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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을 고급 호텔로 만들겠다고?

  • 입력 2015.09.18 13:26
  • 수정 2015.09.18 13:49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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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화 문화재청장


▷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 : 경복궁, 창덕궁 등에서 그간 화재사건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국보급 문화재를 체험시설로 내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궁스테이를 계속 추진할 생각인가?

▶ 나선화 문화재청장 : 문화재의 가치를 정확히 알게 하기 위해서라도 고궁 활용 프로그램은 절대 필요하기 때문에 안전관리에 문제가 없게 신중히 연구해서 하겠다.


지난 1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의 한 장면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끝내 '궁스테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한 시민들은 나 청장의 아집과 독선에 실소(失笑)했지만, 동시에 불안과 염려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부터 문화재청이 추진했던 궁궐활용프로그램 '궁스테이'는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로부터 보류 결정을 받은 바 있는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문화재청은 창덕궁 낙선재(樂善齋) 권역에 있는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 등 두 전각을 개조해 외국인 관광객 등이 숙박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궁스테이'의 대상이 된 낙선재는 보물 제1764호로, 1847년(헌종 13년)에 중건된 궁궐 내부의 사대부 주택 형식의 건축물이다. 개조의 대상이 된 석복헌과 수강재는 낙선재의 우측에 자리잡고 있다.
당장 두 가지 궁금증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문화재를 숙박 시설로 이용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라는 본질적인 물음이고, 두 번째는 '1박에 얼마일까?'라는 속물적인(혹은 현실적인) 물음이다. 우선, 두 번째부터 해결해보자. 문화재청의 '궁스테이'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숙박비는 1박에 3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며, 외교 사절이나 대기업 오너를 대상으로 한 고급 숙박시설로 운영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곧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고, 문화재청은 변명을 하기에 급급했다. 나 청장은 "하룻밤 숙박료 300만원은 보고받지 못했다. 특정인을 대상으로 했다기보다는 품격 있는 상품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고,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은 "숙박비의 경우 여러 측면을 고려해 책정할 예정이며 '달빛기행' 등 다른 문화재 활용 프로그램처럼 국민을 위해 원가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방향으로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숙박비와 대상 등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궁스테이' 계획은 '과연 문화재를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문화재마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란 말인가?


지난 7월 30일 JTBC <썰전> 2부에 출연한 인문학 강사 최진기는 "사실 굉장히 우스운 발상이다. 외국에도 고성을 개조한 호텔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문화재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문화재라면 절대 호텔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면서 "궁 스테이 추진은 돈으로 환원할 수 없는 걸 돈으로 환원하는 거다.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최진기 교수가 말한 외국의 ‘고성을 개조한 호텔’은 스페인의 숙박 체인인 '파라도르(Paradore) 호텔'로 보이는데, 이 경우도 그라나다와 세고비아의 고성, 수도원 등을 개조한 것이지 '궁궐(왕궁)'은 개조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보전을 통한 문화재 활용'을 목적으로 제시했지만, '궁스테이' 계획이 진행될 경우 궁궐의 훼손은 불가피하다. 또, 목조건축물의 특성상 화재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평우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관장은 "문화재청의 기본 임무는 문화재 보존이고 활용은 두 번째"라고 지적하면서 "화기를 들이고 구조에 변화를 주다 보면 목조 건물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광현 서울대 교수는 "건물에는 저마다 역사가 있는데, 낙선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그의 부인인 이방자 여자가 잠든 슬픈 곳이어서 궁 스테이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문화재청의 '궁스테이' 계획은 문화재를 돈벌이로 활용하려고 드는 천만본주의의적 발상일 뿐만 아니라, 문화재에 대한 역사적 이해조차 결여된 한심한 헛발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궁스테이를 추진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과연 그것이 문화재의 가치를 알게 하는 길일까?
을사조약(乙巳條約, 1905)이 체결되고, 고종을 폐위(1907)시킨 일제는 '백성에게 실물교육을 시키고 그들의 위안 장소로 쓰도록 하라'는 명분 하에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했다.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지었고,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일제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경궁을 훼손했다. 이상해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광복 이후 창경궁의 역사는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일제의 창경궁 훼손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문화재에는 그 건물에 맞는 활용법이 있는 법이다. 그 대상이 궁궐이라면, 우리는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 문화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생각은 바람직하지만, 문화재청의 ‘궁스테이’가 그 합당한 활용방식인지는 의문스럽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인 문화재청마저 문화재를 활용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문화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해마저 부족한 문화재청의 손바닥 위에 놓인 수많은 문화재들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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