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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 썩은 동아줄에 지지 보내는 여론

  • 입력 2015.09.17 14:11
  • 기자명 버락킴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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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던
9·13 노사정 합의안이 지난 15일 최종 의결됐다. 합의에 참여했던 한국노총과 이에 대해 격렬히 반발하는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계의 갈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여야도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대로 치고 받으며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합의안 전문을 살펴보면 내용적으로 문제가 심각하고, 향후 노동 시장에 몰고 올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은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혁'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듯 하다.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여론'의 향방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 '노사정이 잠정 합의한 구조개편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물었는데, 찬성 의견이 48.7%로 반대(22.9%) 의견을 압도했다. 연령대 별로 살펴보면, 30(찬성 28.1 vs 반대 39.2%)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찬성 의견이 높았다. 특히 20(41.0% vs 24.0%)에서 찬성 의견이 높았던 것은 정부의 '립서비스'가 통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청년 실업을 해결하자'는 구호가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 3자 균형의 정신을 깨고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임금 삭감을 통해 친재벌 시나리오로 노사정위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제하는 정부 노동개혁의 허구성을 국회에서 낱낱이 밝힐 것이다.

-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

일반해고제 도입 승인, 임금피크제 임금삭감, 성과급 저임금체계, 비정규직 기간과 범위 확대, 노동시간 연장 입법 등 재앙을 승인한 역사상 최악의 야합이다.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지역과 연령을 통틀어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9 · 13 노사정 합의안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는 어째서 이토록 격렬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정부와 새누리당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 이유는 노사정 합의안이 실제로 '노동의 권리'를 축소하는 내용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던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반영된 반면, 노동계가 주장하거나 요구한 것들은 먼 훗날의 일로 미뤄둔 채 "노력해보자" 정도로 그쳤다.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확대 등 따져야 할 사안들이 수두룩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합의안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쉬운 해고' 이다. 이는 재계가 끊임없이 주장했고, 정부가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노동 유연성'의 현실화다. 물론 한국노총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수용하면서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결국 '쉬운 해고'라는 헬게이트가 열렸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노··정 대타협이 이뤄졌다. 시대적 소명에 부응해 어려운 결단을 내려준 노·사 지도자들, 특히 한국노총 지도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노동자들의 고뇌에 찬 결단이 희생을 강요하고 쉬운 해고를 강제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쉬운 해고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과연 어떤 식으로 '쉬운 해고'를 막을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구체적인 방안은 나온 것이 없다.


JTBC <
뉴스룸>은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일반해고'가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7년 전 대타협의 산물로 꼽히던 '정리해고제'를 예로 들었다.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이후 고용 불안이 악화됐는데, 2010년 이후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접수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측에서는 '공정한 해고'라고 주장하겠지만, 결국 노동자에게 경영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에게 해고란 '경제적 살인'이나 다름없다.
한편, 박 대통령은 "청년 고용을 위한 재원 마련에 저부터 단초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서 사재(私財)를 출연해 '청년일자리펀드(가칭)'를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청년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제스처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는 데 주효했을 것은 분명하지만,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을 '기부'를 통한 사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 한겨레

재계는 매번 '청년 고용'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대통령은 기업인들을 청와대 만찬에 초대하고, 재계는 '청년 고용을 늘리겠다'는 코멘트와 자신들이 얻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익을 교환한다. 하지만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보다 감소'했다는 응답이 35.8% '지난해보다 증가'했다는 응답 19.6%보다 훨씬 많았다. 역시 말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펀드'를 만들어서 돈까지 대주겠다고 한다.
노사정 대타협이 노동 시장에 미칠 악영향은 구체적이지만, 기업이 내려 보낼 동아줄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사정 대타협을 계속 지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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