeconomic Policies of Developed Democracies)』에서 불평등과 투표율, 재분배 정책 사이의 관계를 살펴봤습니다. 투표율이 낮은 나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해져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스위스 등이 그런 나라에 속합니다. 반대로 호주나 이탈리아처럼 투표율이 높은 나라에선 정부가 불평등 지수가 높아지면 재빨리 여기에 반응해 이를 낮추기 위한 정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결국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부의 재분배를 촉진할 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모든 계층이 적극적으로 투표소로 간다면 지금처럼 빠르게 심화되는 불평등, 양극화의 속도는 늦출 수 있을 겁니다.




결국은 투표입니다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건 유권자들의 표입니다. 표심에 반응하지 않는 정치인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미국에서 부유층의 정치자금 기부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꼭 백만장자가 아니라도 고소득층은 정기적으로 정치인에게 후원하고, 선거 캠프에서 일하기도 하며 꾸준히 정책을 보고받기도 합니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출신 이력만 봐도 갈수록 부유층, 고소득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각은 부유한 사람들의 견해와 갈수록 멀어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틈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대로라면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투표도 안 할 사람들인데 만나주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유색인종, 저소득층의 투표율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겁니다. 투표권리법안(Voting Rights Act)을 개정하거나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만 투표할 수 있는 미국에서 유권자 등록을 자동화하거나 까다로운 신분증 지참을 요구하는 낡은 규제를 철폐하면 투표율이 오를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 서민들이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가 되면, 정치인들도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원문 : V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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